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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Aug 18. 2020

불어터진 라면과 팔천 원짜리 위스키


 라면에 대한 첫 기억은 이렇다. 보은에 살던 여서 일곱살쯤 선진인가 아현이 어머니가 저녁 식사로 라면을 끓여주셨다. 아이가 보기에는 꽤 커다란 대접에 넘칠 만큼 라면이 가득 들어있었다. 배가 고팠던 것도 같은데, 그때 나는 라면을 싫어했다. 눈치껏 열심히 먹기는 했지만 죄송스럽게도 다 먹지는 못했다. 그런 내가 집에서 라면을 먹는 일은 당연하게 손에 꼽았다. 가족들은 주말이면 ‘라면의 날’이라도 되는 듯 물을 올렸고 짭짤한 냄새가 방으로 들어오건,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귀에 꽂히건 아랑곳하지 않고 라면을 먹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내 입맛은 아주 완벽히 바뀌었다. 삼겹살을 즐겨 먹기 시작했고, 좋아하지 않던 냉면이나 닭발도 잘 먹었다. 특히 라면에 대한 입맛이 그랬다. 간편했고, 푸짐했다. 자극적이면서도 매콤한 국물이 스며든 쫄깃한 면발이나 찬밥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기 시작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른 요리는 곧잘 했지만 라면을 요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라면에 대한 애정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늦었지만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외국에 있을 때 이백퍼센트 발휘되곤 했다.


 한국 라면 특유의 맵고 기름진 맛은 다른 나라 라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 맛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어쨌거나 ‘한국 라면’을 먹어야 했다. 또 어쩐지 외국에서는 그 맛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라, 캐리어에 라면 한 봉지 정도는 꼭 챙겼다. 아무리 아껴먹어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라면은 동이 나곤 했다. 한인 마트에서도 살 수 있다지만 그건 왠지 내 사정에 사치처럼 느껴졌다. 겨우 라면 하나를 사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가며 라면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첫 번째 방법은 양을 불리는 것이었다. 수프를 푼 물에 찬밥을 넣고 밥알이 부드럽게 흩어질 때까지 끓여준다. 너무 죽처럼 되지는 않도록 조심한다. 그리고 면을 넣는데 기본 조리법보다 더 오래 끓여준다. 그러면 면이 퉁퉁 불어 자연스럽게 양이 많아진다. 나는 ‘쫄깃함’에 대한 욕심만큼은 쉽게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퉁퉁 물컹 면’에 대한 용납이 가능했다. 한참 면과 밥을 한 데 끓이면 국물이 자작해질 정도로 양이 순식간에 불어난다.

 밥이 없을 때는 파스타 면을 넣어 조리했다. 외국에서 파스타면은 한국과 비교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항상 집 안에 구비해 놓곤 했다. 본래 라면 면보다 국물이 스며드는 맛의 매력은 덜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양을 보완해주기에는 괜찮았다.


 두 번째는 라면 자체를 아껴가며 먹는 것인데, 라면에서 가장 중요한 맛을 담당하는 ‘수프’를 다 넣지 않는 것이다. 그냥 라면의 향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프를 조금씩 아껴가며 넣곤 했다. 물론 결과물은 처참했다. 향은 나더라도 라면 특유의 매운맛, 짠맛이 느껴지지 않아 결국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려 먹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라면 국물을 저장해 놓는 것이다. 이건 언니에게 배운 방법인데, 라면을 끓인 후 수프 국물은 그릇에 덜어놓고 면과 적당한 국물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그릇에 덜어놓은 국물은 냉장 보관했다가 다시 데워서 먹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라면은 대형마트에서  위스키와 함께 먹었다.  병에 팔천  정도 하는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위스키 특유의 고소한 오크 향과 독한 맛이 온전히 느껴졌다. “허여멀건 해도 딴에는 라면이다, 독하지만도 않고 딴에는 위스키네하면서 맛을 느끼고 기분을 냈다. 라면 냄비와  잔을 바리바리 챙겨 나온, 어둠이 내려앉은 어느  밤이었다.


 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라면은 고급식품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손님을 대접할 때나, 부유한 사람들이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다고. 이후로는 지금처럼 저렴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그때 그 시절 나와 같은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 먹던 사람들이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부엌 한쪽에 자리 잡은 라면이 줄어들지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든 꺼내 세상 짭짤한 비율로 끓여 먹을 수 있지만, 그때 그 라면처럼 애틋하고 소중한 맛을 다시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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