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이주형]그레이스 팜 따라잡기

뉴욕출장 7일차,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물에 가다

by 이주형

그레이스 팜Grace Farms은 엄청난 샤라웃을 받고 있는 건축 씬의 신전과도 같은 건물이다. 무릇 건축인이라면 다 그레이스 팜 가보고 싶어한다. 출장 마지막 날 피날레 일정으로 그레이스 팜이 정해진 것은 그래서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학교에서 몇 년 전에 간 뉴욕 답사 때 처음 들렀는데 그 때는 그레이스 팜 귀한 줄을 몰랐다. 전날 과음으로 숙취가 절반만 깬 상태로 둘러보았기에 기억이 다소 흐릿했다. 이번에는 (회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명하고 맑은 정신과 함께 그레이스 팜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뉴욕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근교에 있기에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행정 구역상 뉴욕 주도 아니고 코네티컷의 뉴캐넌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다. 뉴욕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순식간에 차창 밖 풍경이 정신착란의 메트로폴리스에서 시골 들판의 평화로운 정경으로 바뀌는데, 그 가운데 숲과 들판 사이를 유려하게 가로지르는 건물이 있다. 그 하얗고 투명한 건물이 바로 그레이스 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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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F_building_plan_151010.jpg 평면 출처: (https://www.archdaily.com/775319/grace-farms-sanaa?ad_medium=gallery)

야트막한 언덕 위의 단층 건물이다. 체육관, 식당, 도서관, 갤러리 등이 언덕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 위로 지형을 따라 구불거리는 얇은 지붕이 살포시 덮이면서 모든 공간이 한 지붕 아래에 있게 된다. 투명함과 가벼움, 자연스러움이 여기저기서 묻어나는 건물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포개지듯 위치하면서 경관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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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도착하면 헛간에서 표를 사서 입장한다. 원래 농장이었던 곳이라 입구에 헛간 두 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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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름은 헛간인데 기둥이 하늘에 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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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의자가 여기저기서 보이는 등 분위기가 다소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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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기 전 이곳에서의 마음가짐을 바로 하게 되는 표지석을 보게 된다. grace and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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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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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회랑 밑으로 처음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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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936.jpg Pavilion

겉보기에 참 단순해 보이는 건물이다. 흰색 원형 기둥과 얇은 지붕 판, 그리고 유리로 된 실내 공간이 사실상 전부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체육관도 나오고, 도서관이나 식당도 나온다. 외벽은 전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각진 모서리가 없고 모든 면이 둥글둥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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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간이 한 지붕 아래에 있지만 그렇다고 층고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큰 공간은 지하에 숨어 있다. 체육관은 땅 속에 절반 가량 묻혀 있어서 입구도 지하에 있다. 사방을 둘러싼 곡면유리를 통해 햇빛이 코트 안으로 쏟아지는 모습이 멋지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배드민턴 경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이번에는 농구 시합 중이었다. 다음에 오면 여기서 꼭 탁구를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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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966.jpg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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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commons 동에서 점심 식사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큰 공간도 중간에 기둥이 하나도 없고 천장이 깨끗하다. 이 건물은 모든 천장이 다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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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003.jpg Library

회랑을 따라 위로 더 올라가면 도서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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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산 10달러짜리 머그잔을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굿즈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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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의 끝에는 성소sanctuary라고 불리는 수백 석 규모의 강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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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그런데 계단 옆에 숨겨진 경사로가 보인다. 지하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장애인 통행이 가능한 경사로 겸 출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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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물 사방이 유리면 화장실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화장실도 전부 지하에 묻혀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지상에서 보이는 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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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서는 바닥이 가장 놀랍다. 두 번째 보는 것인데도 너무 신기해서 또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바닥에 단이 하나도 없고 전체가 그냥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일반적인 공연장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떠올리면 이 경사가 정말 기이하게 느껴진다. 경사를 고려해서 제작했기에 의자들은 모두 앞쪽 다리가 더 길다. 평지에서는 쓸 수 없고 오직 이 강당의 특정한 기울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특수 제작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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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냉난방은 바닥의 디퓨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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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끼리도 서로 고정되어 있어서 경사를 타고 의자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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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이동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자리들이 실은 전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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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외의 목재 천장이 실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와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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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천장에만 아주 작게 흡음 타공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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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변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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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건물 지붕을 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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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성격이 모난 데 없이 착해 보이지만, 가까이 할수록 이렇게 엄정하고 집요한 내면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 속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회랑 천장에서 나무결 방향을 곡선을 따라 연속시켜 놓고, 꺾이는 점에 기둥을 배치한 것은 섬뜩하다. 평평해 보이는 유리에도 미세한 곡률이 있다. 유약한 느낌의 기둥은 철골콘크리트 부재로 안에 콘크리트가 가득 차 있어서 굵기가 얇은데도 강하다. 대부분의 에너지는 깊은 땅 속의 지열열교환기에서 생산된다. 냉난방과 배관배선이 전부 바닥에 있기에 천장이 맑은 하늘처럼 깨끗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언뜻 보기에 자연스럽지만 사실 세밀하게 의도된 무대 장치다.

IMG_7910.jpg SANAA(2005), Drop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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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완벽한 사람을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건물 아래를 거닐 때 그런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극도로 정돈되고 깨끗해서 영험한 기분마저 드는 기묘한 장소다.

1677382762505.jpg 가평양떼목장 클라우드힐

번외로 한국에서도 그레이스 팜을 체험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건물이다 보니, 한국에도 샤라웃하는 건물이 많다. 그 중 가장 선두주자는 가평에 위치한 양떼목장이다.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정말 좋다. 그레이스 팜보다는 약간 더 시끌벅적하고 영험한 기운이 덜하지만, 귀여운 양과 알파카들이 건물에서 내려다보인다. 한 하늘 아래 같은 건물은 없더라도, 자연을 끌어안겠다는 디자인 정신은 분명 미약하게나마 공명하고 있을 것이다.

VideoCapture_20230820-225123.jpg 가평양떼목장 클라우드힐
IMG_8087.jpg 그레이스 팜

그레이스 팜은 201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SANAA가 디자인했다. 오전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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