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빈
1912년 7월 30일, 전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45년간 일본을 통치했던 메이지 덴노(明治天皇)가 숨을 거뒀다. 동시에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메이지 시대(1868 - 1912) 또한 그 막을 내렸다.
군주의 죽음, 그리고 한 시대의 종언은 당시 일본 국민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우울에 빠졌으며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그 누구보다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메이지 시대의 상징이자 일본 역사상 최고의 소설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였다. 그는 메이지 시대의 종말로 말미암은 개개인의 감정적 동요를 소설에 담기 위해 만년의 삶을 희사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그곳에 투영된 시대정신을 조명해 보겠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2월 9일, 에도(江戸, 오늘날의 도쿄)에서 태어났다.
나쓰메가 돌에 가까워졌을 무렵, 메이지 덴노가 즉위하며 메이지 시대가 막을 올렸다. 동시에 발발한 내전이 일본 열도를 뒤덮었고, 그 결과 전근대적 봉건 정부가 붕괴하고 메이지 덴노를 필두로 한 개혁적 성향의 신정부가 탄생했다. 바야흐로 근대적 개혁,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근대화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1890년, 어느덧 성인이 된 나쓰메는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렇게 메이지 시대의 전형적인 엘리트로 자리매김한 그는 졸업 후 문부성의 지원을 받아 당대 서양 문명의 메카와도 같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3년간의 영국 유학은 나쓰메 삶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수많은 문학작품을 접하며 견문을 넓히는 한 편, 이역만리 타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했다.
위와 같은 여러 경험들은 나쓰메로 하여금 ‘소설가’라는 꿈을 향해 발을 내딛게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1905년, 당시 강사 신분이던 나쓰메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를 집필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소설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는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며 소설가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나쓰메는 <우미인초(虞美人草)>, <산시로(三四郎)>, <그 후(それから)> 등 일본 문학사의 손꼽히는 대작들을 집필하였다. 그렇게 그는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자리매김했고, 1912년 메이지 덴노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얻게 된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게 된 나쓰메는 여러 질환을 앓으며 고통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험을 겪으며 그는 점차 인간 실존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행인(行人)>, <마음(こゝろ)> 등의 역작이 탄생한다. 개중 특히 <마음(こゝろ)>은 개인의 에고이즘, 죄책감과 같은 세밀한 감정을, 전술한 메이지 시대의 종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엮어 풀어낸 나쓰메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1916년 12월 9일, 나쓰메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4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그는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1984년에는 그의 문학적 업적이 인정되어 1000엔 권 지폐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고 있노라니 여름 무더위가 정점에 달했을 때 메이지 천황이 붕어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해서 천황으로 끝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았던 우리들이 더 살아서 남아 있는 것은 필시 세상의 낙오자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역작, <마음(こゝろ)>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는 메이지 시대의 종말에 대한 나쓰메와 당대 사람들의 생각이 단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면 ‘메이지’와 ‘시대정신’은 이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상술한 바와 같이, 나쓰메는 메이지 시대가 막을 올리기 1년 전에 태어나 메이지 시대가 끝난 지 4년 만에 죽었다. 사실상 메이지 시대와 일치하는 생애를 보냈던 것이다. 때문에 그의 삶, 그리고 정신은 시대사조와 합일될 수밖에 없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사조와 궤를 같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나쓰메가 가졌던 메이지 시대정신의 의의는 메이지 시대가 가진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메이지 시대 개막 전까지 일본은 천 년 넘게 봉건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은 유례없는 속도로 근대화를 이루기 시작하게 된다. 1872년 첫 철도 노선이 개통되었고, 1881년 중앙은행이 설립되었으며, 1889년 헌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의회가 개원했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승리하며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메이지는 분명 이전과는 단절된 시대였다. 지난 역사와는 유리된 새로운 일본의 모든 것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이 가지게 된 새로운 사상은 모두 메이지라는 이름 앞에 하나의 정신으로 포섭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새로운 생각’을 품고 일본 근대 소설의 지평을 열었던 나쓰메의 삶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났던 것이다.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은 ‘한 시대의 지배적 정신’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 명명했다.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있어서 시대정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는 전술한 메이지 시대의 사례에서 뚜렷이 보여진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시대정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대정신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