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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Nov 01. 2022

이우의 가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이다경

  9월 30일, 이우학교에 별무리학교 학생들이 찾아왔다. 별무리학교 학생들은 별무리학교의 자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으며, 다른 대안학교에서의 자치를 궁금해했다. 학교를 소개받으며 탐방하는 시간을 갖고, 오후 2시부터는 이우학교 학생 중 일부와 함께 자치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서로 자신의 자치를 소개&비교하는 시간을 가지며 발견한, 별무리학교 학생들의 특징적인 부분은 “규정”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다.

별무리학교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무리학교는 교복, 교제, 크롬북 등 다양한 규정이 존재하고 이에 따른 벌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러한 규정에 대해 의문점을 품으며 이우학교의 규정은 어떤지 궁금해했다.


  그러고 보면 이우학교에는 규정이 따로 없었다. 이우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이우인의 약속” 탭에서 이우헌장, 이우생활규범, 학교생활 인권 규정 정도가 보일 뿐, 엄격히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 없다. 이우헌장, 학교생활 인권 규정 역시 어떠한 것에 대한 제한을 걸어두고 그것을 어길 시 발생하는 페널티보다는,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해 서술하거나 추상적이고 해석의 범위가 매우 넓게 이야기하고 있다.

↑ 이우 헌장의 일부분


  이런 헌장은 어느 국가 혹은 기관, 단체, 비영리 기구 등에서 어떠한 사실에 대해 지키려고 정한 규범이다. 즉, 이우학교에는 강제성이 강조되는 ‘규정’ 없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인 ‘규범’이 존재하는 것이다.


  규정 대신 규범이 존재하면서, 이우학교는 많은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학생들은 두발규정과 교복 규정의 제한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다닐 수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규정에 따라 벌점을 받고 끝나는 게 아닌 면밀한 상담과 학생에 맞춘 대응 방식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자유롭게 모임을 만들고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것에는 문제점도 따른다.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규범의 범위가 다소 추상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많다 보니 각 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이우학교의 모습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떤 이는 이우학교를 대안적인 교육을 위한 학교로 보고, 어떤 이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학교로 본다. 또 다른 이는 교육보다는 생태, 협업 등의 개념으로 이우학교를 보기도 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우학교가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 중심적인 가치나 정도가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다만, 그 정도가 많이 차이 난다면 갈등이 빚어지기 쉽다.


  갈등이 벌어지는 주제는 많고 다양하다. 입시, 언어사용, 생태, 결식 등등 보편적이지만 그만큼 또 많은 의견 차이가 생기는 주제들이 있다. 가장 많이 공감할 문제로 “입시”가 있다. 학생의 대부분은 이우학교를 선택한 이유로 ‘대안학교’이었음을 꼽을 것이다. 그들이 대안학교를 원했던 건, 보통 일반 학교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분화해보면, 각자가 생각한 “대안적인 교육”과 그 “대안적인 교육”을 하고 싶은 이유가 다르다. 일반 학교의 경쟁적이고 주입적인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온 학생도 있고, 입시와는 별개로 ‘나’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어서 온 학생도 있다. 그리고 대안적인 학교이면서 입시를 허용해주는 학교가 이우학교라서 온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이 학생들은 모두 이우의 가치인 ‘대안적인 교육’을 바라지만, 실상은 조금씩 다르기에 입시와 활동의 비율이 달라지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례로는 “채식식단”이 있다. 이우의 급식은 채식, 로컬, 잔반X 등 환경을 고려한 식단으로 많이 꾸려진다. 학생의 대부분은 급식을 보고 학교를 선택했다기보다 이념, 가치 등을 더 우선했기에, 가치와 이념에는 동의하지만 이러한 식단에는 아닐 수 있다. 특히 평소 고기 위주의 식단을 가지고 있는 한국 학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식단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급식은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 급식을 보고 학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급식을 보고 하루를 살아나갈 수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기가 나오지 않거나,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채소가 나올 경우 불평불만을 내놓는다. 하지만 반대로, 채식인들에게도 이우 급식에 대한 불평불만이 나온다. 특히 이번 연도에는 잠잠이 선생님이 새로운 영양사 선생님으로 변화되며 이전보다 고기반찬이 더 빈번하게, 대체식 없이 나오게 되며 먹을 게 없다는 게 주 논점이다.


  이처럼 이우의 규범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기에 다양한 주제에서 갈등을 빚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에 직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은 교사나 학부모의 지시없이, 스스로 갈등을 빚는 양쪽의 의견을 들으려 하고 직접 논의하며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구상해나간다. 때로는 대자보, 이야기장, 책 출간 같은 발화를, 때로는 자치기구, 학년회, 총학 등 자치조직과의 대화로 전문적인 논의를, 때로는 생태주간, 포럼 등과 같은 실제적인 행동을 해나간다. 갈등을 조정해 나가며 최소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은 ‘스스로 다스림’이란 뜻을 가진 자치와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자치에는, 이런 측면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요즘에는 이런 갈등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있는 느낌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입시, 언어사용, 생태, 결식 외에도 문제가 되는 것들은 많지만 이와 관련된 발화가 활성화된 모습들을 보지 못했다. 올해 급식위에서 급식실 유리창에 결식에 대한 대자보를 붙였지만, 그에 관한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자보는 바람으로 얼마 안 가 떨어졌다. 다른 것 역시 비슷하다. 다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불평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해석이 다양하기에 갈등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치로 이를 다스려야 하는데, 건강한 발화부터 나오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과정들을 진행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런 ‘비정치화’에 대해서 다룬다. 더 궁금하다면 다음에 올라올 기사인 [우리의 자치는 얼마나 솔직한가: 비정치화]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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