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에 언니 다원이 멕시코에 왔다.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자매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늘 함께였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즐겨 듣는 음악이 아주 달랐고 성격이나 가치관도 조금 달랐다. 그래도 언니와 멕시코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와 다르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느꼈다. 우리의 공통점 중 하나는 술을 사랑한다는 것인데, 덕분에 매일 반주로 맥주와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특히 언니는 아침부터 술을 찾으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랐다. 우리에게 술은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또 하나의 음식이었다.
밖에 나가 타코나 토르타스를 먹으면서도 술을 마셨지만 보통 집에서 요리하며 반주를 즐겼다. 블랙 올리브와 마늘로 만든 파스타와 아보카도, 양파, 토마토, 상추를 가득 넣은 크루와상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요리하는 동안에 1리터짜리 맥주를 나눠 마신 후 식사를 하며 새로운 맥주를 꺼내와 마셨다. 그렇게 두 달을 함께했다. 내 친구는 언니의 친구가 됐고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대화가 길어졌다.
하루는 언니에게 멕시코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특별한 멕시코 음식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메뉴는 자주 해 먹던 과카몰리와 처음 시도해보는 몰레였다. 과카몰리는 아보카도, 토마토, 양파, 라임즙, 고수만 있다면 손쉽게 만들 수 있지만 몰레를 만드는 과정은 꽤나 복잡하다. 각종 고추와 채소, 견과류, 향신료, 그리고 다크초콜렛 등을 이용해 긴 시간 동안 만들어야 한다. 이 재료들을 말리고, 갈고, 볶고, 지지면 부드럽고 맛좋은 소스가 탄생한다. 여기에 고기나 밥을 함께 먹는다. 초콜렛이 들어간 소스를 밥과 함께 먹는다는 게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달고 씁쓸한 맛과 고소하고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풍부한 맛이 난다.
이 특이하고 아름다운 음식을 단번에 만들 용기가 나지 않아 시판 소스를 사서 만들기로 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요리인 만큼 마트에서는 다양한 몰레 소스를 팔고 있었다. 그중 노란 종이 팩에 든 소스를 골랐다. 사진에는 진한 고동색 소스 위에 닭고기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소스를 냄비에 부어 끓이고 칼집을 낸 닭 다리 두 개를 팬에 올렸다.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도록 천천히 익히고 겉은 바삭하게 튀기듯 구웠다. 같이 먹을 마늘 밥도 만들었다. 마늘을 구워 으깬 후 후추와 함께 밥에 섞으면 고소하고 맛 좋은 밥이 된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소스는 아니었지만, 언니는 무척 맛있게 몰레를 먹어주었다. 물론, 역시, 술도 빠지지 않았다.
술자리보다 술을 좋아하는 까닭에 멕시코에 있는 동안 혼자 마신 술이 20리터는 훌쩍 넘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먹고 그만큼 향이 좋은 술을 마시는 시간이 낙이었다. 그게 행복이었다면 언니와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잔을 부딪치던 순간은 즐거움이었다. 언니가 멕시코를 떠나는 날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14살의 나와 17살의 언니는 10년 후 우리가 이렇게 애틋한 사이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계속 우리가 함께 술을 마셨으면 좋겠다. 술친구 이상의 좋은 자매가, 그 이상의 소중한 친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