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에 아이와 꼭 해야 할 체험, 겨울철 별자리 여행
당신이 20년 동안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아이들과 4계절 밤하늘에서 별을 찾아 헤매던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별은 누구에게나 신비이고 아름다움이며 추억이다.
텔레비전조차 드물었던 오래 전 밤하늘은 별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이자, 분주히 힘을 겨루는 영웅들의 온라인 게임장이었다. 그 시절, 늦은 저녁밥을 먹은 후 할일없이 드러누워 찾았던 북두칠성은 눈빛 마주치는 누구에게나 반가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총총이 박힌 그 별들이 윤동주의 '서시'에 담기는 순간 우리는 열광했고 황홀했으며, 그 별과 함께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동주가 되었다.
밤하늘 별들을 두 눈과 가슴에 담았던 사람들은 영롱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별빛을 추억 삼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별들의 이야기는 세대를 넘어 그들의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서울 근교에 교육 체험이 가능한 천문대가 늘어나고, 밤길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과 천문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눈빛과 속삼임에서 별빛으로 서로 엮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았다. 20년 전 내가 그이들처럼 내 아이들과 그랬던 것처럼.
나의 밤하늘에는 칼 세이건의 항성 이야기가 아닌 늙으신 할머니의 별나라 이야기가 가득하다. 북쪽 하늘 북두칠성도 여섯 번째 별이 '이중성'이라는 과학적 설명보다 홀어머니와 일곱 형제 이야기로 더 또렷이 기억된다. 아무리 살펴도 곰 모양이 그려지지 않는 그리스 신화 속 큰곰자리보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넉넉히 그려지는 '국자'라는 해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여름 밤하늘은 또 어떤가. 하프자리 베가(Vega)와 독수리자리 알타이르(Altair)보다 직녀(Vega)와 견우(Altair)가 훨씬 더 정겹다. 게다가 둘 사이를 가르는 은하수를 따라 유유히 날깨를 펼치고 있는 백조자리를 까마귀자리라고 설명하면 더더욱 완벽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지식이 아닌 이야기로 별들과 처음 만났고 지금도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별들을 기억한다. 덕분에 이 나이까지도 별들은 나에게 친구이자 우상이며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밤하늘에서 별을 헤아리고, 별자리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여행자'의 지위가 부여되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지도 않았고, 그저 밤이 오기를 기다려 별들과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여행자' 칭호는 얼핏 과장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도 '별자리 여행'이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 자연스럽다. 아무도 해보지 못한 우주여행이 아무런 문제 없이 쓰이고 있듯이.
첫째, 별빛은 어른과 아이의 마음에 공감의 울림을 전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이유를 일일이 줄세우지 않더라도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만나고 환상적인 별자리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설렌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환상을 품고 별과 마주한다. 스토리텔러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별'이라는 대상이 품고 있는 신비, 낭만, 상상의 에너지 자체로도 우리의 초보적인 호기심은 충분히 자극된다. 떠나기도 전에 가슴 설레는 여행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어른이나 아이 모두를 설레게 하는 여행이.
둘째, 별자리에는 풍부한 이야기가 있다. 여행이 행복의 필요조건이 된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나와 다른 이야기를 듣고, 보고, 느낀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구부러진 삶의 허리도 다시금 곧게 편다. 밤하늘 별자리에도 숱하게 많은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용감한 전사를 만나기도 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과 만나기도 하며 또 가끔씩은 100여 년 전 고흐의 시선과도 마주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각각의 이야기에는 삶이 있고 고뇌가 있고 행복의 조건이 담겨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서적 양분이 있고 우리들 각자의 삶을 새롭게 할 에너지가 있다.
셋째, 별빛을 보는 것 자체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다. 흔히 나침반 대신 북쪽 방향을 가늠할 때 길잡이별로 인식되는 북극성은 지구로부터 대략 440광년의 거리에 있다. 오늘 밤 우리가 바라보는 북극성의 별빛은 대략 440년 전 과거의 별빛을 바라보는 셈이다. 겨울철 밤하늘에는 지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를 만날 수 있다. 맑은 날 새벽녘에 바라보는 시리우스는 멀리 떨어진 가로등처럼 밝게 빛나기도 한다. 시리우스는 지구로부터 약 8.6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러니 밝은 시리우스 별을 보며 8년 전 어느 날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없다. 다만 과거에서 온 빛을 눈으로 볼 수는 있다.
넷째, 사람은 별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했다. 그래서 밤하늘 별들에서 '나의 별'을 찾는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년월일에 해당하는 별자리 하나쯤을 알고 있다. 심지어 이를 이용하여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우주 차원의 시간에서 볼 때 인간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만큼만 흔적을 남기지만, 태양만 해도 100억 년의 시간을 산다. 별은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태양과 별을 통해 영원불멸한 존재를 상상했고 수많은 신을 탄생시켰으며 그 속에 자신의 존재를 심고자 했다. 아이와 함께 나만의 별을 정해 보자. '나의 별'을 정하는 일은 우주에 영원한 나의 분신을 만드는 일이며, 절대로 변치 않을 나의 아바타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수천 년 전 이집트왕 파라오가 태양을 자신의 아바타로 정했듯이.
다섯째, 별빛은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품고 있다. 인간처럼 집요하게 자신의 과거를 탐닉하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138억 년 전, 우주 탄생 초기에까지 시간을 되돌려 그 모습을 들추어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과거 탐닉 목적은 미래를 알기 위함이다.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 끝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을 지향하는 항공우주공학자, 천문학자, 이론물리학자, 생명공학자들이 저 먼 과거의 별빛을 통해 미래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니 오늘날 별과 별자리를 관찰하는 것은 미래의 직업에 대한 탐색 활동이자 일종의 사전 구직 여행일지도 모른다. 연세대학교 이석영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초신성의 후예이다. 별빛은 인간의 과거와 미래가 고스란히 담긴 오래된 미래이다.
덤으로 구차하게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별자리 체험은 초등학교 과학, 중고등학교 지구과학 과목과도 줄줄이 연결된다. 그러니 부모의 교육열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한 소재가 된다. 그야말로 교육과 낭만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낭만 여행으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필자의 경험과 주위의 여행 경험을 종합할 때 별자리 여행은 실패할 확률이 크지 않은, 일정한 수익률이 보장된 투자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겠다. 바로 떠날 준비를 해보자.
다음 글에서는: 꼭 알아야 할 겨울철 별자리와 굳이 겨울철을 추천하는 이유 그리고 의미 있는 별자리 여행을 위한 준비와 방법을 소개합니다.
<2020년 1월 9일 등록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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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는 티베트 고원 라다크에서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개발 담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펼친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래된 것은 모두 구식으로 치부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짧은 제목으로 날카롭게 풍자했다. 괴테는 그의 명저 '파우스트'에서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고 썼다. 만약 괴테의 말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고쳐 쓰라면 나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오래된 미래의 별빛이다."라고 쓰겠다. <By 철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