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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06. 2023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 노인빈곤의 대명사가 된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하여 / 김서형

 ‘노인 빈곤’이라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노인이 떠오를 것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안타까운 개인의 이야기로만 소비되어 왔다. 그런데 이들이 국가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바라봐질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글은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폐지 줍는 노인’은 누구인가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20분 노동을 하고 하루 평균 12.3km 걷는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골판지 폐지의 kg당 가격은 78.6원. 이렇게 일하여 버는 돈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이다. 턱없이 부족한 돈 때문에 식사는 부실해지고, 폐지가 나오는 시간을 고려해 식사는 늦어진다. 100~200kg를 이끌며 높이 쌓인 폐지 때문에 좁아진 시야로 위험천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러다 보니 몸이 성한 곳이 없다. 폐지를 줍기 위해 진통제를 달고 사는 노인도 있다.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는 판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노인은 없다. 폐지 줍는 노인의 특징으로 KBS는 ‘장시간 노동/ 취약시간 노동/ 형편없는 노동대가/ 불규칙한 식사/ 위험한 노동환경’으로 정리했다. 또 참여연대의 기획기사에 따르면 ‘빈곤노인에게 폐지 줍는 일은 ‘자발적 강제노동’이자 ‘생존을 위해 노년을 갈아 넣는 일’’이며 폐지 줍는 노인 역시 ‘이 일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일”로 표현할 만큼’ 일이 고되다고 언급했다.


 논문 ‘우리나라의 노인빈곤 동향 및 빈곤구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노인의 빈곤율과 빈곤위험도가 남성노인에 비해 모두 높게 나타났고, 학력이 낮을수록 빈곤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도시 사회학 소준철 박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성과 남성의 생애경로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현재의 여성노인들은 직접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이로 인해 경력과 숙련이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하자면, 가난한 여성노인은 이전의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여성 생애의 목표를 남편에 대한 내조와 자녀의 양육으로 삼게 하고, 따라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기회를 갖지 못하게 했던 결과인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저서 <가난의 문법>에서 그는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노인들(폐지 줍는 노인들)을 자신의 비용 절감에 이용한다. (...) 다세대주택을 소유한 한 건물주는 노인들을 데려와 건물 내부 청소를 하게끔 하고, 그 대가로 재활용품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 건물주들이 자신이 소유한 상가 혹은 공동주택에서 노인들을 비공식적으로 ‘유사-고용’하는 형태다. 청소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는 일에 걸맞은 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노동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해야 하건만, 돈을 아끼기 위해 노인들을 끌어들인 셈이다. 여기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해도 노인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폐지 줍는 노인을 통해 알 수 있듯 노인빈곤은 수차례 실태로 그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즉,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폐지 줍는 노인이 정책으로 구제받기란 매우 어렵다. 우선 현재 노인연금 제도의 한계이다. 서울경제 김원섭 한국연금학회장(고려대 교수) 인터뷰에서 “현재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은 54만 원이고 연금 급여 수급자의 절반 이상인 57%가 40만 원 이하를 받는다. 연금이라기보다는 용돈에 가깝다.”라고 꼬집으며 “국민연금만으로 노인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도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조세를 기반으로 하는 기초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시 사회학 소준철 박사는 한국일보 오피니언에서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일자리 수급액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진입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연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폐지를 줍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체로 학력이 매우 짧다는 점에서 자신이 어느 정책의 수혜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폐지 줍는 노인들은 통계로만은 파악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 

 그동안 문제 해결이 더딘 것에는 관심 부족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가적인 통계가 없었다는 것이 크다. 2022년 KBS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연구를 의뢰하여 그해 5월에야 보다 정확한 폐지 줍는 노인들의 수를 포함한 공동 취재,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이전까지 추정치만 존재했을 뿐, 전국단위로 한 폐지수집 노인 인구가 조사된 적이 없었다.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으니 정책 제언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일이 밀리고 꼬이는 동안 인간으로서 노인들은 사회에서 지워졌다. 이들의 노동은 천한 것으로, 기피하고 싶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은, 폐지 줍는 노인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한 곳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이다. 이들은 노인들로부터 시세의 6배 가격에 폐지를 매입하고, 폐지로 페이퍼캔버스 아트를 만들어낸다. 친고령, 친환경적 접근이다. 또한 이들은 폐지 줍는 노인의 사회적 역할을 재해석하여 폐지 줍는 노인의 인식을 개선하고 그들을 ‘자원재생활동가’로 인식하기를 제안한다. KBS에서도 폐지 줍는 노인이 도시지역 단독주택 폐지 재활용 양(40만 8,036톤)의 약 60.3% 해당하는 양 (24만 6,023톤)의 폐지를 수집한다고 말하며 폐지수집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밝혀낸 바 있다. 이처럼 부정적으로만 낙인찍혀 온 폐지 줍는 노인의 사회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올해 4월 정부가 ‘폐지수집노인 실태조사’를 나선다고 발표했다. 약 8개월(4월-11월) 간 진행되는 이 연구는 소득보장 지원, 돌봄 서비스 지원, 노인일자리사업 연계 및 안전관리 방안 등 대책 수립에 활용된다. 이 연구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는 정부가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연구로써 처음으로 전국단위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폐지 줍는 노인을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책이란 공공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에 의해 결정된 행동방침을 말한다.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앞으로 노인빈곤문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을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폐지수집노인의 사회적 가치를 재해석하고 보다 섬세한 제도와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참고 및 출처  

    소준철, 『가난의 문법』, 푸른 숲, 2020.11.30.  

    이종수, 『행정학사전』, 대영문화사, 2009. 1. 15.  

    최현수, 류연규, 「우리나라의 노인빈곤 동향 및 빈곤구성에 대한 연구」, 2003  

    배재윤, 김남훈,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 GPS와 리어카, 폐지수집 노동실태 보고서」, 2022  

    자원순환정보시스템

박진영, 「[GPS와 리어카]① 시급 948원 인생…“나는 거리에서 돈을 줍습니다”」,  『KBS News』, 2022.03.2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0156

박진영, 「[GPS와 리어카]② 진통제 먹으며 일하는 노인들」,  『KBS News』, 2022.03.2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0660

박진영, 「[GPS와 리어카]③ ‘당신은 시급 950원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 『KBS News』, 2022.03.23,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1665

박진영, 「[GPS와 리어카]④ GPS가 알려준 진실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사회적 기여였다”」,  『KBS News』, 2022.03.24,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2719

박진영, 「[GPS와 리어카]⑤ 폐지 수집 노동을 공공일자리로 만든다면?’」, 『KBS News』, 2022.03.25,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3816 

    이미지 외 2명, 「고령사회, 더 치열해진 노인 일자리 경쟁… ‘초저임금’ 근로자 절반이 60세 이상」,  『동아일보』,2023.05.10,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510/119216728/1

김능현, 「[청론직설] “국민연금 보험료 12%로 올리고 기초연금 개선해 노인 빈곤 해소를”」,  『서울경제』, 2023.05.15, https://www.sedaily.com/NewsView/29PL8ERNYO 

배재윤, 「[기획2] 폐지 줍는 노인, 우리 사회 노인빈곤의 민낯1)」, 『참여연대』, 2023.02.01,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now/1926402

박상준, 「'폐지 노인' 다른 시선으로 본 기업가의 꿈 "멋지게 망하기”」,  『오마이뉴스』, 2023.05.29,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2998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소준철, 「[쓰레기의 문법] 소준철 "한달 꼬박 일해도 쥐꼬리 소득, '리어카노인' 지원법이 필요해요"」, 『한국일보 오피니언』, 2022.08.1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8021339000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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