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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05. 2020

새벽종이 울렸네 아침종이 밝았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들리던 노래, 새마을노래의 일부분이다. 당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박차를 가하던 정부가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부르게 했던 이 노래를 지금 다시 꺼내드는 이유는, 새 정권을 필두로 한 ‘새 아침’이 밝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선실세’ 최순실을 필두로 수많은 유명 정계 인사들이 뉴스 기사에 오르내리며 그동안 파묻혀있던 정계 비리들이 밝혀졌고, 한국 정치를 둘러싼 논란은 점차 시민들의 일상을 담습했다. 누군가는 촛불을, 누군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가 스스로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일단락된 박근혜-최순실게이트와 함께 5월 9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의 새 정권이 들어섰다. 매일 저녁, 새 정권이 발표하는 인사와 정책들은 몇 달 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웬만한 창작물보다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보인다. 소설 같았던 정치로 자주 비유되고 있지만, 결코 진짜 ‘소설’이 되어서는 안되는 정치다. 아직 구속되지 않은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부터 ‘최순실’과 ‘박근혜’라는 인간을 사회의 중추로 만든 이 사회에 대한 기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정치를 뜻하는 politic과 오락을 뜻하는 entertaiment의 결합어 Politainment라는 단어가 있다. 정치와 오락에 큰 공통점이 존재한다면 ‘대중의 인기를 매개로 생존’한다는 것. 정치인과 정치적 사건들이 오락으로 치부되는 폴리테인먼트는 흔히 정치인들의 예능 참여 혹은 정치적 용어를 일상적 언어로 바꿀 때를 가리켜 쓰는 말이다. 하지만, 폴리테인멘트는 컨텐츠에 갇힌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컨텐츠에 갇힌 정치는 아이스케키 통을 맨 이명박을 만들었고 ‘벌꿀’과 같이 일하는 박근혜를 만들었다. 이야기에 갇힌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올바른 정치를 소망하며 시작된 촛불 혁명, 그리고 이를 거친 현 정국을 완결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아직 미처 써지지 못한 페이지는 여전한 기득권의 손에 주어질 것이다. 


문재인의 ‘나중에’는 당장 지금 다가와 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불거졌던 성 소수자 문제, 청소년 참정권 문제 등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 ‘대통령과 국회, 중앙과 지방의 균형을 맞추고 소통과 협치를 통해 안정과 통합을 도모하는 분권과 협치의 개헌 추진’, ‘국가 대개조의 선거제도와 정부형태를 개선하는 정치혁신의 개헌 추진’이라는 적폐 청산 공약도 여전히 추상적이지만 이를 보도할 언론 또한 사실상 바뀐 것이 없다. 경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론을 불과 며칠 만에 접은 경제부만 보더라도 ‘정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1974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이 사임하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당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던 공화당의 만행은 알려지지 않았고 공산주의자 척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던 언론은 기득권을 보호했다. 이를 가리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미국 지배계급의 파워게임’으로 지칭하며 “워터게이트는 미국이 거둔 가장 위대한 공적의 하나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부끄러운 실패작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만의 문제여서도 안되고, 정부만의 문제여서도 안된다. 새마을 노래 속에서처럼, 1970년대에도 누구에게나 새 아침은 있었다. 그러나 정말 살기 좋아진 것은, 내 마을이 아닌 기득권이었을 뿐이다. 현재 한국의 정국이 성공으로 남을지, 실패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향방에 달려있을 것이다. 정부를 감시하고 언론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여전한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다. 힘들겠지만, 촛불을 통해 달궈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오래, 더 넓게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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