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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형 Feb 05. 2024

[2주간이주형]그레이스 팜 따라잡기

뉴욕출장 7일차,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물에 가다

그레이스 팜Grace Farms은 엄청난 샤라웃을 받고 있는 건축 씬의 신전과도 같은 건물이다. 무릇 건축인이라면 다 그레이스 팜 가보고 싶어한다. 출장 마지막 날 피날레 일정으로 그레이스 팜이 정해진 것은 그래서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학교에서 몇 년 전에 간 뉴욕 답사 때 처음 들렀는데 그 때는 그레이스 팜 귀한 줄을 몰랐다. 전날 과음으로 숙취가 절반만 깬 상태로 둘러보았기에 기억이 다소 흐릿했다. 이번에는 (회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명하고 맑은 정신과 함께 그레이스 팜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뉴욕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근교에 있기에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행정 구역상 뉴욕 주도 아니고 코네티컷의 뉴캐넌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다. 뉴욕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순식간에 차창 밖 풍경이 정신착란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시골 들판의 평화로운 정경으로 바뀌는데, 그 가운데 숲과 들판 사이를 유려하게 가로지르는 건물이 있다. 그 하얗고 투명한 건물이 바로 그레이스 팜이다.

평면 출처: (https://www.archdaily.com/775319/grace-farms-sanaa?ad_medium=gallery)

야트막한 언덕 위의 단층 건물이다. 체육관, 식당, 도서관, 갤러리 등이 언덕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 위로 지형을 따라 구불거리는 얇은 지붕이 살포시 덮이면서 모든 공간이 한 지붕 아래에 있게 된다. 투명함과 가벼움, 자연스러움이 여기저기서 묻어나는 건물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포개지듯 위치하면서 경관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처음에 도착하면 헛간에서 표를 사서 입장한다. 원래 농장이었던 곳이라 입구에 헛간 두 채가 있다. 

분명 이름은 헛간인데 기둥이 하늘에 떠 있거나

비범한 의자가 여기저기서 보이는 등 분위기가 다소 심상치 않다.

입장하기 전 이곳에서의 마음가짐을 바로 하게 되는 표지석을 보게 된다. grace and peace.

입구의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River Building

이렇게 회랑 밑으로 처음 진입하게 된다. 

Pavilion

겉보기에 참 단순해 보이는 건물이다. 흰색 원형 기둥과 얇은 지붕 판, 그리고 유리로 된 실내 공간이 사실상 전부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체육관도 나오고, 도서관이나 식당도 나온다. 외벽은 전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각진 모서리가 없고 모든 면이 둥글둥글하다. 

모든 공간이 한 지붕 아래에 있지만 그렇다고 층고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큰 공간은 지하에 숨어 있다. 체육관은 땅 속에 절반 가량 묻혀 있어서 입구도 지하에 있다. 사방을 둘러싼 곡면유리를 통해 햇빛이 코트 안으로 쏟아지는 모습이 멋지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배드민턴 경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이번에는 농구 시합 중이었다. 다음에 오면 여기서 꼭 탁구를 칠 것이다.

Commons

식당commons 동에서 점심 식사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큰 공간도 중간에 기둥이 하나도 없고 천장이 깨끗하다. 이 건물은 모든 천장이 다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Library

회랑을 따라 위로 더 올라가면 도서관이 나온다.

여기서 산 10달러짜리 머그잔을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굿즈가 정말 좋았다....

회랑의 끝에는 성소sanctuary라고 불리는 수백 석 규모의 강당이 있다.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그런데 계단 옆에 숨겨진 경사로가 보인다. 지하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장애인 통행이 가능한 경사로 겸 출입구다.

그리고 건물 사방이 유리면 화장실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화장실도 전부 지하에 묻혀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지상에서 보이는 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강당에서는 바닥이 가장 놀랍다. 두 번째 보는 것인데도 너무 신기해서 또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바닥에 단이 하나도 없고 전체가 그냥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일반적인 공연장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떠올리면 이 경사가 정말 기이하게 느껴진다. 경사를 고려해서 제작했기에 의자들은 모두 앞쪽 다리가 더 길다. 평지에서는 쓸 수 없고 오직 이 강당의 특정한 기울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특수 제작 가구다.

좌석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냉난방은 바닥의 디퓨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좌석끼리도 서로 고정되어 있어서 경사를 타고 의자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이리저리 이동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자리들이 실은 전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다.

실외의 목재 천장이 실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와중에,

실내 천장에만 아주 작게 흡음 타공이 되어있다.

이렇게 주변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강당이다.

처음으로 건물 지붕을 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첫인상은 성격이 모난 데 없이 착해 보이지만, 가까이 할수록 이렇게 엄정하고 집요한 내면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 속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회랑 천장에서 나무결 방향을 곡선을 따라 연속시켜 놓고, 꺾이는 점에 기둥을 배치한 것은 섬뜩하다. 평평해 보이는 유리에도 미세한 곡률이 있다. 유약한 느낌의 기둥은 철골콘크리트 부재로 안에 콘크리트가 가득 차 있어서 굵기가 얇은데도 강하다. 대부분의 에너지는 깊은 땅 속의 지열열교환기에서 생산된다. 냉난방과 배관배선이 전부 바닥에 있기에 천장이 맑은 하늘처럼 깨끗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언뜻 보기에 자연스럽지만 사실 세밀하게 의도된 무대 장치다.

SANAA(2005), Drop Chair

너무 완벽한 사람을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건물 아래를 거닐 때 그런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극도로 정돈되고 깨끗해서 영험한 기분마저 드는 기묘한 장소다.

가평양떼목장 클라우드힐

번외로 한국에서도 그레이스 팜을 체험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건물이다 보니, 한국에도 샤라웃하는 건물이 많다. 그 중 가장 선두주자는 가평에 위치한 양떼목장이다.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정말 좋다. 그레이스 팜보다는 약간 더 시끌벅적하고 영험한 기운이 덜하지만, 귀여운 양과 알파카들이 건물에서 내려다보인다. 한 하늘 아래 같은 건물은 없더라도, 자연을 끌어안겠다는 디자인 정신은 분명 미약하게나마 공명하고 있을 것이다. 

가평양떼목장 클라우드힐
그레이스 팜

그레이스 팜은 201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SANAA가 디자인했다. 오전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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