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요즘 광고를 끝까지 다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광고는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기 전 거쳐야 하는 여러 장애물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TV를 보는 사람들이 줄었을뿐더러 유튜브도 프리미엄을 사용하면서 웹광고를 접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무리 좋은 광고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 광고가 어떤 내용이건, 무슨 메세지를 담았든 간에 사람들이 스킵할 생각만 한다면 무가치하게 되어버린다. 그런 면에서 요즘은 가장 광고를 접하기 쉬우면서도 보기 어려운 때인 것 같다. 사람들은 더 이상 뜬다고 해서 광고를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킵하기 힘든 광고를 만드는 제작사가 있다. 바로 돌고래유괴단이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돌고래유괴단은 재미와 병맛을 큰 틀로, 흔히 말하는 '약 빤 광고'를 제작한다. 또 다른 특징은 광고가 스토리텔링에 중심이 있어 광고라기보다 한 편의 단편영화, 웹드라마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다. 15초 광고도 보기 힘든 사람들이 천지인 마당에 돌고래 유괴단의 광고는 평균 2~3분을 훌쩍 넘기고 긴 건 10분이 넘기도 한다. 이민섭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가 광고를 넘길 생각을 못 하게 하고 붙들어 놓는 것이 미션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제품 광고인지 모르게 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로 영화나 웹드라마처럼 만든다."
한마디로 광고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자들이 원래 보려던 영상 대신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은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을 관객으로 만들고, 그들이 광고를 따로 찾아서 보도록 만든다
사실 원래 영화를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2007년, 옥탑방에서 시작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였던 것이 돌고래유괴단의 출발점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가진 건 열정만 있는 20대 청년들이 같은 꿈으로 모인 것이다.
이후에는 브랜드 필름과 광고를 제작하면서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주형 감독이 설립 초기를 떠올리며 말하길, “일이 없을 때 시간을 허투루 쓰기 뭐 해 가상의 아이템을 선정하고, 흩어져서 기획해 두 시간 후 모여 PT를 진행했다”며 이를 계속 반복하면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연구하는 노력을 했었다고 한다.
따로 회사를 들어가서 일을 배운 것이 아니기에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면서 직접 배워나갔고, 그러다 보니 창작을 할 때 고정관념이라는 게 생기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돌고래유괴단이라는 이름도 이 시기 만들어졌는데 의미는 없고, 그냥 술 마시다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형편이 정말 천천히 나아졌다. 일이 조금씩 늘긴 했지만 빚은 더 빠르게 늘었다는데, 명색이 회사니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월급은 줘야겠고, 돈은 없고, 그렇게 20대 후반의 나이에 3억 5천이라는 큰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빚을 져가면서까지 회사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 신우석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저랑 함께 가는 팀원들이 있어서였죠. 친구들은 10년 가까이 같이 바닥을 기면서 고생했고 같은 꿈을 꿔왔으니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그런 연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잘 알죠.”
어떤 사람들은 옆에서 치고 들어왔다 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바닥에서 되게 오랫동안 있었거든요.
돌고래유괴단은 정석적인 것, 기존의 문법을 무너뜨리고 뒤집는 것을 좋아하는데, 클리셰를 파괴해야 터진다는 그들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철학 덕분에 2015년, 돌고래유괴단을 유명하게 만드는 첫 히트작이 탄생한다. 바로 캐논 광고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KuYt8feH9s
이 광고에선 주인공이 죽고, 비속어가 해시태그로 등장하는 등 TV광고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것들이 등장하여 충격과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얻었다.
캐논 광고의 성공 후에 다른 광고주들을 설득하는 일이 좀 쉬워졌다고 힌디. “돌고래유괴단이 특이한 기획이나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는 팀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간섭하지 않고 맡겨도 효과 좋은 바이럴 필름을 만들어낸다는 믿음도 심어준 것 같고요.”라고 말했다.
"'돌고래유괴단은 새롭고 이상한 걸 찍는다'는 각오를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덕분에 저희가 하고 싶은, 저희만의 색깔을 가진 특이한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죠. 그 각오가 저희에게 자율성을 준거예요.”
그 이후로도 돌고래유괴단은 강점인 재미와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광고를 제작하며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갔다. 수상도 정말 많이 했는데 그 내역이 화려하다. 대한민국 광고대상, 유튜브 어워즈, 깐느 국제 광고제 등 국내외 여러 굵직한 상을 휩쓸고 다녔다.
나도 돌고래유괴단의 여러 재미있는 광고들 중 내가 좋아하는 광고 몇 편을 뽑아보았다.
https://youtu.be/pjAFH7XlznM?si=io_tx651dEpXxAq8
https://youtu.be/isWwwe1jhfk?si=kWAPb5dnCZ-VpEuy
https://youtu.be/-DtuL2gmEjI?si=oBYgQl4mPQtBtXAI
https://youtu.be/BDyWOwxxUkA?si=uy7kb8AkdZd19uOz
정말로 돌고래유괴단의 광고는 광고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재밌는 콘텐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광고인 걸 알면서도 그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다.
지난겨울, 돌고래유괴단은 광고가 아닌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었다. 바로 가장 핫한 아이돌인 '뉴진스'의 신곡 뮤직비디오 제작을 맡게 된 것이다.
어도어의 대표 민희진 대표가 신우석 감독에게 뮤비 제작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왜 뮤직비디오를 해오던 사람이 아닌 신우석 감독에게 맡겼을까?
민희진 대표는 기존 K팝 틀에 반기를 들고 독립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뮤직비디오 또한 경험이 없는 신우석 감독에게 맡기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우석 감독과 돌고래유괴단은 이러한 민희진 대표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뮤직비디오 안에는 그전엔 없던 새로운 시도들이 들어가 있는데, 같은 곡에 뮤직비디오가 SIDE A와 B로 두 개고, 아이돌 뮤직비디오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립싱크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ditto 뮤직비디오인데 OMG안무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후에도 돌고래유괴단과 뉴진스는 합이 잘 맞아 총 4편의 뮤직비디오를 같이 작업했다.
그리고 극장용과 OTT용 각각 하나씩 영화 제작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돌고래유괴단의 뿌리가 영화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또 돌고래유괴단이 자신들을 광고만이 아닌 여러 장르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광고도 꾸준히 제작할 것이지만, 현재 계속해서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돌고래유괴단은 작업에 있어서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팀이다.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창작자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돌고래유괴단만의 특별한 광고들이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 항상 새로운 것, 평범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유머가 됐든, 서술 방식이나 메시지가 됐든. 전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거예요.” '새로움'을 워터마크로 하는 회사, 그게 돌고래유괴단이다.
신우석 대표는 ‘나의 것을 만들어서 상대를 설득하고, 그것을 지켜내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우직한 힘’에 대해 강조하며, 광고주나 대행사 의견에 많이 휘둘릴 수 있지만 어떤 과정이 있더라도 우리가 만든 필름으로 우리를 증명하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또 그러기 위해 팀원들은 누군가 자신이 있다 하면 밀어주고, 믿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돌고래 유괴단은 작품의 기획부터 연출과 편집까지 1부터 10 전부를 그 감독에게 다 맡긴다고 한다. “좋은 게 모인다고 해서 하나의 좋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광고를 콘텐츠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는 돌고래유괴단의 행보를 주목해 보자. 글을 마치면서, 신우석 대표가 했던 말 중 인상 깊었던 말을 가져와 보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돌고래 정신'을 갖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길 바란다.
재능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 용기가 더 중요한 거라 생각하거든요. 용기가 있어야 재능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