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아부 심벨 여행기
아부 심벨 함께 가실 분을 구합니다. <람세스>를 읽은 분이라면 더욱 환영합니다. 아부심벨에 함께 갈 동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여행 카페에 글을 올렸다.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를 줄인 지바고라는 이름의 네이버 카페다. 한국어로 된 거의 모든 이집트 여행 정보는 이 카페에 모여 있다. 글에는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애인은 람세스 이야기만 안 했더라도 이미 동행을 구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댓글은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달렸다. ‘잘 다녀오셨는가요?’라는 상냥한 인사 뒤에는 눈웃음표와 물결표가 붙었다. ‘어느 투어 이용하셨는지 혹시 알 수 있을지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혼자 다녀왔지만 아주 당당하게 다녀온 투어 업체를 추천했다. 람세스를 읽으셨다면 반드시 추천드립니다. 그만 또 책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동행을 구하기 힘든 이유는 아스완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아스완에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났다. 3시 45분에 픽업 기사가 호텔 로비로 오기로 했다. 아부 심벨로 가는 차량 행렬이 꼭두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인데다 다들 갈 때 함께 가는 것이 안전하기에 조기 기상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늦게 출발하는 투어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점에서는 골프장과 비슷했다. 3시 10분이 되자 전날 프런트에서 예약한 기상 알람이 울렸다. 지축을 울리는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였다. 나는 분명 쉬러 왔는데 왜 이 시각에 일어나야 하지? 창밖을 내다보니 칠흑처럼 어두운 물이 일렁였다. 숙소가 나일강뷰라는 것은 좋았지만 나일강이 보일 시각에 내가 방에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투어를 예약하면서 들은 안내사항은 다소 섬뜩했다. 새벽 3시 45분에 기사가 오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계속 기다리세요. 약속한 시각이 되고 정말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모든 것이 괴담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로비 1층의 괘종시계는 공포영화의 클리셰처럼 매초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프런트 직원은 잘 다녀오라며 새벽에 만들었을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셔츠를 입은 어떤 중년 남성이 나타나더니 내 신원을 확인했다. 네가 주형리냐? 호텔 밖으로 그를 따라 나갔다. 밤의 나일강변에 주차된 토요타 하이에이스에 타니 9인승 승합차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나일 강의 죽음>이 생각났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아스완의 올드 캐터랙트 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면서 이 책을 써냈다. 책에 나오는 아스완은 매력적이지만 우울한 도시이며 밤의 나일강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죽어나가는 흑막의 공간이다. 왜 차에 아무도 없지? 알고 보니 나를 가장 먼저 픽업했기에 차가 비어 있던 것이었다. 승합차에 타서 첫 한 시간 동안은 아스완 시내 각지 호텔을 돌며 다른 사람들을 줄곧 픽업했다.
사람들을 전부 태우고는 검문소에서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모든 관광 차량이 검문소에 멈춰 있다가 일제히 출발한다고 들었다. 한참 뒤에야 해가 떠오를 누비아의 사막을 눈앞에 두고 수십 대의 승합차가 줄을 지어 모였다. 하이에이스에는 나를 포함해 총 9명이 탔다. 스페인 사람 세 명, 미국인 노부부와 신혼처럼 보이는 젊은 커플, 중국인 여자가 한 명이었다. 과하게 이른 시각이었고 모두들 똑같이 피곤했기에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앞으로 4시간을 가야 했기에 갈 길이 멀었다. 행렬은 다섯 시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가는 길은 전부 사막이었다. 하이에이스는 시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사막을 시속 120km로 달렸다. 속도제한이 있는 길은 아니었으나 우리보다 빨리 가는 다른 차가 없었기에 기사가 과속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 명이 교대로 운전했다. 한 명은 과속주행을 일삼았고, 다른 사람은 정속주행을 했으나 초보 운전자인지 운전대를 꼭 잡은 두 손을 파르르 떨었다. 정속주행 운전자가 너무 긴장한 것이 눈에 보여서 오히려 과속운전자가 중앙선을 침범해 앞차를 전부 앞지를 때 더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람세스 2세는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을 누비아의 사막에 세웠다. 이집트 전역에 람세스 2세가 세운 수많은 건축물이 흩어져 있지만, 그 중 압권은 단연 아부 심벨이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신전이기 때문이다. 이 신전은 고등학교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신목고등학교 별관 1층의 도서실 구석에는 <람세스> 전권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의 사막을 거닐었다. 크리스티앙 자크는 책을 구상하고 25년 뒤에야 이를 비로소 완결했다. 제 4권의 제목이 <아부 심벨의 여인>이다. 그는 아부 심벨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누비아 한복판에 있는 아부 심벨이라는 곳에 하토르 여신께서 당신 존재의 흔적을 뚜렷이 남겨놓으셨습니다. 별들의 여신께서는 바위 속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당신 사랑의 비밀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나는 그곳을 네페르타리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네페르타리가 영원히 아부 심벨의 여인이 될수 있도록 말입니다.”
도착해서는 100분이 주어졌다.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서 기뻤다. 고작 100분을 구경하기 위해 왕복 8시간을 이동한다는 것이 굉장한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아부 심벨에 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관광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룩소르에서 만난 어떤 변호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글 검색하면 다 나오는 시대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경험의 어떤 가치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 비효율을 몸소 증명하듯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귀중한 첫 10분을 그만 화장실에 할애해 버렸다. 전날 새로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었다. 내가 화장실을 찾으니 어떤 남자가 본인이 관리하는 화장실이 신식이라며 따라오라고 했다. 화장실도 돈을 내고 사용하기에 충분히 일리 있는 호객행위였다. 믿고 따라가 보니 그가 관리하는 화장실은 파티션이 메탈로 되어있고 세면대 물이 세차게 나오는 진정한 특급 화장실이었다. 여기서는 10파운드(*약 500원)를 냈다.
광활한 호수 앞에 야트막한 언덕이 보였다. 언덕을 따라 반 바퀴를 도니 호숫가에서 람세스 2세의 좌상 4개가 불현듯 등장했다. 신전은 언덕 안에 있었다. 그 무렵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기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침에 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침에만 햇빛이 신전 안까지 들어왔다. 신전의 제일 깊숙한 공간인 지성소에서는 석상 네 개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 년에 단 두 번, 춘추분 무렵의 짧은 시간에만 햇빛이 지성소 끝까지 들어와서 현현한 태양신인 라-호라크티의 상을 밝게 비춘다. 이를 아부 심벨 태양 정렬Abu Simbel Solar Alignment이라고 부른다. 정렬일을 몇 주 앞두고 있었지만 전율을 느낄 만큼 충분한 햇빛이 바위산 안쪽까지 들이쳤다. 일직선으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평범한 햇빛이 아니라 어둠을 몰아내는 어떤 숭고한 힘처럼 보였다.
“네페르타리와 함께, 그리고 네페르타리를 위하여, 나는 빛의 힘을 생산해낼 건물을 하나 지으려고 합니다. 우리에겐 지금 그 힘이 너무 필요합니다. 그 힘이 이집트와 누비아를 불행으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이 신전은 근래에 이전복원된 문화재다. 1960년대에 아스완 댐을 건설하면서 누비아의 유적들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이들을 통째로 해체하여 각기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아부 심벨은 바위산 속에 위치했기에 옮기는 것이 더욱 까다로웠다. 신전과 석상을 여러 조각으로 절단 후 분해하여 지대가 높은 곳에 그대로 이식하였다. 바위산을 굴착하고 콘크리트로 돔을 세운 뒤 신전 조각을 끼워넣었다. 그래서 모든 석상마다 절단면의 이음매가 미세하게 보였다. 이집트 정부는 아부 심벨을 옮기는 데 도움을 준 주요 참여국들에게 작은 신전을 하나씩 선물하였다. 오늘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마드리드 몽클로아에 이집트 신전이 위치하게 된 것도 이 까닭이다. 예전에 마드리드에 갔을 때 공원 한복판에 있는 이집트 신전을 보고 정말로 기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아부 심벨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공원에서는 새똥 물총을 활용한 악질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기에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다. 새똥을 맞았다고 생각하는 관광객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물건을 가로채는 극악무도한 수법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수평으로 날아오는 새똥은 애초에 성립할 수가 없었다.
신전 안쪽 전실에는 람세스 2세의 행적에 관한 벽화들이 가득했다. 저승의 왕 오시리스 모습의 벽기둥이 도열한 가운데, 우측 벽면에서는 카데슈 전투를 묘사한 벽화가 보였다. 기원전 중동의 패권을 두고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격돌한 전투로, 인류 최초의 평화 조약이 이 전투 이후에 체결되었다. 카데슈 성을 포위한 이집트군과 용맹하게 적들을 격파하는 람세스 2세의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이집트 벽화에서는 중요도가 높은 것을 크게 그리기에, 전차를 타고 군대를 지휘하는 거인이 람세스 2세임은 분명했다. 다만 신전 내부로 들이치는 햇빛의 존재가 너무 강렬했기에 벽화는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가 서서히 이동하면서 빛을 받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틈새와 같은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마법같은 빛은 짜릿할 정도로 신기했다.
새로 건물을 지을 때는 꼭 일조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다. 황도를 따라 가상의 태양을 이동해 보며 일사 유입을 시험해보는 절차다. 하지 기준 하루에 3~4시간은 빛이 들어야 ‘햇빛이 든다’고 표현하는데, 이 신전은 일 년에 3~4시간 채광이 드는 신화적인 설정 속에 위치한다. 그 어떤 건축도 이렇게 극적으로 빛을 들일 수는 없다. 고대성은 오래된 물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설정과 기획에서도 경험된다.
빛이 드는 아부 심벨 대신전 옆에는 네페르타리 소신전이 위치했다. 마찬가지의 구성이 조금 작은 스케일로 펼쳐지는데 이곳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정문에서는 여섯 개의 입상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 중 두 개만 네페르타리의 모습이고, 나머지 네 개는 람세스 본인이다.
“신전은 바위 한가운데를 파내어 만들어졌는데, 앞쪽에 있는 정문이 그곳이 신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정문이 너무나 힘차고 아름다워서 왕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쪽에 있는 성소 앞에는 높이가 20미터에 달하는 네 개의 거대한 람세스 좌상이 버티고 서있고, 북쪽 성소 앞에는 서서 걷고 있는 모양의 거대한 람세스 좌상들이 10미터 높이의 네페르타리 입상을 에워싸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말도 안 되는 위치와 설정, 10월에도 40도를 웃도는 기이한 날씨, 산을 통째로 잘라서 옮겨온 문화재, 동굴 신전 속을 파고드는 아침 햇빛. 1분 1초가 소중한 곳이다 보니 그 누구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휴대폰을 만지면서 따분해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산 정상에서와 같은 통쾌함을 느꼈다. 해가 높은 하늘로 떠오르면서 더 이상 신전 내부에는 빛이 들지 않았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일 강의 죽음>에도 아부 심벨 신전이 등장한다. 아스완에서 출발한 S.S.카르나크 호는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아부 심벨에 기착한다. 이집트 문화에 따분해하던 사람들조차 이 신전에는 관심을 보인다. 눈길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광경이기에 시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신전의 모습에 매혹되었다.
“오, 무슈 푸아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제 말은, 저게 너무나도 크고 평화롭다고요.”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서 물길이 막혀 아스완에서 아부 심벨까지 더 이상 배로 이동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가 책을 쓰며 아스완에서 머문 올드 캐터랙트 호텔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소피텔에서 운영하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1박 숙박비가 100만원에 육박했기에 머물 수는 없었지만,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기는 데는 3만원이면 충분했다. 호텔까지 가기 위해 인드라이브라는 이집트 택시 어플을 깔았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주변 택시들이 희망 금액을 입찰하고, 그 중 내가 타고 싶은 택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일단 낙찰을 받은 다음 전화로 흥정을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로밍 요금이 너무 비쌌기에 택시기사와 1분만 통화해도 택시비보다 더 많은 통화요금이 나왔다. 그래서 흥정을 잘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드랍오프에 내려서 호텔 안쪽으로 들어가면 기다란 정원이 펼쳐지는데, 정원에서는 수십 개의 분수가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냈다. 호텔 내부에서 도시의 모든 혼란한 소음은 분수에 가로막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분수로 둘러싸인 진입로를 걸어가면서, 노이즈 캔슬링이란 비단 현대의 전유물이 아님을 체감하였다.
중정을 조망하는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검정 철제 의자에 라탄으로 된 푹신한 방석이 놓였다. 중정 너머에는 밤의 나일강이 밝게 일렁였다. <나일 강의 죽음> 2부는 이 테라스에서의 대화로 처음 시작한다. 에르퀼 푸아로는 중정의 오솔길을 거닐면서 복선이 될 중요한 대화를 엿듣는다. 식사 후에 오솔길을 마음껏 걸어 보았지만 엿들을 만한 말은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빈 영화 세트장을 방문하는 듯한 기분이었기에 소설의 배경을 실제로 거니는 감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 소설이 <나일 강의 죽음>인지 <람세스>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을 체험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데에 있었다. 이 글은 아스완 시티맥스 호텔의 낡은 소파 위에서 처음 작성되었다. 다음 날 아침 룩소르로 떠나려면 늦지 않게 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