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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형 Mar 23. 2024

피자의 전당: 피자힐(김수근, 1962)

60년 역사의 피자의 전당 건축답사기

김수근이 설계한 60년 된 피자집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지난 주말에는 워커힐에 다녀왔다. 정확히는 김수근이 귀국 직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은 피자힐이라는 건물이 워커힐에 있는데, 건물이 남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인기가 너무 많아서 예약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했다. 과연 일 주일 전에 전화를 거니 주말의 모든 시간대가 예약 마감이었다. 심지어 아무도 피자를 먹지 않을 법한 오후 3시 같은 시간대에도 여석이 없었다. 다만 모든 자리가 예약석은 아니라 현장 대기도 가능하다고 했다. 역시 유서 깊은 역사적인 건물이다 보니 인기가 많군!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건물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피자가 유명한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언덕 위를 올려다보니 왜 이름이 피자힐인지 금방 납득이 갔다. 워커힐 경내를 굽어보는 언덕 꼭대기에 피자집이 망루처럼 솟은 것이었다. 정자나 천문대가 있을 법한 자리에 콘크리트로 지은 피자집이 위엄 있게 들어선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피자는 어디서든 항상 맛있는 음식이지만 전당처럼 솟은 건물 꼭대기에서 고고하게 먹어본 적은 지금껏 없었다. 건물은 심지어 피자 모양이었다. 역피라미드 모양인데다, 비스듬하게 뻗어나오는 경사기둥이 서로 교차하며 피자 모양 패턴을 만들어냈다. 구조미학을 충실히 드러내면서 피자의 정신을 표현하는 거장의 설계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머릿속에 온통 피자 생각뿐이었기에, 조금이라도 피자 같은 모양만 봐도 전부 피자라 인식해버린 것이었다. 원래 이름은 ’힐탑바‘였고 80년대에 이름이 피자힐로 바뀌면서 그 때 처음 피자를 팔기 시작했기에, 건물의 설계는 피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피자에 대한 모든 선입견이 건물 해석을 완전히 왜곡시켜 버린 것이었다.   

  

전말을 알고 나니 피자답다고 생각했던 모든 건축적인 장치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물의 동선도 피자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터무니없는 억측이었다. 처음 언덕을 올라가서는 반 바퀴를 돌아 반대쪽의 입구로 들어갔고, 돌음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은 코어를 따라 빙글빙글 도는 동선이었기에 회전하는 피자를 떠올린 것이었다.       

피자힐에서는 그 누구도 건물에 관심이 없었다. 2층에 들어섰을 때 360도로 펼쳐진 한강뷰는 압도적인 힘처럼 다가왔다. 게다가 한 판 가격이 11만원에 육박했기에 피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문한 피자가 테이블에 오르자 건축 답사는 그 즉시 종료되었다. 태어나서 먹어본 가장 고가의 피자였다. 건물을 보러 와서는 그 누구도 건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소중한 음식을 함께 즐기기만 했다. 세이스피자는 한 판에 24조각이었다. 4명이서 24조각을 먹는 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여섯 가지 맛의 피자가 네 조각씩 나왔기에, 내가 무슨 맛까지 먹었고 뭘 더 먹어야 하는지 기억하기에 바빴다. “너 이거 먹었어?” “내가 이걸 먹었나?”  

   

워커힐의 주요 설계 개념 중 하나는 건물 어디서나 한강이 조망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창밖의 압도적인 한강뷰를 바라보니 이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설계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아차산 일대를 위락단지로 개발하면서 나상진이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여러 건축가가 나눠서 개별 건축물을 설계하였다. 이 때 일본에서 막 귀국한 김수근은 더글라스 하우스와 힐탑바를 맡아서 설계했는데, 입면의 피자 모양은 사실 워커힐의 W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제서야 이야기했다. 아 맞아 우리 건물 보러 왔지? 피자의 전당에서는 정말 피자만 즐기고 왔다. 주변을 삼키는 한강뷰 앞에서는 홀린 듯이 피자를 먹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 건물은 피자가 맛있어서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건물 이야기를 안 하면서 잘 쓰고 있는 장소가, 궁극적으로 좋은 건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건축 이야기만 하는 장소에서는 약간 공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전시는 빈약한데 건축은 휘황찬란한 신축 미술관에서 이런 마음이 종종 들고는 했다. 벚꽃이 필 때 피자힐에서 보는 한강 뷰가 그렇게나 좋다고 들었다. 건축 답사를 다녀와서는 또 갈 수 있게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피자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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