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찬
현지시간으로 2023년 6월 23일 러시아군으로 우크라이나와 싸우던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이 전선을 이탈해서 러시아 남부의 도시, 로스토프나두르를 장악했다. 그리고는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푸틴은 이를 ‘반란’이라고 규정하며 엄격하게 처벌하겠다고 대국민 연설을 하였다. 이 사태는 ‘무장반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게 하루만에 사실상 프리고진이 꼬리를 내리며 마무리되었지만 이로인해 러시아의 내부갈등이 도마위로 올라왔고,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6월 23일 하루동안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엎은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반란의 주동자, 프리고진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가 누구인지 지금부터 낱낱히 밝혀보겠다.
1961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리고진은 스키 선수를 꿈꿨다. 그는 실제로 러시아 명문 스포츠 기숙학교에도 다녔지만 부상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해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그는 엊나가기 시작했다. 18세때 부터 잦은 범죄행각을 벌이던 프리고진은 1981년 조직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는다.
1990년, 그는 긴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다. 그리고 양아버지와 함께 소시지 가판대를 열게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게 대박을 치게 된다. 당시를 회상한 그의 말에 따르면 어찌나 잘되었던지 당시 어머니 생활하던 작은 부엌에서 돈을 셌는데 돈을 세는 속도보다 돈이 더 빨리 쌓였다더라. 이후 그는 식료품업에 진출했다. 그는 부자들을 대상으로한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 레스토랑에는 많은 정치인들과 유명인들이 방문했고, 프리고진은 더 많은 부를 쌓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레스토랑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시장이 찾아온다. 프리고진의 인생을 바꾼 만남이었다. 부시장은 전직 KGB요원 출신으로 훗날 러시아의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된다. 이 사람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이렇게 처음 만난 그들은 어려웠던 어린시절에 대한 공통점으로 인해 더욱 친해졌고, 프리고진은 푸틴의 최측근이 되었다.
2000년 푸틴은 옐친의 후임으로 러시아의 대통령자리에 오른다. 푸틴이 승승장구 할수록 프리고진의 사업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요식업 사업지역을 넓혀서 모스크바에 까지 진출했다. 푸틴은 외국정상들이 방문할때 마다 그들을 프리고진의 식당으로 데려갔다. 프랑스 대통령 내외도, 조지.W.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이 식당을 방문했다. 이로 인해 그는 한때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10년부터는 그가 러시아의 군과 학교의 급식을 담당했다. 그는 새로운 급식 공장을 세워서 러시아 군 급식의 90%이상을 납품했다. 이때 회사가 정부로 부터 받은 돈은 자그마치 16억 달러(약 2조원)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리고진은 대통령과 친한 올리가르히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받는게 있으면 주는게 있어야하는 법. 프리고진은 막대한 부의 대가로 더러운 일을 대신 해주었다. 평범한 사업가로 비춰지던 그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건 2014년 바그너 그룹이 생겨나고서 부터이다. 바그너 그룹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당시, 러시아군을 도왔다. 이외에도 시리아, 리비아 내전을 비롯하여 수단·말리·콩고민주공화국·모잠비크·마다가스카르 등에서 내전·분쟁에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득을 챙겼다. 특히 시리아 에서는 정부군을 지원하며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군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대신 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바그너 그룹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고문 방법과 살인으로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서 인지 프리고진은 자신과 바그너 그룹의 관계를 부인했다. 그는 심지어 그가 바그너 그룹과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한 기자들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프리고진의 태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180도 바뀌었다.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전쟁이 장기화 되자 그는 전면에 나섰다. 전쟁초기에 교도소에서 바그너 용병들을 모집하는 프리고진의 모습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참고로 프리고진은 미필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인터넷리서치에이전시(IRA)’라는 인터넷 여론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의 2016 대선과 2018 총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로인해 그는 미국에서 현상금 25만달러의 지명수배를 당했다. IRA는 미국이외에도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여론조작을 시도했다.
이런 행각들로 인해 그는 ‘푸틴의 더러운 칼’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의 인생은 이렇게 푸틴의 신임을 받으며 탄탄대로 인 듯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2023년 6월 23일 그는 바그너 용병들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로 진격했다. 사실 여기에는 많은 징후들이 있었다. 무려 10개월간의 소모전 끝에 러시아가 탈환한 바흐무트에서의 전투이후 일어난 일들이 대표적이다. 이 전투에는 주로 바그너 그룹이 싸웠는데 수천명의 용병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에서 바흐무트를 탈환했다고 발표하며 바그너 그룹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프리고진은 공개적으로 “국방부에서 탄약지원을 안해주어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국방부에서 자신들의 전공을 빼앗아 가려 한다.”라고 하며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군 수뇌부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러시아 국방부에서는 모든 의용군은 7월 1일까지 러시아 군과 공식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며 맞섰다. 이렇게 되면 바그너 그룹도 군 통제하에 들어오게 된다. 프리고진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는 곧바로 “바그너그룹이 효율적인 이유는 무능한 쇼이구 장관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라며 또다시 쇼이구 국방장관을 저격했다. 하지만 푸틴마저 쇼이구의 손을 들어주었다.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를 향해 분노의 질주를 한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를 프리고진의 푸틴을 대상으로 한 반역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푸틴에게 쇼이구 국방장관의 교체를 요구하는 일종의 시위를 한 것이다. 그는 당연히 푸틴이 쇼이구가 아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시장일때 부터 함께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푸틴은 공개적으로 이를 ‘반란’이라 규정지었고 엄중한 처벌을 예고했다. 프리고진은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불과 하루 만인 6월 24일 그들은 러시아 정부의 협상안에 동의를 하며 사실상 꼬리를 내렸다. 협상안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생명을 보장 받고 벨라루스로 망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가 자연사 하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던 7월 6일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러시아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리고 압류당한 재산도 돌려받았다고 한다. 과연 프리고진의 몰락일까? 아니면 새로운 출발일까?
소시지 팔던 프리고진, 푸틴 겨누기까지 33년…악연의 끝은
떼돈 벌던 요리사가 악당 됐다…푸틴 일은 뭐든 하는 '빌런' 정체 [후후월드] | 중앙일보 (joongang.co.kr)
이미지 출처:https://techrecipe.co.kr/posts/4714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5719#home
https://www.pado.kr/article/2023062914378846841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62613195387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