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SYRIA) / 김가빈
여러분은 혹시 다른 나라로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는가?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는 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이 모두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외교부에 따르면,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외 위난상황(危難狀況)에 처한 나라는 국민들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여권법에 의거해 방문 혹은 체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여행하거나 살기 너무 위험해서 방문, 체류가 금지된 나라들을 우리는 여행금지국가라고 부른다.
현재 전 지역이 여행금지로 지정된 나라는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리비아, 우크라이나, 수단으로 총 8개국이다. 이 나라들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는 말인즉슨, 2023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나라들은 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여행금지국가 이르게 됐을까? 이라크에 이어 두 번째로 다뤄볼 여행금지국가는 바로 시리아다.
시리아는 중동에 위치한 나라로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레바논, 남쪽으로는 요르단, 동쪽으로는 이라크, 그리고 북쪽으로는 터키와 맞닿아 있다. 이라크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듯이, 시리아도 지중해 해안 지역에 비옥한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다. 지중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도인 다마스쿠스(Damascus)에 닿을 수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다마스쿠스에서는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건축물들을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시리아는 지금 볼 수 없다. 12년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Syrian Civil War)의 포화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리아의 참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 내전은 왜 일어났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조금 더 과거로 이동해야 한다. 20세기 초, 오스만제국이 멸망한 뒤 시리아는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프랑스는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한 가지 술책을 쓴다. 당시 시리아에는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 가장 많았고, 시아파의 일종인 알라위파 이슬람교도들이 그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라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수니파와 시아파는 사이가 매우 안 좋다. 그래서 알라위파도 마찬가지로 다수인 수니파에게 박해를 받아왔다. 그런데 프랑스가 이를 이용해서, 오히려 알라위파 신도들을 군대의 고위층에 임명하고 다수인 수니파를 통치한 것이었다. 이런 구조는 시리아가 1946년 독립한 이후에도 이어져서, 시리아군 요직의 상당수를 알라위파가 채우게 된다. 그리고 이런 알라위파 장군들 중 하나였던 하페즈 알아사드(Hafez al-Assad)가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장악한다. 이후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정부의 요직을 모두 알라위파 신도들로 채웠는데, 이는 당연히 다수였던 수니파 신도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하페즈 알아사드는 철권통치를 이어가며 정권을 유지했고 2000년에 사망한 뒤에는 아들인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에게 세습하는 데까지 성공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리아의 대통령이 된 바샤르 알아사드는 집권 초반부터 정치적인 개혁을 진행하며 정권을 그럭저럭 유지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기후 위기로 인해 시리아에 흉년이 닥쳤고, 이로 인해서 경제가 흔들리자 알아사드에 대한 국민들에 불만이 점점 커져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2010년, 아랍의 여러 독재국가들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른바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불리는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2011년 초부터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시위들이 시리아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위들을 알아사드가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한다. 하페즈 알아사드 정권 때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다수의 수니파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시위대와 정부 사이의 충동을 점점 커졌고 결국 그해 7월, 반군인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FSA)이 결성되면서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야 만다.
초반에만 해도 전쟁은 빨리 끝날 것 만 같았다. 알아사드 정부가 반군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의 개입으로 시리아 내전은 장기화된다. 위기에 빠진 알아사드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나라는 다름 아닌 러시아와 이란이었다. 러시아는 서방 견제를 위해,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중동의 수니파를 견제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를 도운 것이다. 반면에 반군은 같은 수니파인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정부군과 반군 외에도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와 쿠르드족의 자치지역인 북시리아 민주연방체제(Autonomous Administration of North and East Syria) 등도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14년부터 악명 높은 ISIL이 참전해서 시리아 동부를 장악한 뒤 온갖 잔혹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후 대 ISIL 개입으로 ISIL은 사실상 소멸) 이렇게 시리아 내전은 내부와 외부의 수많은 세력이 얽히고설키며 복잡해졌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2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에서는 대략 50만 명에서 6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중 민간인 사망자는 30만여 명에 이른다. 또한 전쟁은 약 600만여 명의 난민을 낳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세계 각지를 떠돌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또한 올해 초 시리아 북부에서 일어난 지진은 시리아 국민들의 비극을 한층 더 심화시켰다. 그러나 이런 시리아에도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ISIL이 소탕된 이후부터 시리아에도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시리아 국민들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