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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Mar 20. 2022

울어버리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1

책│요시모토 바나나, <키친에 기대어>

to. 감정에 지기보단, 강해지고 싶다던 당신께. 



# 눈물 고백


 간밤에 소중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어요. 그녀가 대뜸 눈물 어린 고백을 전합니다.

 “나 실은….”


 그리곤 정말 자신이 울음을 고백합니다.

 “방금 전에 울었어. 어린애 마냥 펑펑 울었어.”

 자신을 울게 한 여차 저차 한 이유가 아닌, 다짜고짜 울었던 사실만을 토로합니다. 기어코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거예요. 이렇게나 운 게 정말 오랜만이라며. 정신없이 울고 나서 밀려오는 민망함이 혼자선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며. 얼굴이 화끈해지고, 입도 몸도 근질거려서 털어놓지 않곤 배길 수가 없었대요.


 친구는 연신 코를 훌쩍대고 목이 잠긴 것이 틀림없이 울고 난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말하는 중간마다 자꾸 피식피식 웃는 겁니다! 우수에 찬 목소리로 자꾸 웃다니요. 마음이 놓이기보단 더욱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제는 괜찮다던 친구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어요.

 “너 정말…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제야 친구는 하루 간 겪은 일을 토로하기 시작했어요. 요즘 갓 이직한 직장에서 일이 익숙지 않아 자꾸 실수를 하다 보니, 자존심도 자존감도 툭-툭- 떨어진다는 겁니다.

 “사수는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잘 이해되지 않는 걸 다시 물어볼라 치면, 인상부터 쓴다니까? 진짜 뭐 그런 (중략).”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제힘으로 일을 해내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방법을 모르니, 서툴 수밖에요.

 “일은 다 맡겨놓고, 그때그때 피드백을 안 해줘! 그러다 꼭 상황이 급해졌을 때, 그때 가서 타박을 한다니까? 진짜 뭐 그런 (중략).”

 알아서 하라며 모른 척할 땐 언제고, ‘모르는 게 있었으면, 왜 안 물어봤어요?’라며 늘 질타를 한다는 거예요. 이런 하루들이 반복되니 너무 억울하고 힘이 들었다더군요.



# 눈물 버튼


 그렇게 친구는 넋과 진이 다 빠진 채로 귀가를 했대요. ‘냉수 마시고 정신 좀 차리자’며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들었죠. 뚜껑을 열려는데 이런 날은 꼭 별게 다 맘처럼 되지 않죠? 뚜껑이 너무 뻑뻑한 게 아니겠습니까. ‘하, 애까지 정말...’ 하는 수 없이 물병을 팔과 가슴 사이에 끼고 온 힘으로 열어보는데, 그러다 삐끗-.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후드 티와 바닥에 물이 왈칵-. 그리고 5초간 정적.

 퍽-! 순간 짜증이 밀려와 물병을 싱크대에 내팽개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답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진짜 엉-엉- 울었댔어요. 못내 참아온 설움과 힘듦이 펑-하고 터져선, 한참 동안 펑-펑- 쏟아져 내렸던 거죠.      


 다시 떠올릴수록 자신을 터뜨린 눈물 버튼이 스스로도 기가 차다며 하하-호호- 웃습니다. 민망을 무릅쓰고 고해성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이면서요.

 “이렇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자꾸 혼자 곱씹을 게 분명 하단 말야. 그때마다 너무 창피해져선 밤새 몸이 배배 꼬여버릴지도 모른다구….”     

 그래도 그렇게 통곡의 열창을 마치고 나니, 속이 아주 시원하다더군요.

 “집이어서 천만다행이었지 뭐야. 아마 집이어서 그렇게 터놓고 울 수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진정됐구나 싶던 순간, 다시 한번.

 “아 정말 그 사수만 아니었어도! 진짜 뭐 그런 (중략).”

 “그래 진짜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그래도 잘했다, 잘했어. 다 털어내서 다행이야.”


***


 이야기를 들은 것뿐인데, 저도 함께 마음이 게워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한껏 울음을 쏟았다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또 대견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시원히 쏟아내곤, 다시 힘을 낼 것이 빤히 보였거든요.

 그리고 한껏 울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인지 이제와 생각하면, 그렇게 속 시원히 게워낼 수 있다는 게 살짝 부러웠던 것도 같아요.     


 물론, 슬픈 심정이 들 때면, 그 감정에 솔직해도 괜찮다는 걸 이해는 합니다. 그럼에도 울음이라면 일단 참는 것이 익숙해요. 나의 ‘약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기도 싫을뿐더러, 무엇보다 나부터도 인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당연히 억지임을 알지만, 이는 스스로 보호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심리 이리라 합리화해봅니다.    



# 소설 <키친>     


  울음에 대한 생각이 커진 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 속 한 장면도 한몫했습니다. 그 시점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미카게가 자신을 홀로 키워주신 할머니를 여위고 난 직후였는데요.     


 그녀는 그 충격과 슬픔이 가시지도 않은 채 덜컥 겁부터 났을 것 같아요. 하염없이 막막한 가운데, 이제는 자신을 홀로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결코 약해져선 안 된다는 의무감이 차올랐을 거예요. 더군다나 현실은 그녀가 감정에 치우쳐있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죠. ‘이사’라는 큰 과제가 떡하니 놓여있었거든요.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의 방세를 아직 학생인 미카게가 감당하기엔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방도 알아보러 다녀야 했고, 틈틈이 이삿짐도 쌓아야만 했죠. 이런 상황 탓에 그녀는 슬픔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더 솔직히는 울어버릴 자신이 없던 걸 테죠. 무너져 내릴 자신을 상상하는 게 겁이 났을 거예요. 정신을 단단히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평소 할머니와 미카게, 이 둘 모두와 인연이 있던 유이치 네 가족이 도움의 손을 뻗어옵니다. 당분간 유이치 네서 함께 지내기를 권유받게 되죠. 그렇게 미카게는 유이치와, 그의 어머니. 셋이서 단란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지금까지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잠자리’를 꿈꾸던 미카게에게, 유이치네 집은 충분히 그런 잠자리가 되어줍니다.


 독자로서도 안도가 되었어요. 그들의 배려 덕에 미카게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갈 거란 기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거든요.     



▶ 1부 영상으로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fGJ1CVHCJqc


 2부에서 계속


◐ 연재 시리즈:  <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 중

◑ 글: 이소 │instagram: @2st.soar

◐ 편집: 채널 빌로우 │youtube: Ch.Billow


표현을 전할 때 뜸을 들여야 하는 편이어서 말 대신 글로 적곤 합니다.

당신의 삶, 꿈을 응원합니다. 온기로 가닿을 한줄이었음 해요.

검색창#이소에세이 또는 #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를 검색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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