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2월 초 어느 날 태어났습니다. 음력에 익숙하신 부모님이 정하신 음력 생일이 12월이니, 양력으로 따지자면 1월 중순 어느 날쯤이었을 것입니다. 춥디 추운 겨울 한가운데, 생각만 해도 이가 덜덜 떨리는 강원도 산골의 누추한 어느 방에서 말이지요. 날 낳으시느라 어머니께서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요. 갓 태어난 저에게 생각이란 게 있었다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께 무척 미안했을 것 같습니다.
늘 1월 중순 어느 날이 생일이라고 미리미리 일러주는 아내 탓에 나는 내 생을 잊고 삽니다. 그렇지만 내 생일 한 달 남짓 후 찾아 올 아내 생일은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각종 알람으로 이중 삼중의 사전 고지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이지요. 뭐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닌가요? 아내도 나처럼 이런 마음일 테니 누구 하나가 손해를 보거나 억울하지 않을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니 서로 고맙게 엮여 있어야 실은 내 존재도 더 안전해지니까요.
제51번째 생일이 올해는 12월 말에 찾아왔어요. 저도 꽤 많이 살았지요? 3일 전, 친구들 연말 모임에서 아내는 제 생일이 내일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깜짝 발표를 하더군요. 물론 저도 깜짝 놀랐어요. 12월에 생일이라니...
그리고 드디어 오늘 아침, 정말 마음에 꼭 드는 생일상을 받았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담긴, 단출하지만 아름다운 나의 51번째 생일상
오늘은 아름다운 나의 위대한 생일상을 소개합니다.
나의 소원, 흰쌀밥
첫 번째로 소개할 음식은 찰진 여주 쌀밥입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저는 쌀밥을 거의 먹어보지 못했어요. 대부분은 강냉이쌀(옥수수 부순 것)이 주식이었고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찐 것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어요. 쌀밥에 얽힌 저의 안타까운 사연을 하나 소개할게요.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저는 '바른생활' 과목을 무척 좋아했어요. 아니, 도덕이었나요? 과목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 대한 시험을 쳤었지요. 그런데 바른생활 과목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거의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문제라고 하는 게 대부분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에 대한 것이었으니 정말 글씨를 모르지 않다면 최소한 80점 이상은 모든 아이들이 받을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 공부 안 하던 시골에서도 말이지요.
제가 5학년 때였어요. 바른생활 시험에 북한의 어린이 생활이 아닌 것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저는 그만 <매일 강냉이밥을 먹는다>를 선택하고 말았지요. 그 이유는 내가 매일 먹는 강냉이밥을 그 못살고 굶주리던 북한 어린이들이 먹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우리 반에서는 저와 같은 생각으로 틀린 친구들이 많아서 단체로 벌을 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버지 생신 때나 구경하던 귀한 쌀밥. 이젠 누구나 먹는, 아니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며 식탁에서 찬밥 대접을 받는 100% 우리 쌀로 지은 '흰쌀밥'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먹는 소중한 나의 에너지원이자 어린 시절 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준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음식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미역국
두 번째로 소개할 음식은 역시 소고기 미역국입니다. 어느 나라나 특별한 날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지요. 우리나라 생일상에 꼭 있어야 하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음식이 바로 미역국이지요. 생일날 먹는 미역국이 특별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제 아내에게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누구나 끓여주는 미역국이지만, 그 미역국을 끓이려면 미역을 사야 하고 소고기를 사야 하고 또 알맞게 간을 맞춰 볶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제 아내는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고기를 많이 넣어주는 마음 씀씀이에도 고맙습니다. 미역국을 먹겠다고 국을 푸던 둘째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와! 아빠, 이거 미역국이에요? 소고깃국이에요?"
미역국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면 믿지 않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 가족들은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니 오늘 소개합니다.
저는 87학번입니다. 87년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뜻이지요. 그때는 경기도의 작은 읍내에 살고 있었는데, 대학을 가기 위해 학력고사를 치렀지요. 가까운 대도시 학교에서 학력고사를 치르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수능으로 치자면 정시에 해당하는데, 당시는 거의 100% 정시로만 대학에 갔답니다.
그런데 학력고사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주셨어요. 어려운 살림살이였지만 누구에게 들으셨는지 미역국이 뇌에 좋다는 고급 정보를 들으시고는 소고기 미역국을 맛있게 끓이셨어요. 당시에는 저도 미신 따위를 믿지 않았고 '미역국 마셨다'가 시험에 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몰랐었답니다.
어머니의 후회는 시험 당일 저녁부터였어요. 아들 시험 보러 갔다고 집에서 가만히 쉬실 분이 아니셨지요. 종교를 믿으시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절에 다녀오신 모양인데, 그곳에서 미역국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게 되셨답니다. 당시에도 모의고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모의고사보다 못한 학력고사 성적이 나온 후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시며 평생을 두고 저에게 미안해하셨답니다.
아들 좋아하는 김치만두 만드신다며 살얼음 낀 김치를 맨손으로 다지시던 고마운 어머니께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워드렸던 못난 아들의 게으른 노력을 반성하며, 오늘 소고기 미역국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가족의 정성이 가득한 우리집표 김치
세 번째로 소개할 음식은 우리집표 김치입니다.
김치는 한국인의 대표음식이지만 우리 집은 김치에 각별한 정을 담아 먹습니다. 3남 3녀 대가족인 저희는 매년 입동에 즈음하여 시골집에 모여 김장을 담습니다. 누나와 여동생은 각자 시댁에서 김장을 하는 관계로 김장하는 날에는 남자 삼 형제 가족이 모두 모여 1박 2일 동안 전투적으로 김장 담그기 작전을 펼칩니다.
매년 평균 150포기 정도의 김치를 담그는데, 삼 형제가 적절하게 나눕니다. 올해 제가 가져온 김치는 김치냉장고용 김치통으로 18통 정도입니다. 통 8개가 들어가는 김치 냉장고 2개를 채우고, 일반 냉장고에 2통을 따로 넣어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더군요. 무슨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어?
네, 저희는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습니다. 제 아이들도 김치를 이용한 국과 찌개를 좋아하고, 특히 김치볶음밥을 무척 좋아하지요. 겨울에는 김치만두도 많이 만들어 먹습니다. 만두를 만들려면 김치가 많이 필요하답니다.
김치에는 가족을 사랑하시는 늙으신 아버지의 정이 가득합니다. 배추와 무, 갓, 파, 마늘, 고추 등 김장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8월부터 정성껏 가꾸셨지요. 김장하러 오는 아들 며느리 편하라고 물도 미리 담아 두시고, 마늘도 갈아 두시고 고춧가루도 미리 빻아 놓으시는 아버지.
남들은 뭐하러 힘들게 고생해서 김장을 하냐고 하지요. 그렇지만 아직은 저도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유대 관계는 피를 공유하는 것만으로서 형성되지 않습니다. 함께 모일 기회를 만들고, 그 모임을 통해 끈끈함을 느껴야 유대감이 쌓이게 됩니다. 비록 몸은 다소 피곤하더라도, 그 덕에 쌓은 가족의 유대감은 돈으로 치환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참여하는 김장 만들기를 통해 우리 가족은 지금은 소멸해가고 있는 근대 이전의 가족 노동을 경험하고 그 덕분에 근대 이전과 같은 끈끈한 정을 쌓고 있답니다. 온 가족의 정성이 담긴 김장김치를 오늘따라 아내는 락앤락 플라스탁 통이 아닌 흰 접시에 담아내었네요. 내 생일날에 대한 아내의 배려가 고맙습니다.
고소한 들기름 향에 묻어나는 지난여름의 열정
네 번째로 소개할 음식은 두부조림입니다.
두부조림은 강원도 출신인 저희 가족이 즐겨 먹던 추억 음식입니다. 특별히 오늘 생일상에 오른 두부조림은 올여름, 틈틈이 아버지를 도운 저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 담겨 있기에 더욱 특별합니다.
두부조림을 할 때는 들기름을 사용하지요. 빨간 소스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고소한 들기름 향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깨를 심는 일부터 베는 일까지, 참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1.5L 들기름 한 병으로 우리 가족은 일 년 동안 고소한 두부조림, 감자조림, 감자전을 만들어 먹습니다.
음식의 향은 향신료의 값이 아닌, 그 향신료를 얻기까지 들인 소소한 노력이 모여 더욱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덤으로 뭐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 달걀프라이!
아내는 제 생일상이 초라한 것 같다며 달걀프라이를 덤으로 내옵니다. 그 마음이 고맙습니다. 계란이 귀한 시절에는 그 자체가 특별한 음식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너무도 흔한 음식으로 가치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달걀프라이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담긴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누군가의 밥상에 작은 성의를 보태고 싶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달걀프라이라도 하나 더 해 줄까?"
그렇습니다. 달걀프라이는 없어서 못 먹는 귀한 음식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을 전할 때 아주 유용한 음식입니다.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없습니다. 영양은 만점인데도 말이죠.
저는 사실 달걀프라이를 즐겨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 51번째 생일상에 오른 달걀프라이는 반갑고 뿌듯합니다. 뭔가를 더 내주고 싶은 아내의 배려가 느껴지고 어머니를 닮은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2시! 아빠 생일 축하드립니다. 둘째 아들의 깜짝 선물, 생일 케익!!
제 둘째 아들은 2000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이제 만 20세가 되었지요.
저희 부부는 아들만 둘을 키웠고, 이제 모두 만 20세가 되었으니 부모의 역할을 대체로 마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들은 대체로 무뚝뚝하고 상냥하지 않다고 하지요? 그래서 모두들 저희 부부를 보면 안 됐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키우기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늘 우리 아이들에게 대만족입니다.
제 생일 전날, 친구 모임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후 아내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저는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지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는데, 둘째 아들이 갑자기 베란다에 나가더니 케이크를 들고 오더군요.
정확하게 12시가 지나고 10초쯤 시간이 지난 무렵이었어요.
"아빠, 생신 축하드립니다."
잠도 안 자고 정각 12시 카운트다운을 제 방에서 하고 있었을 아들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케이크는 미리 사다 놓은 채로 말이지요. 우리는 비밀 작적을 펼치듯 서둘러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끈 후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맥주 한잔 할까?"
"맥주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편의점에서 사올게요."
연말 모임에서 술을 마신 뒤임에도 오랜만에 아들과 단둘이 마시는 맥주는 아주 상쾌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2시 30분까지 아들과 저는 양자역학, 다세계 이론, 군대, 천문학, 대학생활 등의 세계적인? 지식 분야에 대하여 아주 얕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학에서 지구과학과 천문학을 전공하는 아들의 관심 분야와 저의 관심 분야가 비슷한 것에 대하여도 감사했고, 20년의 세월을 넘어 늘 곁을 지켜주고 있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감사했으며, 12시가 넘는 시간에도 심부름을 시킬 믿음직한 아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했습니다.
물론 모든 이를 위해 나라를 지키고 있는 첫째 아들에게도 감사했지요.
제51번째 생일상은 이렇게 깨끗하게 비워졌어요. 비록 두부 졸임이 조금 남았지만 그건 제 추억의 몫으로 조금 남겨두었습니다. 전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성스러웠고, 저의 50년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담아져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내내 저는 지난 세월을 생각했습니다. 51번째 생일상,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생일상 변화의 법칙?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첫돌 때부터 생일상을 받기 시작해서 생을 다할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생일이라는 의식을 치르며 살아갑니다. 수십 년간 지속되는 생일이라는 의식도 매년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일 의식(이하 '생일상'으로 통칭) 변화를 물리 법칙처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요?
열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열은 절대로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만일 열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굳이 난방 기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비가역적(방향을 반대로 되돌리기 어려운) 사건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생일상에도 적용 가능한 법칙이 있다면 그 관심도가 점점 낮아진다는 점은 아닐까요?
생일상에 대한 관심도는 내가 산 시간에 반비례한다. ( 생일상 관심도 = 첫돌 관심량/내가 산 햇수)
한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 생일날 받는 관심도가 가장 높은 때는 아마 첫돌일 것입니다. 특히 첫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첫 번째는 특별하다고 여기니까요. 그러나 첫돌 이후부터 생일날 받는 나의 관심도는 점점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낮아지는 관심은 점점 돈으로 , 남이 만든 음식으로 대체됩니다. 생일상은 화려 해지지만 정작 가족은 관심은 점점 사그라져가는 경우도 많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