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ulio라는 애가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내 멋대로 ‘바울이’라고 불렀고 바울이는 나를 ‘시모’라고 불렀다. 필연적으로 그애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종군 사진 기자에 대한 자신의 꿈을 벅차게 말할 때, 가슴 아픈 서로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처음 들어보는 고대 인디언의 언어로 시를 읽어 줄 때 나는 또 그애에게 사랑을 느꼈다.
어느 날은 볶음 고추장으로 닭갈비를 해줘야지, 생각하며 요리를 했다. 그애가 요리해왔던 중국식 볶음면에 대한 답례였다. 닭 허벅지살 한 팩을 사서 손질을 하고 만들어 놓은 소스에 버무렸다. 양념에 섞은 고기를 팬에 넣고 조금 익히다가 정갈하게 썰어놓은 각종 채소를 함께 넣고 끓였다. 그동안 포실 포실하게 흰 밥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하긴 힘드니 집에서 먹더라도 식당에서 먹는 분위기를 내고 싶어, 아니 그런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 불편한 옷도 꺼내 입었다.
요리하며 바울이에게 술을 조금 사 와달라고 부탁했다. 뭐 맥주나 몇 병 사 왔으면 했다. 그애는 대신에 커다란 병 하나와 럼을 챙겨 왔다. 병에는 라임을 잔뜩 썰어 넣은 탄산수가 들어있었다. 묵직한 가방 안을 보니 위스키와 진 따위의 양주도 챙긴 모양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생각나는 모든 술을 가져온 것처럼 보였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이거 다 마시면 큰일 나.” 나는 행복해서 펄쩍펄쩍 뛰고 싶은 심정을 감추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괜찮아. 다른 건 마시지 않아도 되는데, 이건 마셔야 해.”
바울이는 가져온 것 중 가장 큰 존재감의 병을 들어 보였다.
“오늘 네 요리와 함께 마실 모히또를 만들어왔어!”
그러면서 병뚜껑을 열고 화이트 럼 한 병을 몽땅 부어 넣었다.
깜짝 놀라서 “그걸 다 넣어?” 했더니 그애는 천연덕스럽게 “한 병 더 있는데.”라고 대꾸했다.
바울이는 급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민트를 빼먹었다고 했다. 그애가 가져온 통은 너무 커서 둘이 마시기에는 양이 많았다. 그걸 마실 때 모히또의 고향인 아바나에 있던 것도 아니다. 또 이가 다 시릴 정도로 차가운 칵테일을 마시기엔 너무 추운 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모히또를 생전 처음 마셔보는 사람처럼 거듭 잔을 비웠다. 민트가 없어도 한가득 들어간 라임의 상큼한 풍미가 맛을 살렸다. 설탕을 넣은 탄산수와 쌉싸름한 럼의 조화도 좋았다. 쿠바에서 마시는 모히또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애틋한 맛이 났다.
바울이와 헤어지던 날에 처음 그애의 부모님을 만났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고 들어주시는 부모님 앞에서 그만 울어버렸었다. 나의 부모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날 바울이가 맛있게 먹었던 닭갈비를 만들어와서 그애의 부모님께 드렸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와 함께 바울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인 럼을 마셨다. 언제 다시 바울이의 모히또를 맛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다시 그애를 보기 전까지 내도록 그리워하게 될 것임을 안다. 내가 바울이라 부르던 Braulio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