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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물점 Jan 14. 2020

백 번 구르고 천 번 돌아라

겨울 방학에 내 아이와 꼭 해야 할 체험 여행

설빙칠우와 함께 놀기 3부 <팽이치기>


'팽이' 이야기


백 번 구르고 천 번 돌아 잠시도 쉬지 않으니 

아이들이 즐겨보고 신기하다 외친다.

둥근 해와 달도 본디 이와 같으니

뜬 세상의 분주함을 네 어찌 알랴.


안녕, 나는 팽이야.

조선 시대에 살았던 어떤 시인은 팽이치기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였대. 어떠니? 정말 팽팽 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잘 표현하지 않았니?

겨울철 놀이하면 내가 빠질 수 없지. 도시가 발달하기 전에는 얼음이 언 논밭이나 하천 등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놀았는데, 요즘 대도시 주변에는 얼음이 언 장소를 찾기가 힘들어서 나를 찾는 이들도 점점 뜸해지고 있어. 그렇다고 내 인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야. 요즘에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 체육관이나 교실 바닥에서 나를 가지고 노는 놀이 수업을 해. 나를 돌리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보면 내 기분도 절로 즐겁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껴. 만화영화 '탑블레이드' 때문에 기게식 팽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많지만, 팽이치기의 진정한 즐거움 측면에서는 얼음 위에서 채를 이용해 나를 돌리는 전통 팽이를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아.  


팽이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팽이치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720년 일본에서 쓰인 역사책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에 팽이가 전해진 시기는 신라 성덕왕 때라고 한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팽이를 '고마'라고 했는데, '고마'는 한반도에서 전해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는 그 이전에도 팽이가 존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기산 김준근의 팽이치기(국립 민속박물관)

팽이치기의 명칭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조선 시대에는 '핑이'라고 불렸으며, 평안도 사람들은 '세리', 함경도 사람들은 '봉애' 또는 '방애', 경상도 사람들은 '뺑이' 또는 '핑딩', 전라도 사람들은 '뺑돌이', 제주도 사람들은 '도래기'라고 각각 다르게 불렀다.

팽이는 박달나무와 같이 무겁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었는데, 팽이와 얼음이 접촉하는 끝부분이 쉽게 닳아 무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요즘 팽이의 끝부분에는 금속 구슬이 박혀 있어 무뎌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팽이를 잘 돌리려면 '채'의 역할이 중요하다. 채에는 50cm 내외의 명주실이나 노끈을 매서 사용하는데, 오래전 과거에는 닥나무 껍질을 가늘고 갈게 가르고 풀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팽이치기는 아이들을 몰입의 세계로 안내한다.

 

"몰입은 어떤 일에 집중해 완전히 몰두했을 때의 의식 상태를 말한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이나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표현과 유사한 상태로, 경험하는 사람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 다음 백과에서 제시하는 몰입에 대한 정의이다. 


저서 '몰입의 즐거움'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하이 교수는  창조적인 사람의 3가지 요건으로 전문지식과 창의적 사고, 몰입을 제시하였다. 어떤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현하려면 그와 관련한 전문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떨어지는 사과로 중력 개념을 이끌어낸 뉴턴처럼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에 대한 ‘몰입’이 창조를 완성시킨다고 역설한다. 또한 그는 우리가 인생에서 자기만족을 즐기려면 집중력, 즉 몰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몰입을 경험한다. 가장 흔하게는 자신의 업무에서 몰입을 경험하며, 영화를 볼 때, 드라마를 볼 때,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할 때 몰입을 경험한다. 몰입 경험 후 찾아오는 행복감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미하이 칙센트하이 교수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몰입은 대단히 중요하다. 몰입은 아이들의 뇌를 깨우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에 눈뜨게 한다. 건강한 일에 대한 몰입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신경 세포 뉴런을 각성시킨다. 


필자가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행했던 다양한 놀이 활동 경험을 종합할 때 팽이치기만큼 쉽게 아이들을 몰입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활동은 흔치 않았다. 팽이치기는 반드시 실패를 동반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스스로 재도전에 나선다. 국어 시간, 수학 시간에 쉽사리 포기했던 아이들도 팽이치기는 포기하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팽이치기는 참 매력 넘치는 놀이다. 몇 번의 실패 후에 대부분 빛나는 성공 경험을 아이들에게 안긴다. 아이들이 더더욱 몰입하는 기폭제가 된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세밀하게 힘을 조절하며 팽이를 돌리는 데 집중한다. 안타까운 탄식과 즐거운 환호성이 공존한다. 팽이치기의 매력이다.  


팽이치기 10배 즐기는 꿀팁!


1. 대부분의 팽이는 윗면에 단순한 형태의 도안이 그려져 있다. 가급적 아무런 도안이 없는 민무늬 팽이를 구입하자. 그리고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싶은 도안을 그려 넣도록 하자. 처음에는 직접 팽이에 도안을 그리지 말고, 종이를 팽이 크기에 맞게 둥글게 잘라 그 위에 도안을 그려 붙이자. 팽이를 돌려보고 나타나는 문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도안을 그려 붙이면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회전체에 효과적인 문양을 고민하게 되고 창의적인 도안을 생각하게 된다.


2. 구입하는 팽이채는 끈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채와 끈이 단단하게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드 등을 이용하여 채와 끈을 단단히 결합한 후 아이 손에 들려주자. 끈이 풀려버리면 아이들의 도전 의식도 풀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3. 처음에는 단순한 오래 돌리기 활동을 위주로 하고, 익숙해진 이후에는 다양한 게임 활동으로 변형하여 놀아 보자. 

 - 목표점 돌아오기: 팽이를 쳐서 목표점을 돌아오는 게임

 - 누가누가 오래 도나: 동시에 채를 거두고 더 오래 도는 팽이가 이기는 게임

 - 팽이 싸움: 서로의 팽이를 부딪게 하여 먼저 쓰러뜨리는 팽이가 이기는 게임

 - 발로 돌리기: 회전력을 얻은 후 채를 거두고 팽이를 발로 빗겨 차며 오래 돌리면 이기는 게임

 - 멀리 보내기: 팽이를 출발선에 서게 한 후 채로 세게 쳐서 쓰러지지 않고 멀리 보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우리의 전래 놀이가 모두 그렇듯이 팽이를 이용한 게임도 다양한 응용과 변형이 가능하다. 아이들 스스로도 다양한 변형 게임을 만들어 즐긴다. 이보다 더 창의적인 놀이 활동이 어디 있겠는가.


"팽이가 회전할 때, 팽이는 더 이상 팽이가 아니다. 나 자신이다. 그래서 더 오래 버티기를 바라고 더 강하게 돌기를 바란다. 백 번 구르고, 천 번 돌아라. 팽이는 나의 삶이다."    By 철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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