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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형 Dec 27. 2023

[2주간이주형]관광버스 타고 우르르 오는 시대는 지났다

남양성모성지 순례기

이재진은 극동스포츠센터 쏘카존에서 빌린 올뉴아반떼를 타고 교대역으로 왔다. 교대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곳에서 모인 것은 세 명 집의 지정학적 중심지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강서, 이재진은 강남, 이승준은 강동에 살기에 그랬다. 정성적으로도 그렇고 정량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진은 최근에 위밋플레이스라는 앱을 설치했는데, 그 디스토피아적인 앱은 약속을 잡은 사람들의 집 위치를 입력하면 만나기 좋은 중간 지점을 계산해준다. 여기서 만나기 ‘좋다’라는 말은 다소 으스스하다. 내가 10분 걸리는데 상대방이 1시간 걸리는 약속 장소는 좋은 장소가 아니다. 너도 나도 1시간씩 걸리는 약속 장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아닐지라도 좋은 약속장소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교대역은 만나기 좋은 곳이었다. 생각보다 한산한 교대역 뒷골목에 정차한 이재진의 아반떼는 눈을 깜박이듯 비상등을 반짝였다.


남양성모성지의 대성당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마리오 보타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로, 한국에서는 교보타워와 리움미술관 M1관을 설계한 이력이 있다. 교보타워는 교보문고 강남점이 위치한 신논현역 사거리의 건물인데, 지상 25층 높이인데도 전체가 적벽돌로 되어있어 지어질 당시(현재도 물론이고) 아주 센세이셔널했다. 강남대로의 신축 오피스는 십중팔구 커튼월이고 그 외장재는 유리와 알루미늄 복합패널이다. 그런데 성수동도 아니고 강남대로에 벽돌이라니 이 무슨 돌발행동인가? 유리창을 하나라도 더 내지는 못할 망정? 얼마 전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예술은 시대를 타고나거나, 시대를 앞서가거나, 시대를 역행한다고. 교보타워는 셋 모두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2003년 인터뷰에서 마리오 보타는 준공을 앞둔 교보타워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회색 건물로 가득한 서울에 단단하고 힘있는 건물이 필요했다’고 역설했다. 그는 ‘서울이 교보타워를 원했다Seoul wants it’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서울은 여전히 회색 건물로 가득하며 더 많은 벽돌 건물을 원하고 있다. 보타는 한국에서 지어지는 거의 모든 건물에 스위스의 로컬리티를 연상시키는 적벽돌(벽돌처럼 보이는 테라코타일 때도 있지만 이 또한 벽돌이라고 하자)을 사용한다.


교보문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축재료는 무엇인가? 교보 계열 건물은 크게 두 파벌로 나뉜다. 하나는 타일파고 다른 하나는 벽돌파다. 타일파(물론 이런 파는 없다)는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가 시저 펠리가 관여한 광화문 교보빌딩에 그 원류가 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는 도쿄에서 펠리가 설계한 주일미국대사관 건물을 보고 매료되어 완전히 똑같은 건물을 광화문에 지어달라고 요청한다. 펠리는 광화문의 장소성을 고려해서 새로운 설계를 제안하지만 신용호 회장이 원한 것은 도쿄에서 본 것과 정확히 같은 건물이었다. 그 결과 정말로 같은 디자인이 본을 뜨듯 복제되었다. ’분출된 사대주의 욕망‘과 ’자기표절‘의 오명 아래 이 건물은 2013년 동아일보가 선정한 ’해방 이후 최악의 건축‘ 리스트에서 11위에 오른다. 이후 각종 교보 관련 건물은 펠리를 샤라웃하듯이 비슷한 재료와 구법을 활용하여 지어지는데 막상 펠리 본인은 광화문 교보빌딩을 본인의 작품 리스트에서 제외시켜버린다.


전국의 모든 교보 사옥이 타일과 유리로 뒤덮힐 무렵 벽돌파가 등장한다. 마리오 보타가 온몸을 벽돌로 뒤덮은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하면서부터다. 타일은 접착하고 붙이는 재료지만, 벽돌은 차곡차곡 쌓는 재료라 듬직한 느낌도 준다. 스위스식 적벽돌(역시나 이런 벽돌은 없다)이 강남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며 사거리의 유리 건물들 사이에서 견고한 인상을 준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철 지난 반팔을 입은 와중에 혼자 바람막이를 껴입고 팔짱을 낀 모습이다. 그 이후 전국의 각종 교보 사옥들이 전부 벽돌로 지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것은 그 중 강남 교보빌딩 단 하나다.


내가 강남 사람도 아닌데 이 사거리를 잘 아는 이유는 몇 년 전 실습하던 건축사사무소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뚝배기불고기와 제육볶음을 팔던 근처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을 무렵이었다. 당시에 나는 학부생 인턴이었기에 취업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입사할 때 실기 시험이 있다던데 어떤 문제가 나오나요? 작년에 취직하신 직원분이 알려주셨다. 주형씨. 작년에는 말이에요. 신논현역 사거리를 건축 디자인 특화 사거리로 조성하려고 한다. 마리오 보타의 교보타워, 김인철(아르키움)의 어반하이브, 유리 커튼월 무슨 건물(건물의 이름은 808타워지만 도시 어디에나 존재하는 투명한데 안 투명한 커튼월 건물에 불과하다. 1층에는 아디다스 매장이 있다)이 각각 한 귀퉁이에 있는데, 마지막 남은 한 귀퉁이에 무슨 건물을 지어야 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날 이후로 신논현역을 지나갈 때마다 비어 있는 귀퉁이를 보며 무엇이 들어가야 좋을지 고민해왔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도무지 답을 알 수가 없다. 그날 들은 모범답안은 다음과 같다. 사거리에는 벽돌, 콘크리트, 유리가 있는데 그린은 없다. 그린을 조성해야만 한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직원분이 결국 그린워싱이냐고 물었지만 사실 그린의 부재를 진단한 것은 대단히 모범적이었다. 신논현역 사거리에는 나무다운 나무가 없다. 그래서 강남에는 낭만이 부재한 것이다.)


남양성모성지까지 이재진이 차를 몰았다. 퇴사 이후 이재진의 운전 실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운전 고수가 되었냐는 질문에 이재진은 태연하게 우깜을 넣으며 차선을 바꿨다.


-운전 할 일을 자꾸 만들어야 돼!


미사는 11시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10시 40분부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부님이 미사 중에 방문객들을 환영했다.


-주일학교에서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청년회에서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여기에는 마리오 보타의 건축을 보려고 오신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이재진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환영합니다.


우리는 다행히 환영받았고 남은 미사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참관하였다. 신부님은 새로 지어진 대성당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다. 느낌이라는 것은 고유한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느낌이 있다. 이 공간의 느낌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리오 보타에 의해서 ‘디자인’된 것이다.


-보타는 말이죠. 여러분.


잠시 시간이 흘렀다. 오 초 가량의 강력한 침묵이 지나가고!


-이 시대의 거장입니다.


사실이었다. 더 긴 정적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그의 재능을 기부 받아서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느낌이 중요합니다.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가셔야 합니다! 이런 공간은 내가 느끼고 체험하려고 찾아오는 공간입니다. 이제 말입니다. 관광버스 타고 우르르 오는 시대는 갔다! 우르르 와서 대충 보고 사진 찍고 가는 그런 때는 지났다 이런 말씀입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에는 향후 비전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건축 이야기는 점입가경이었다. 대-건축가 승효상의 재능을 기부 받은 건물이 지금 지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스위스의 피터 줌터를 아십니까? 그 또한 거장입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줌터의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더 큰 대성당을 지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성지 앞에는 여러 공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 또 공사야?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경의 권위자 이화여대 정영선 선생님이 설계한 조경이 지금 지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 모든 것들이!


이승준이 검색해서 찾은 뜰안에라는 쌈밥집에 갔다. 카카오맵 리뷰에 한사랑산악회에나 나올 만한 식당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 이런 이름과 분위기를 갖춘 곳이라면 맛이 없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뜰안에는 예상대로 근사했고 가족 단위로 찾는 교외 식당의 모든 전형을 갖춘 표준적인 쌈밥집이었다. 자동문(스테인레스)을 열고 들어가니 근사한 오토바이가 전시되어 있었고 창가를 면하고는 4인석 테이블이 큼직큼직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4인 표준 가족의 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세 명이었기에 3개의 똑같은 메뉴, 그것도 메뉴판의 가운데 정도에 적힌 제육 정식을 주문했고,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물은 셀프. 정식은 2인 이상부터 주문 가능. 반찬이 정말 많이 나왔다. 한정식집에서 아무리 팔을 뻗어도(사회적 예절과 품위를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닿지 않는 반찬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반찬이 많다고 느낀다. 이재진은 팔이 닿지 않는 나와 이승준을 위해 본인 쪽에만 있는 반찬을 덜어주었다. 식당에는 실제로 뜰이 없었지만 그것이 문제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맛있네. 좋네. 그러니까. 경험은 완벽했다. 아반떼를 탄 세 명의 이십대 남자가 제육정식 세 개를 먹고 한 시간도 안 되어 나갔다. 식당이 표준적인 만큼 우리 또한 표준적인 손님이었다.


제부도로 갔다. 제부도는 육지와 적당히 연결되어 있는 섬이다. 하루 두 번 간조 때 열리는 바닷길로만 차가 다닌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바닷길은 만조 때는 수면 아래로 잠긴다. 우리는 제부도에 도착해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지도를 보면서 섬의 크기에 비해 펜션의 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섬 초입의 전광판에는 ‘제부도 물때 시간표’가 아주 크게 써 붙여져 있다. 3시 30분부터 통행 제한이라고 했다. 그 때가 3시였다. 다음 물때 열리는 시각이 7시 30분부터였기에 결단이 필요했다. 30분을 머무르거나, 4시간 30분을 머물러야만 했다. 너무 짧게 있을지? 너무 오래 있을지?


섬에 4시간 동안 갇힌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막상 섬을 둘러보니 그럴 걱정은 불필요했다. 섬 전체가 즐거운 고립을 위해 상정된 자발적 감옥과도 같았다. 작은 섬에는 낭만적 고립, 물질적 안정,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한 모든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바이킹, 공기총 사격장, 전망대, 케이블카. 너는 섬에 고립된 것이 아니야. 네가 세상을 잠시 고립시킨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은 고립의 바이블같은 책이다. 소로는 어느 날 도끼 하나를 빌려 들고 매사추세츠 월든 호수로 가서 오두막 하나를 짓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2년간 자급자족하는 삶 끝에 탄생한 책이 <월든>이다. 그는 채프먼의 구절을 인용하며 문명 세계가 물질만능주의에 잠식되었음에 한탄한다.


-허위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인 명성을 찾기에 바빠 천상의 뭇 즐거움은 공중에 흩어지는구나.


서해바다 앞에는 근사하게 디자인된 스트릿퍼니처가 섬 둘레를 따라 놓였다. 제작년에 하던 프로젝트에서 발주처 담당자는 건물 앞에 좋은 스트릿퍼니처를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제부도에 가보셨나요? 아뇨 안 가봤어요. 제부도처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불의의 사고로 프로젝트는 날라갔지만 제부도에는 결국 왔다. 정말이지 바닷가 앞에 있는 벤치와 스툴과 데크와 의자들. 나도 나중에 써먹을 것이다. 제부도처럼 해주세요.


즐거움으로 가득한 이 놀라운 섬에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극동스포츠센터로부터 멀리 서쪽으로 왔기에 해가 지는데 갈 길이 멀었다. 탈출시각이 임박했기에 이재진은 운전을 서둘렀다. 쏘카는 연장을 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불어난다. 처음부터 오래 빌리던지 아니면 금방 반납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이 차오를 바닷길을 빠져나가는 궤적이 매끄러웠다. 블루투스 라디오에서는 여행스케치의 운명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과할 정도로 이 섬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누가 이런 노래를 선곡했나? 바로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이다. 낭만을 아는 똑똑한 젊은 친구다.


-힘겨웠던 지난날을 견딜 수 없어.


웅장한 금관악기 소리가 뒤를 가득 채운다.


-어딘가에 한 줌의 흙으로 묻혀 있었겠지.


뒤에서는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 제부도 바닷길이 잠긴다. 극동스포츠센터로 돌아가는 길에 정말로 어떤 시대가 영영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뒤 이집트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 물어봤다. 한국 여행가면 어디가 좋은지? 서울은 이미 가봤다. 듣자마자 바로 대답을 떠렸다. 겨우 30분 머물렀지만 아주 자신있 대답했다. 공중에 흩어지는 천상의 뭇 즐거움으로 가득한 서해안의 제부도에 꼭 가봐라. jebu island you must go.


마리오 보타,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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