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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물점 Dec 17. 2019

군대에 간 아들에게

군에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인생 편지 1/100

                                   너를 보내고


 심심치 않게 들리는 가을 태풍 소식에 가슴 조이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에 일 년 농사 행여나 잘못될까 안절부절못하는 이름 모를 시골 농민들이 그들이겠고, 태풍이 앞장세운 높은 파도에 속절없이 하루하루 위태로운 삶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전국의 어민들이 또한 그들이겠지. 그런데, 아빠는 오늘에야 알게 되었단다. 아빠도 그분들 못지않게 가을 태풍 소식에 가슴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50 평생을 농부도 어부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온 아빠가 느닺없이 태풍 걱정을 하고 있다니....... 아빠 스스로도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군에 맡긴 평범한 부모들에게는 연례행사처럼 다가오는 가을 태풍도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빠는 며칠 전 너를 군에 맡기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단다.

 기껏 아들 한 명 군대에 보내고 가을 태풍 걱정이라니....... 어떤 이들이 보기에 아빠의 걱정은 한없이 개인적이고 쓸모없는 걱정일 테고, 동병상련으로 군에 아이를 맡긴 아빠와 같은 처지의 부모들이 보기에는 온 나라가 해결해야 할 과제 1순위 걱정일 테니,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자연스레 곱씹는 계기도 되었단다. 그런데 정작 아빠를 우스꽝스럽고 당혹스럽게 한 일은 정작 따로 있었단다. 


 아빠가 오늘 아침 무슨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 아니? 최신 슈퍼 컴퓨터가 예고한 태풍 진로에 네가 머물고 있는 훈련소 인근만 쏙 빠지는 상상을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이나 했단다. 그것도 중형 이상의 규모에 한반도 전역을 영향권에 둔 태풍을 눈앞에 두고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상이 현실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조차 마음 저 밑바닥에서 솟아나고 있었다는 점이야.


사람은 스스로만이 자신의 내면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물론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표정이나 목소리 같은 외부로 드러나는 신호를 관찰하거나 다양한 면담 기법을 동원하여 다른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깊이 감춰 둔 그 사람의 내면을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란다. 특히, 스스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타인의 마음을 훔쳐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 그러나 자기 자신만은 자신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지. 내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내 생각의 축이 어디로 옮겨지는지 자신만은 자신의 마음속 변화를 알 수 있어. 너도 가끔 네 스스로에 대하여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빠가 들어다 본 내 마음은 이렇게 황당하고 비과학적이었으며 감정적이었다. 50 평생을 살아온 삶의 모습과 전혀 다른 빛깔로 채색된 아빠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황당하고 나 스스로에게 어색하며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공상을 가져와 현실이 될 거라는 공허한 믿음을 스스로 창조한 그 과몰입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의 아들아!

규율과 규칙으로 무장된 새로운 환경이 어색하고 힘들기도 할 거야.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네가 믿을 사람도 네가 의지할 사람도 나와 엄마는 아니란 걸 명심하렴.

너의 버팀목이자 유일한 지지자들은 바로 네 곁에서 어색함과 당황함을 공유하며, 힘듦과 즐거움을 나눔은 물론, 생명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땀내 나는 너의 동료들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오늘 밤에는 안도현 님의 '너에게 묻는다' 시 한 구절을 기억하며 잠들었으면 좋겠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뜨거운 사람이 되길 응원하며  

                                                                                   -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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