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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Dec 10. 2022

지폐의 역사

김채윤, 김채현, 유승표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 ‘돈’. 우리는이 돈 중에서도 지폐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간단하게 지폐의 뜻부터 살펴보자. 지폐는 종이로 만든 돈을 가리키는 한자어다. 호주에서 1988년,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폐가 상용화에 성공하며, 현 시점에서 지폐는 크게 3분류 (종이, 면, 폴리머)로 나뉘게 된다. 영어로는 banknote라고 하며, 그 외에 일상적으로 bill, paper money라고도 한다. 주화에 비해서 가볍고 더 많은 금액을 가지고 다닐 수 있지만 실물 가치가 없다. 즉, 국가나 화폐에 대한 신용이 막장이 되어버리면 지폐는 말 그대로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폐는 언제부터 쓰인걸까? 분명 우리는 역사책에서 인간의 첫 거래는 물건과 물건을 교환하는 ‘물물교환'이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폐는 중국 한나라 때의 '피전(皮錢)'이라는 화폐로 알려져 있다. 종 30년인 1893년, 우리 정부가 발행한 최초의 지폐 호조태환권, 공적으로는 사용되지 못 하였다. 

 이후 식민지 시대에 발행된 지폐를 광복이 된 후에도 한국의 지폐로 그대로 사용했다.

1945년 9월 1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지폐는 1백 원짜리 조선은행권. 지폐의 액면, 모양, 도안까지 모두 화폐를 담당하는 일본인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것이었다. 


 각 국의 화폐도안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 동식물, 문화유산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중 화폐 앞면의 주소재로는 정치인, 학자, 예술가 등 인물초상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은행권에는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의 모습이, 미국 달러화에는 워싱턴, 링컨 등 역대 대통령의 모습이, 영국 파운드화의 앞면에는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모습이, 프랑스 프랑화에는 작곡가 드뷔시, 작가 생텍쥐베리, 화가 세잔느 등의 모습이 들어 있다. 물론, 네덜란드의 굴덴화, 스리랑카의 루피화 등처럼 인물초상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나라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 우리나라 만원권, 오만원권 -


– 미국의 달러 -


 이처럼 인물초상이 화폐의 도안소재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물초상은 다른 소재에 비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장 압축적이고 쉽게 대내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폐에 사용된 인물의 위엄과 훌륭한 업적이 화폐의 품위와 신뢰를 지지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도안소재에 비해 쉽게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친근감을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화폐도안에 들어갈 인물을 결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화폐도안의 인물은 업적과 품성이 위대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오랜 세대에 걸친 충분한 역사적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논란의 소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 인물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이 가능하고 시각예술적인 면에서도 화폐도안으로서 손색이 없는 등의 요건을 갖춘 인물을 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권당국인 중앙은행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선정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화폐를 직접 사용하는 국민들로부터 거부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각 국의 발권당국에서는 화폐도안에 담을 인물을 선택함에 있어 국왕과 같은 특별한 인물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현존인물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발권당국에서는 평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하여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의 여론도 수렴해 놓고 있다.

https://www.bok.or.kr/portal/bbs/P0000547/view.do?nttId=14194&menuNo=200387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폐 속 다양한 인물에 대하여 홍길동과 함께 알아보자. 



퇴계이황 

 이황은 조선 시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교육자, 정치인이에요. 그는 40년 가까이 관직에 머무르며 네 임금을 섬겼으며, 300명이 넘는 제자들을 양성했지요. 이황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둔하며 성리학에서 다루는 우주의 본성과 본질, 이치를 탐구하면서 인간의 마음과 기질, 이성과 감정, 본능과 도덕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체계화하였고 그가 세운 사상은 제자들에 의해 조선의 성리학으로 발전하였어요. 율곡 이이와 함께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태두로 불리는 인물,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교육자, 화가, 성리학자입니다. 퇴계 이황이 살던 16세기는 조선 사림의 성장기로, 이때 선비로서 수기(修己)하고, 사대부가 되어 치인(治人)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합니다. 퇴계 이황은 이런 수기치인의 자세를 평생 수행하며 살았습니다. 



율곡이이

 율곡 이이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생후 1년도 안돼 말과 글을 깨우쳐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3세 때 이미 글을 깨우치고, 어머니 신사임당의 글과 그림을 따라할 정도로 비범했다고 하네요. 이후 아홉 번의 장원급제를 하고,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비판하며 주기론을 만들기도 한 조선시대 대표 천재 유학자입니다. 십만양병설을 주장, 장원 급제를 9번이나 하였어요. 또 대사헌의 판서를 맡거나 여러가지 관직을 도맡아 하는등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율곡이이 업적으로 말하면 임금의 허락없이 1만군사들을 북방으로 옮긴 사건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이의 애국심을 알고 있었던 임금은 그를 다시 조선으로 불러들이지만 이이는 이것을 거절하고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 소학집주등 성학을 주로 다루는 책을 엮어내었는데요. 율곡이이는 대동법을 제시하여 사회정책에 이바지하기도 하면서 사회의 발전을 바랬던 인물중 하나였습니다..!



세종대왕

 세종은 조선전기 제4대 왕입니다. 재위 기간은 1418~1450년이며, 1418년 6월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우리 민족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입니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졌어요! 훈민정음 창제는 가장 빛나는 업적이자요. 능호는 영릉으로 여주시에 있답니다.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조선전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입니다. 1504년(연산군 10)에 태어나 1551년(명종 6)에 사망했지요. 이이의 어머니로서 시·그림·글씨에 능한 예술가였어요. 그의 어머니는 친정의 아들잡이로서 친정에 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고, 신사임당도 남편의 외조 속에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 고상한 정신·기백을 드러내는 글씨는 모두가 탐낼 정도로 뛰어났다고 해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한 여성이랍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렇게 지폐의 역사, 지폐 속 인물들의 선정 기준, 지폐속 인물들 소개까지 해보았다. 내 지갑속에 들어있는 지폐, 이제는 조금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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