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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09. 2022

고목

김동현

 낡은 고철 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덜컹거렸다. 충격을 제대로 분산해주지 못하는 낡은 버스와 아스팔트라곤 존재하지 않는 시골 흙길이 만나 만들어낸 환상의 콜라보. 그 탓에 버스 안의 사람들은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스 안에 있는 것이 나와 기사뿐 이라 불평 섞인 웅성거림은 없었다는 것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엉덩이 덕에 나는 반쯤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옛날 생각이 나며 자연스레 창밖으로 시선이 갔다. 중학교 시절 항상 봐오던 풍경은 지금도 놀라우리만큼 똑같이 그곳에 남아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내 귓가에 버스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불편하시죠?”

 “아뇨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꽤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이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기억을 되짚을 때 인상이 쓰이는 나쁜 버릇도 있었기에 오해할 법했다. 고쳐지질 않는 나쁜 습관에 혀를 차며 인상을 썼던 미간을 가볍게 주무르자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얼굴이 더욱 희게 질렸다. 반응이 꽤나 드라마틱한 것이 몇 번 컴플레인을 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곳 출신이며,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익숙하여서 추억이 떠올라 그런 표정을 지었다고 세세하게 설명하고 나서야 기사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그런데 못 보던 얼굴인데. 무슨 일 있어요?”

 “아뇨 별건 아니고요. 방학이라 부모님 얼굴 한번 뵈러 왔어요.”

 “착하네. 우리 애들도 좀 오면 좋으련만.”

 껄껄 웃은 버스 기사는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털털거리는 엔진소리만이 버스 안에 울리며 미묘한 정적을 만들어내었다. 나 또한 할 것도 없었기에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덜컹거리던 버스는 어느새 언덕을 다 올라왔다. 동시에 창밖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한 그루의 고목였다.     


 내 고향 마을의 중심에는 거대한 고목 한 그루가 심겨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는 모르나, 그 앞집에 사는 박 할아버지에 말에 따르면 본인이 어렸을 때 심었다고 했으니 대략 80년에서 90년 전부터 있었던 것일 터다. 아무튼, 이 고목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고목과 결이 조금 다르다. 사실 조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뭐한 것이, 일단 높이만 해도 150m가 넘는다. 그렇다고 세쿼이아처럼 줄기가 위로만 뻗어나간 것도 아니다. 굳이 비슷한 것을 찾자면 애니메이션이나 여러 판타지 매체에서 등장하는 세계수와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어릴 때 조사원들이 꽤나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뉴스에 뭐에 야단법석을 떨었다. 마을도 덩달아 고조되는 바람에 어른들 모두가 김칫국을 한 사발씩 들이마셨었다. 그러나 조사원들은 그저 이름도 모르는 나무의 변종일 뿐이라는 답변만 내놓고 훌쩍 떠나버렸고, 일순간 늘어났던 관광객들도 늘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줄어들고 말았다. 결국 관광객을 상대로 가게를 열었던 김 아저씨만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지금도 드문드문 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덕분에 어린 시절 기억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뭣도 모르고 즐겁게 뛰어놀던 기억뿐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어릴 때 꽤나 장난꾸러기였던 탓에 참 별짓을 다 했다. 박 할아버지네 수박밭을 서리한다든지, 개울에 가서 하루종일 놀다 감기에 걸린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죄다 고목과 관련된 기억뿐이다. 고목에 날카로운 돌멩이로 만화 캐릭터를 그리다가 회초리를 맞은 기억, 고목을 타다가 그만 자라나던 가지를 부러트려서 집에서 쫓겨난 기억 등. 어른들은 고목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게 나를 혼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그러나 고목에 대해 안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언제나 고목 밑에서 열렸고, 학교에서 소풍하러 가도 언제나 고목 밑. 봄의 꽃놀이, 겨울의 눈싸움, 여름의 물놀이, 가을의 잔치 또한 고목 밑에서 열렸다. 고목는, 내 어린 시절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도시로 가게 되며 나는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워낙 오진 곳에 마을이 있었기에 교통편도 달갑지 않은데다가 고등학교부턴 자취를 시작해 시간도 없어 쉽게 가지도 못하는 상황. 결국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지금이 되어서야 마을에 다시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더욱 커져 버린 고목였다. 아직 마을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내 머리 위에 고목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만큼 커져 버린 고목에 놀라며 나는 천천히 마을 안쪽으로 향했다.

 처음 이상함을 느낀 것은 마을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을로 향하는 유일한 길인 이곳에는 언제나 길 양옆으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그런데 지금 길 양쪽으로 풀들이 축 처진 채 비실거리고 있었다. 혹시 비가 안 와서 그런가 싶어 흙을 만져보았으나 물기가 없는 흙은 아니었다. 결국 문제를 알 수 없어진 나는 찝찝함을 뒤로 한 채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마을에 점점 다가갈수록 나는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길에서 흙을 만질 때만 해도 낮의 숲 정도였다면 지금은 황혼 때 숲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햇볕이 들지 않는 탓인지 길가에는 비실거리던 잡초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길과 양옆의 넓은 평지에는 갈색 흙만이 황폐하게 늘어져 있었다. 분명히 과거 기억 속에서 이렇게 이상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일대는 논이 죽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 따라서 6월 중순인 지금 논에는 푸른 작물이 심겨있어야 정상이었다. 올 때 버스에서 봤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주변 땅은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땅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갑자기 농사를 그만두었다면 어머니와 전화할 때 분명히 전해 들었을 터. 마냥 찝찝하다고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하늘에 떠 있을 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오직 갈색 나뭇가지뿐이었다. 하늘을 가득히 뒤덮은 나뭇가지들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려는 태양을 완강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그저 소수에 불과한 지경. 내가 지금이 황혼 때라고 느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내가 느꼈던 이상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비실거리던 잡초도, 사라진 논도, 전부 고목이 햇빛을 가려버린 마을에 어둠에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을 떤 나는 마을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우리 집은 고목 근처에 있던 탓에 가면 갈수록 더욱 어두워져 휴대폰 불빛이 없다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달렸다. 머릿속에 생겨버린 불안감이 자꾸만 나쁜 생각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집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머니께서 손전등을 들고 나와계셨다. 몇 년 만에 뵌 탓인 건지, 작금의 불길한 생각 때문인지 나는 달려가 어머니를 꽉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신 건지 잠시 멈춰계시던 어머니는 이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셨다. 그 손길을 느끼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정감을 느꼈지만, 마음 한편에는 저 고목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짐을 풀곤 곧바로 어머니께 고목에 대해 여쭈었다.

 “엄마, 저거 고목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앞이 안 보일 정도던데.”

 “응? 나무야 원래 크는 게 당연하잖니.”

 어머니는 당연한 걸 말한다는 듯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식사를 준비하시기 시작했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행동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잠시 얼이 빠져있다가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가리켰다. 분명히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저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얘도 참. 너 가기 전에도 저랬어, 얘.”

 내가 장난치는 건 줄 아신 건지 어머니는 가볍게 웃으시곤 다시 냄비로 눈을 돌리셨다. 뭔가 이상한 어머니의 태도에 잠시 벙 찐 채 가만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모습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밖에서 볼 땐 어두워서 알지 못했으나 얼굴에는 심하진 않았으나 살이 빠져 수척해 보였으며, 슬슬 더워진 날씨 탓에 드러난 팔에는 밴드가 몇 개씩 붙어 있었다. 곧바로 나는 어머니께 다가가 몸 상태에 대해 여쭤보았다.

 “엄마, 얼굴이 왜 이렇게 수척해요? 요즘 무슨 일 있으셔요?”

 “아냐, 별일은 무슨. 그냥 요즘 좀 기운도 없고 밥맛도 좀 없어서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래.”

 “밴드는 뭐고요.”

 “아유, 집에서 몇 번 넘어진 거야. 얘가 오랜만에 보더니, 철들어서 왔네. 엄마한테 신경도 다 써주고.”

 장하다는 듯 머리를 두어번 두드린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까지 부르며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조금만 기다려, 밥 빨리 만들어줄게.”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딘가, 이상했다.     


 밥을 먹고 나서 잠시 마을을 돌아다녔다. 해가 조금 진 것인지 그나마 빛이 들어오긴 했으나, 그래도 손전등 없이는 밖을 돌아다니긴 힘들었다.

 마을은 어둠에 잠긴 것을 제외하고도 내 기억과 달라진 점이 많았다. 일단, 식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햇볕이 들지 않는 탓이라기엔 땅 또한 생기를 잃고 황폐해져 있었다. 풀이 없으니 벌레가 없고, 벌레가 없으니 개구리와 같은 동물들도 없었다. 덕분에 마을에는 바람 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둠에 내려앉은 마을이 고요하기까지 하니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손전등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점도 한몫했다. 바람도 풀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아닌, 길가를 따라 울리며 내는 소리라 더욱 무섭게만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은 죄다 저 멀리 있는 논으로 농사하러 갔다고 어머니께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논들은 어릴 때 기억에는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고목이 자라면서 근처에 있던 논과 밭들은 죄다 멀리 옮긴 것 같았다. 실제로 마을 근처에는 수풀만 무성할 뿐 그렇다 할 농사 지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 몇몇도 죽었다고 했다. 이미 전화로 들은 이야기지만, 마을의 상태를 보아하니 결코 정상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겼다.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신 것도 아마 저 고목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마을을 샅샅이 둘러보았으나, 내 기억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은, 아니 하다못해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슴 한편이 강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마을 중앙으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고목이 우뚝 서 있었다. 집 한 채보다 더 큰 줄기를 바탕으로 하늘 높이 뻗어나간 고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채 있었다. 물론 상당히 커졌다는 점은 있었으나, 그 주변의 풍경은 어둡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내 과거 기억과 거의 똑같았다.

 잠시 어릴 적 기억을 가만히 떠올리고 있던 사이, 뒤에서 클락션이 들려왔다.

 “어이! 거 성씨네 애 아녀?”

 “이 아저씨!”

 마침 고목 아래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리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 아저씨에게 곧바로 달려갔다. 아저씨도 반가우신 건지 트럭에서 내려서 나를 맞이해주셨다.

 서로 안부를 묻고 고목 아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분위기가 조금 무르익자 나는 조심스럽게 고목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 고목 내버려 두실 거예요?”

 “응? 고목이 왜.”

 “마을에 햇볕도 안 들고, 또 밭이나 논도 저 멀리까지 가셔야 하잖아요.”

 “에이, 그렇다고 멀쩡한 나무를 베?”

 “나무 하나만 베면 다 해결되는데요?”

 그 말에 이 아저씨는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너 그런 소리 하지 마. 애꿎은 나무가 뭔 죄라고.”

 내 말에 기분이 나빠진 것인지 이 아저씨는 자리를 탁탁 털고 일어나 다시 트럭을 타고 떠나갔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고 떠난 것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트럭은 어둠을 뚫고 잘만 나아갔다. 이 어둠이 당연하다는 듯.     


 이 아저씨 이후로 농사일을 마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로 돌아왔다. 모두가 당연한 듯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애초에 할 것도 없었고, 고목 때문에 마음도 싱숭생숭했던 터라 나는 그들과 한 명 한 명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내가 고목 이야기만 꺼낼 때면, 그들은 모두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거나 불쾌하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김 아저씨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쓰며 내게 험담을 내뱉었다.

 “너, 지금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 이러는 거지, 응? 우리 마을은 이거 없으면 망해! 망한다고! 뭘 알지도 못하면서!”

 박 할아버지는 아예 나를 호통쳤다.

 “내가 어릴 적에 심은 나무를, 뭐어, 베겠다고? 이런 천인공노할! 내가, 어! 이 나무를 어떤 마음으로 심었는지 알어? 마을 사람들 모두 저 아래에서 편히 쉬라고 심은 것을! 어-딜 감히 그런 소리를 혀!”

 그나마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내 말에는 동의했지만, 나무를 베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저 큰 나무를 어떻게 베. 놓을 공간도 없고. 가지치기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어. 그냥 이대로 사는 것밖에 없어.”

 마을 사람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고목을 베는 것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로 그들을 설득해보려 하였으나, 그들은 일절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항상 나에게서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상태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아 보였다. 다크서클이 생긴 사람, 허리가 심하게 굽은 사람, 자꾸 걷다가 다리를 삐끗하는 사람,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검색해본 결과 전부 햇빛을 오랫동안 쬐지 않으면 생기는 병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마을 광장에 혼자 남아 고목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마음을 굳게 먹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견고해 보이는 고목 뒤편으로 붉게 타오르는 해가 지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어머니 몰래 풀지 않은 짐과 도끼를 챙겨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마을이 조용했던 탓에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그러나 손전등의 불빛을 킨다면 너무나도 쉽게 들킬 터. 결국 난 휴대폰 화면 불빛에 의지하며 나아가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목 앞에 도착한 나는 주머니에서 목장갑을 꺼내어 꼈다. 내 몸집에 20배보다 더 될 것 같은 나무 앞에 도끼를 들고 서니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었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아픔에 인상을 찌푸리시고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곤 마음을 굳게 먹었다.

 위로 치켜든 도끼가 둥근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나무에 박혔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히 단단한 고목의 줄기를 생각했던 내 손끝에 걸리는 느낌은, 마치 조금 두꺼운 종이를 칼로 벤 것 같은 가벼운 감촉이었다. 그에 의문을 느끼고 휴대폰 불빛을 비춰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히 단단해 보였던 나무의 안쪽은 텅텅 비어있었다. 손으로 줄기를 가볍게 두드려보니 오직 껍질만 단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목은 이미 반쯤 죽어있었던 것이다.

 허탈감에 정신을 놓은 것도 잠시, 나는 계속해서 도끼질해 나갔다. 어차피 껍질밖에 남지 않은 나무였기에 줄기를 베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줄기를 완전히 베어버리자, 고목은 기우뚱하며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밑동이 비어있었어도 워낙 거대한 나무였던 탓에 상당히 큰 소리가 났다. 놀란 마을 사람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이미 나무는 넘어가기 시작한 상황. 결국 그들이 뭘 하기도 전에 나무는 거대한 소리를 내며 바람과 충격을 남기곤 완전히 쓰러졌다.

 나무가 사라지며 달빛이 마을을 비추고, 그 탓에 고목의 밑동에 도끼를 들고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보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 전에 이미 버스정류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나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도끼도 던져 놓은 채 달리고 있었다. 넘어질 뻔해도 다시 중심을 잡고 달렸다. 그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렸다. 고목을 쓰러트리고 얻어낸 달빛을 이정표 삼아 달렸다.

 달려야 할 이유조차 모른 채.     


 떠나기 직전에 첫차에 올라타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고목은 다행히도 길과 비어있는 논 쪽으로 쓰러진 덕분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그 여풍과 줄기로 인해 몇몇 집이 조금씩 무너졌긴 했다고 한다.

 달빛 아래 얌전히 누워있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그 주변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이젠 더 이상 어둠에 잠식되지 않은 마을. 이젠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 밖에 나갈 때 손전등을 들고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며, 논과 밭을 원래 짓던 땅에 다시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아직까지도 그렇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덜컹덜컹 떨렸다.

 “조금, 불편하시죠?”

 “네, 조금. 그렇네요. 조금.”

 쓰러진 고목은 달빛을 받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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