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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물점 Dec 24. 2019

고난과 어울려 사는 법 2

군에 있는 아들에게 아빠가 보내는 인생 편지 11/100

같은 경험도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탁자 위에 똑같은 빵이 두 조각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배가 고픈 A와 B가 각자 하나씩 빵을 나누어 먹었다. 두 사람에게 각각의 빵은 어떻게 기억될까?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너만 교수는 인간의 행동과 의사 결정에 관한 행동주의 경제학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어. 그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연결하여 인간의 의사 결정이 반드시 합리성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로 제시하였단다. 카너만 교수는 인간의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의 두 가지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했어. 경험하는 자아는 지금 자신이 뭔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자아이고, 기억하는 자아는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다시 끄집어내고 평가하는 자아야.


앞서 같은 빵을 먹은 A와 B는 같은 경험을 지니고 있겠지? 그렇다면 먼 훗날 두 사람의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가 각각의 경험에 대하여 내린 평가도 서로 같을까? 카너만 교수의 결론은 서로 다르다는 거야.


A: "그때 먹었던 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배고픈 사람에게 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고, 그 빵의 힘으로 저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정말 고맙고 고마운 빵이었어요.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같은 빵을 먹곤 해요."

B: "그 빵은 제 인생의 수치예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런 빵을 냉큼 주워 먹은 제 행동이 한없이 부끄럽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 후로는 절대 빵을 먹지 않아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요."


A의 기억하는 자아는 자신이 겪은 고난 경험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반면 B의 기억하는 자아는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심지어 그 기억을 회피하고 있지.


연구 영역을 '행복경제학'으로 확장한 카너먼 교수에 따르면 자신이 겪은 고난이나 힘들었던 경험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행복 지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복 지수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해. 따라서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고 그 경험에 대하여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그렇다면, 기억하는 자아의 자기 경험에 대한 긍정 평가는 어떻게 행복한 삶에 도움을 줄까?



고난을 이겨내는 힘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의 저자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카너먼 교수의 긍정적 기억 자아를 마음의 근력과 같다고 표현했단다. '회복탄력성'이란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능력 또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마음의 힘인데, 이러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바로 긍정적 기억 자아라는 거야. 늘 자신의 경험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의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뜻이지.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인생을 살며 마주하는 숱한 좌절과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극복하려는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결국, 긍정적인 기억 자아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바탕이 되고, 이렇게 키워진 마음의 힘은 그 사람의 회복탄력성을 높여 그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지.


자, 여기 우리 인생의 탁자에 '군 복무'라는 빵이 놓여 있다고 하자. 선택의 여지없이 이 빵을 먹은 모두는 대체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군 복무는 같은 기억으로 남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렇다면 이제 선택은 너의 몫이 되었다. 인생의 황금기에 새겨진 2년의 경험을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인생이라는 판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면, 2년의 군생활 카드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조커로 활용할 것인가?

 

나는 군 복무 중인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함박눈처럼 소복이 그들의 인생 위에 쌓이는 군생활 경험을 소중한 조커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밑거름으로 만들기를 바란다는 뜻이며, 군생활 경험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길 바란다는 뜻이다.

농부가 거름용 썩은 풀 냄새를 회피하고 멀리하지 않듯이, 어부가 비린내 나는 바다를 냄새난다며 멀리하지 않듯이, 짠내 나는 너의 전투복을 어색한 너의 짧은 머리를 경멸하지 말기를 바란다.


비록 간절히 원했던 군생활이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긍정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작은 긍정들이 모여 어느 순간 너의 조직생활 면역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일 것이며, 이런저런 실수로 질타받은 잊고 싶은 비참한 어느 하루도 너의 따뜻한 시선을 만나면 소중한 배움의 기억으로 찬란하게 빛나게 될 거야.

고득점을 노리는 수험생들이 오답 노트를 소중히 정리하고 아끼듯 실수 투성이 하루하루를 네가 아끼고 감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란다. 그렇게 쌓인 힘들이 네 마음의 힘을 키우고 네 인생의 행복감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는 것임을 꼭 마음에 담아 두길 바란다.


억지로 웃는 웃음이라도 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고, 마주하는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하더구나.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군생활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분명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거란다. 고난을 긍정하는 회복탄력성이 증가하기 때문이지. 이것이 행복 심리학의 가르침이며, 아빠가 너에게 전하는 두 번째 방법이란다. (by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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