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있는 아들에게 아빠가 보내는 인생 편지 5/100
"아빠, 저 사격 훈련 20발 만발 기록했어요. 우리 소대에서 제가 유일합니다!"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는 꽤나 흥분된 것처럼 들렸고 마치 군대 체질인양 의기양양한 네 목소리는 아빠의 마음을 묘하게 안심시키더구나. 불과 1-2주 전만 해도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블랙홀에라도 뛰어든 것처럼 자꾸만 뒤돌아보며 불안해하던 너의 눈빛과 떨리던 너의 목소리는 네 말투 어디에도 숨어있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안한 기색은 커녕 오랫동안 군생활을 즐기고 있고, 그 속에서 큰 만족을 하고 얻고 있는 듯한 너의 목소리에 아빠와 엄마는 크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고 비로소 오랫동안 웃을 수 있었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아빠도 사격은 잘 했었어. 만발은 아니었지만"
"그러셨어요? 오! 아빠랑 같이 사격 시합 해보고 싶어요."
"총소리, 생각보다 크지? 아빠도 처음 사격할 때는 옆 사람 총소리에 깜짝 놀랐단다."
"맞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귀마개 같을 줘서 괜찮았어요."
"아, 그렇군아. 역시 좋은 시절이다. 부럽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대화가 너와 나의 30년 시간 공백을 순식간에 메꾸고 있었다. 기억 속 흐릿한 회상 필름이 점점 또렷해지더니, 30년 된 빛바랜 사격 훈련의 추억이 PRI(사격술 예비 훈련으로 기본적인 사격 자세와 격발 훈련을 뜻하는 영어 첫머리 약자)로 땀에 절은 전투복의 쉰내처럼 기억의 저편에서 스멀스멀 살아났단다. 그렇게 아빠와 너 사이에는 사격이라는 새로운 디딤돌이 생겨났고, 우리는 그 돌을 통해 서로의 삶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는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스포츠 활동으로 낚시를 예찬했단다. 낚시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 중 하나인 사냥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짐으로써 원초적 쾌감을 얻게 하는데, 이러한 원초적 욕구와 이에 따른 쾌감은 대뇌 변연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 그렇다면 사격은 어떨까? 사격도 낚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해. 가령 표적을 사냥감이라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너는 방아쉬를 당기는 순간의 묘한 기대감이나 흥분감을 기억하고 있니? 원시적 본능과 관련된 사격이나 낚시, 사냥과 같은 활동들은 높은 집중력을 요구함에도 집요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을 지니고 있어.
군대에서 이런 말을 듣기란 쉽지 않을 거야. 왜 그럴까? 그 자체도 재미있는 활동이지만, 사격은 사냥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닿아 있기 때문이야. 사격은 설사 오늘 좀 힘들었더라도 내일 다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그런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활동들은 높은 집중력과 몰입감을 주기 때문에 집중력 향상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 또한 이들은 뇌를 자극하여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데, 도파민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열정과 활력을 주는 신경물질로 삶에 쾌감을 주는 동시에 과제에 집중하게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드는 활력제 역할을 한단다. 반대로 도파민이 부족하면 운동 기능이나 마음에 장애를 일으켜 파킨슨병이나 우울증을 유발하게 돼.
그런데 대뇌 변연계의 중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아. 대뇌 변연계는 자신의 감정을 일으키거나 조절하는 것은 물론 가까이 있는 사람의 내면 상태를 감지하여 자신의 감정과 조율하는 역할도 한단다. 이러한 기능은 사회적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대뇌 변연계를 '사회적 감각기관'이라고도 해. 대뇌 변연계가 제 기능을 잘 발휘하면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에 알맞게 나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조절 과정이 서로에게서 일어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끌림과 깊은 신뢰, 상호 존중을 경험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두 사람의 뇌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대뇌 변연계의 상호작용을 '변연계 공명'이라고 한단다.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볼을 비비며 활짝 웃고 있는 엄마와 아기, 낚싯줄에 걸린 고기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두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걷고 있는 부부, 승리를 일궈낸 뒤 어깨춤을 추고 있는 운동 선수들, 그 팀을 한 마음으로 응원한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응원가. 이 모든 장면에서 우리는 대뇌 변연계의 공명을 느낄 수 있단다. 경험과 감정의 상호작용을 통해 마음이 교감되고 있음을 느끼는 모든 장면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정선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돼. 그때야 비로소 너, 나가 아닌 '우리'가 되는 거야. 마치 30년 전 아빠의 사격 경험이 오늘 너의 사격 경험을 만나 너와 나 사이에 마음의 다리를 놓은 것처럼.
인생에 뚜렷한 표적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처럼 흥분과 쾌감으로 가득차게 될 수도 있겠다. 100m, 200m, 300m... 사격 거리에 따라 표적 크기가 다르게 보이듯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인생의 표적도 마찬가지야. 하루 삶의 목표는 뚜렷하게 보이고 성패도 비교적 빠른 시간에 나타나는 반면, 인생이라는 긴 삶의 목표는 희미하고 성패를 예측하기 쉽지 않지. 그렇기에 인생을 우울한 여정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러나 100m 사격과 300m 사격 방법이 다르지 않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방법과 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다르지 않단다. 하루하루를 행복감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면, 그런 사람의 인생은 당연히 행복과 즐거움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며, 하루하루의 목표에 충실한 사람의 삶은 긴 삶의 순항과정에서도 결코 그 목표점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게 될 거야.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지.
그러니 우리, 오늘 하루도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