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린
우연히, 정말 우연히 혼자서 길을 걷다가 문득 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삶에서 받고 싶은 질문이 있을까?’
위 질문을 떠올린 이유를 따라가 본다면, 한동안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질 기회가 적었다. 하나의 목적지로 도달하기 위한 변화를 추구하는 질문이 비교적 다수였고 그것들 나름의 고통이 있었다. 그것에서 벗어나면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 빠져들고 싶었다. 나와 그들의 삶, 우리의 삶. 빠져들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고, 인터뷰를 준비하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서 받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은, 인터뷰에서 가지는 매력이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인터뷰를 목적으로 타인을 만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상대에게 이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진행함으로써, 내가 여러 타인에게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던지지 않으면 생각해보지 않을 만한 것들에 대한 순간도 함께하게 되었다.
‘삶’에 대해서 빠져보았던,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겠다!
총 2번의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인터뷰이는 모두 자신이 정한 이름으로 게시된다.
9월 말에 진행되었던 첫 번째 인터뷰였다. 자신이 게시되기를 원한 이름은 수학 기호인 '√' 루트이다.
딱히 사람들이 안 물어보잖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지, 근데 나는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거든. 아침을 뭘 먹었는지만 아니라, 어젯밤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최근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질문들을 ‘안부’라고 하잖아. 나는 안부 인사가 받고 싶은 질문이면서도 던져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어.
안부의 한자가 ‘安’ 편안 안, ‘否’ 아닐 부야. 안녕~ 하면서 안녕한지, 안녕 안 한지—편안한지 아닌지를 묻는 거지.
편안한 상태의 사람에게도 안부는 중요하겠지만, 안부의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편안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진짜 안부가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하고…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밥도 잘 안 넘어갔을 수도 있고, 잘 지내– 했을 때에 잘 못 지낼 수도 있고. 그런 안부 인사와 안녕들은, 안녕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따뜻함이나 걱정,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안녕하더라도, 내가 안녕한지 물어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살아갈 힘이 되잖아. ‘내가 너를 걱정하고 있다, 혹시나 안녕 못한 일이 생겼을까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알면 조금 더 살아갈 힘이 되잖아. 그래서 안부란 게 좋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안부 인사의 핵심은 일상적이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 질문한다는 것은 기억해 준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매일이니까. 좋아하는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평범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런 일들이고, 안부 인사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야.
“좋은 아침이지.” 이렇게 물어본다고 하자. 지극히 통상적이지만, 실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오늘 아침이 좋다는 걸 너와 나누어 기억하기 위해서야. 무엇보다 아침이 좋다는 것만으로 기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는 일이지. “좋은 아침이야.” 얼마나 멋져. 일단, 오늘 아침 내가 살아있고, 게다가 날씨가 좋고, 이 날씨 좋은 아침에 너랑 같이 있다, 무려 이런 뜻을 담고 있잖아.
이런 말들을 물어봐 줬으면 좋겠고,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해.
정리하자면.. 편안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안부 인사는 필요한 거야. 내가 안녕한지 물어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살아갈 힘이 되잖아. 가슴이 미어지도록 평범한 이들, 안부 인사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야.
의존성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부끄럽거나 나약하거나 특별히 이상한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가장 인간적인 거라고...
그렇다고 해도, 어른이 되면 스스로 안부를 묻는 법을 배워야겠지. 내 삶에 대해서 내가 질문할 수 있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사색하며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지. 언제까지고 내 옆에서 사람들이 질문해 줄 수는 없잖아.
그런데 홀로서기를 배우려면, 세워줄 사람이 있어야 해. 안부, 환대, 사랑을 타자와 나에게 베풀게 되려면, 먼저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오늘 밤도 달이 참 밝다.
좀 잔소리가 필요했어.
그런데, 안부 인사랑 잔소리는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
예를 들면, 시무룩하게 걸어가는 친구에게 “야 뭔 일 있어?” 이렇게 되면 안부가 되겠지. 근데 네가 그 친구 허리를 탁 치면서 “야, 어깨 펴고 다녀!” 이렇게 하면 잔소리가 되겠지.
잔소리도 본질적으로는 안부 인사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오히려 잔소리가 더 애정 어린 표현일 수도 있겠지. 왜냐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하잖아.
“아침 먹었어? 밥 먹고 다녀. 너 밥 안 먹었지? 밥 먹어. 네가 밥을 먹었으면 좋겠어.”
“네가 힘든 일 있으면 말해- 말하라고, 어깨 펴고 다니고. 기죽지 말라고.”
“방 좀 더럽게 해두지 마, 치워.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아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혼내겠다….”
이 사람이 내 삶에 참견하고 잔소리를 하고 개입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 나를 위해서 본인의 시간과 정서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야.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그래서, ‘똑바로 살아!’ 정도의 잔소리가 듣고 싶었어. 나는 지금 구체적인 목표가 부족한데 외면하는 중이거든. 이런 질문들을 회피하다 보면 잘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어.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해. — 인간은 기본적으로 독자적인 존재로, 자립할 힘이 있다. 다만, 이들이 휘청이고 넘어져 스스로 힘으로 설 수 없게 되는 문제는 지극히 일시적인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 사랑은 우리가 휘청이는 사람을 일으켜주고, 거꾸로 휘청일 때에는 도움을 받도록 한다. 번갈아 일으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다들 그렇잖아. 나도 휘청이고 가끔씩은 넘어지기도 하면서 살아.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 힘들 때도 있어. 그럴 때면 누가 지극히 평범하게 물어오는 안부 인사라던가, 보다 못해 하고 가는 잔소리 같은 것들이 삶을 구원할 때가 있거든. 나는 그래서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어.
솔직히 난 언제든 괜찮다고 대답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편이고. 실제로 괜찮아지니까.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고 나면 그날 아침이 더 좋아지거든, 그래서 언제든 괜찮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구원하고 지나간 거지.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다들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휘청이는 마음들을 부축하며 살고 있는 거지, 매일매일. 너도 그럴걸. 너한테 구원받은 사람도 있을 거야. 아무튼 그렇다!
삶이란 게 번갈아 일으켜주는 것 것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고 싶어.
난 손 흔들어서 인사하는 것도 좋아하고, 눈웃음도.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것도 좋아하고, 내일 또 보자라고 약속하는 것도 좋아해. 정말로 내일 또 봤으면, 내일도 좋은 아침이었으면 좋겠으니까.
한 사람을 고르자면, 지금 딱 떠오르는 거는 ‘우리 엄마’인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잔소리를 진짜 많이 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나를 살아올 수 있게 했거든. 우리 엄마가 요즘 안부 인사가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안아주는 거로 대신하고 있어… 말은 좀 쑥스러우니까.
예린아, 잘 지내지?
글 쓰면서 한 번 답해보는 거가 어떤가 싶어. 그렇다!
“ 편안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안부 인사가 필요해. 내가 안녕한지 물어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살아갈 힘이 되잖아. 가슴이 미어지도록 평범한 일들, 안부 인사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야.
누가 지극히 평범하게 물어오는 안부 인사라던가, 보다 못해 하고 가는 잔소리 같은 것들이 삶을 구원할 때가 있거든.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구원하고 지나간 거지.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다들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휘청이는 마음들을 부축하며 살고 있는 거지, 매일매일 ”
위 기사의 첫 번째 인터뷰라 횡설수설한 부분이 많았고, 주제에서 점점 산으로 가고 있는 듯한 걱정을 품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이름은 규격화된 것들이 다수로 차지하는 ‘수학’의 기호인 √ 로 밝혔지만, 누구보다 섬세한 순간과 정교한 단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동공을 응시하며 그 경험을 함께 그리게 하거나, 동공과 마음이 흔들리며 그 말이 내 마음에 정착하는 힘을 수없이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가 수없이 품고 있는 힘에 기대어, 삶에 더 빠져들고 싶기도 이야기를 더 듣고 싶기도 하였다. 이런 기회를 준 그에게 감사했다. 규격화된 나의 질문에 그의 수없는 힘을 담으려고 하니, 여러모로 부족한 것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일상 속에서 비교적 자주 마주치지 않았을 시점에, 그에게 안부 인사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무엇 하나 마음에 정착하기 어려운 순간임에도, 애써 그것을 내 기억 속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순간이었다.
나에게 안부 인사는, 두려움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것 중 하나이다. 안부인사를 하려는 나의 움직임을 두려움이 애써 억누르지만, 결국은 상대를 응시하자마자 튀어나오게 된다. 이처럼 안부 인사라는 존재의 그림자에 발을 디디고 있는 나에게, 그의 이런 안부 인사는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웃음이 되기도, 기억에 정착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던지려 했던 질문 그 속에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 대화도 그가 행했던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게 그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평범한 일들을 기억하며,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고마워!
10 월 중순에 진행하였던 두 번째 인터뷰이다. 총 3 명의 인터뷰를 함께 진행했다.
각자 정한 이름은 ‘사랑에 빠질랑말랑 딸기’, ‘쿠키앤크림아몬드’, ‘초무스콜릿’ 이다!
현재 나의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꿈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어떤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는. ‘꿈’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것들을 되짚어보면서 내가 어떤 마인드인지를 알고 싶은 것 같아.
희망, 동심, 버킷리스트에 대한 대답을 할 것 같아. 미래의 내가 그런 거를 하는 상상을 하면 행복하고 떨리고 설렘이 느껴져. 현실만 보고 사는데, 너무 현실만 계속 보고 살면 그게 좀 힘들더라고. 쓸데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미래의 나는 이렇게 살 거고 이렇게도 할 거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난 너무 그게 재밌어. 현실을 살맛이 나. ‘포부’를 말하는 거야.
(쿠키앤크림아몬드: 나는 좀 다른 것 같아. 미래에 대한 질문을 나한테 던지면 오히려 더 생각이 많아지고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 행복해지기도 하는데, 그냥 꿈이 뭐야는 되게 막연한 느낌이야. 꿈이라는 단어가 나한테 크고 무겁게 느껴져.
초무스콜릿: 나도. 뭐 먹을래? 이런 질문은 신난데 뭐 하고 살래? 는 헛된 희망 같아서 하기 싫어져.
쿠키앤크림아몬드: 나는 그거를 평소에 생각을 하면서 살지만, 굳이 질문으로 받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야.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해나가고 싶은 것 같아.)
애정! 애정이 기반해있는 것 같아.
사소한 거기는 한데 “밥 먹었어?”라는 질문을 받고 밥을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서, 중요한 것들과 답들이 오가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밥 먹었어?”라는 질문을 예열 단계로 생각했어.
꼭 모든 식사 자리가 그런 건 아닌데, 대체로 내 경험에서는 오랜만에 상대를 만나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어. 그러면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질문들과 답변들이 오가는 것 같아.
난 오히려 미래보다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을 만나면 요즘 잘 살고 있냐는 이야기를 하잖아. 어떻게 지내. 나는 이게 좀 더 받고 싶은 질문인 것 같아.
그냥 주어진 일과 활동만 하고 살다 보면, ‘어떻게 살아’처럼 나의 감정을 말할 수 있거나 나를 생각할 겨를이 많이 없어지더라고. 그 질문을 받으면 “바쁘긴 한데 행복한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조금은 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지금은 그냥 생각보다는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그냥 항상, 나는 되게 안정적이게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어. 그런데 ‘요즘에 좀 바닥을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그게 좀 기억에 남네.
“친하다의 기준이 뭐야?”
“어릴 적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에 차이가 있고, 그게 있다면 왜 생겼을까?”
“내가 졸업작품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그때 숨어있던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 이후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어?”
내가 평소에 그런 질문을 많이 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 선에서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보는 편이니까. 애들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었고. 최근에 내가 들었던 질문들이어서 더 떠올랐던 것 같아.
나는 연락을 하려고 했을 때 ‘멈칫’되지 않는 사람들이 친하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어릴 적의 내 모습은 멋모르고 되게 활발했는데, 중학교 올라오면서 얌전해지고 조용해졌어. 그때부터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고 살이 찌기 시작하고,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인 것 같아. 어린 마음에 중학교 때는 그랬어. 이래서 차이가 생긴 것 같아.
지금은 그런 생각은 아예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의 내 모습처럼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래. 옛날에 어떤 친구가 그랬는데, 우리 학교 애들은 성숙해진 것이 아니라 남한테 관심이 없어진 거래. 나도 동의했어. 중학교 때 제일 큰 문제 중에 하나였던 ‘남 얘기를 함부로 하는 것’을 요즘은 다들 더 이상 하지 않게 됐어. 하지만 이거는 관심이 없어져서 그런 건데 성숙해진 건 줄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나의 다른 면이 있구나라고 깨달았어. 그 뒤로부터 내 행동을 했을 때 남이 이상하게 볼까 봐 안 했던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또한 나의 면이겠구나 생각했어. 남이 ‘평소랑 쟤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는 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아.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한 나에게 해보고 싶은 질문을 하나씩 받았다. 그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위 인터뷰에 대한 내용을 마무리하겠다.
나는 대체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이것저것들! 그 사람의 삶과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더 궁금해지는 것들이 생기더라고. 그렇지만, 너희들 앞에 서면 종종 내가 답변에 다가가는 순간이 생기더라. 이것저것 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인 것 같아.
결국! 둘 다 좋은 것 같아.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사랑이 머물고 있습니까?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떨렸다! 늘 떨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순간은 드물더라.
9월 즈음에 처음으로 이 질문을 떠올렸을 때의 감각이 분명히 존재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 조금은 흐려졌던 것 같아. 그것을 온전히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던 것 같아.
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해.
여러 것들에 대한 질문을 비교적 많이 품으면서 살아가는 편이다. 이런 나의 부분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기회라고 생각한다. 온전한 나에 대하여 함께 마주 서준 √, 사랑에 빠질랑말랑 딸기, 쿠키앤크림아몬드, 초무스콜릿에게 마음을 담아서 감사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자신의 삶에서 받고 싶은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에게, 자신의 삶에서 받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