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현실 속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

오픈북 - <이스탄불, 이스탄불> (부르한 쇤메즈) / 김나윤

by 와이파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지금, 기원전 667년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여러 국가의 수도가 되어 역사적으로 중요하며 동서양이 만나는 장소였고, 유럽과 중동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가장 큰 도시이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스탄불이 제목인 작품을 읽어봤다.


저자 부르한 쇤메즈는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인권변호사이자 저술가로 일하며 문학,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글을 여러 매체에서 써왔다. 이후 그는 정치적 이유로 체포돼 고문을 당한 후 십 여 년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치료받아야 하는 험난한 삶을 살았다.


2009년 첫 소설 (영어 제목: North)를 발표했으며 2011년에는 두 번째 소설 (영어 제목: Sins and Innocents)를 냈다. 세 번째 작품인 이 책 은 런던 EBRD 문학상을 받았으며 곧 고전의 반열에 들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쇤메즈의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은 자신이 자란 터키 쿠르드인 마을의 구전 설화와 동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터키의 오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독특한 경험이 자신의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다고 말한다. 덕분에 고전적인 구성과 간결한 문장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 34개국 언어로 소개되었으며 활동 중인 전 세계 작가 중에서 가장 유니크한 소설가로 칭송받고 있다.

이스탄불이스탄불.jpg <이스탄불, 이스탄불> 표지

제목과 표지는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이스탄불의 야경을 담고 있으나 펼쳐보면 막상 내용은 이스탄불의 그림자인 지하감옥에 갇힌 네 명의 죄수들의 열흘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둡고 춥고 비좁은 감방에 갇힌 이들의 정체는 대학생 데미르타이, 의사, 이발사 카모, 퀴헤일란 아저씨로 혁명에 연루되어 잡혀왔다. 이들은 굶주렸고 지쳤지만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모진 고문을 또다시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책의 목차는 ‘첫째 날_학생 데미르타이의 이야기 : 철문’, ‘둘째 날_의사의 이야기 : 흰개’, ‘셋째 날_이발사 카모의 이야기 : 벽’, ‘셋째 날_이발사 카모의 이야기 : 배고픈 늑대’, ‘다섯째 날_학생 데미르타이의 이야기 : 밤의 불빛’, ‘여섯째 날_의사의 이야기 : 시간의 새’, ‘일곱째 날_학생 데미르타이이 이야기 : 회중시계’, ‘여덟째 날_의사의 이야기 : 칼처럼 날카로운 마천루들’, ‘아홉째 날_이발사 카모의 이야기 : 모든 시 중의 시’, ‘열째 날_퀴헤일란 아저씨의 이야기 : 노란 웃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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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인 액자식 구성으로 서사가 진행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마치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다. 데카메론이 14세기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를 떠나 시골저택에서 2주 동안 자가격리하며 사랑에 관한 음탕한 이야기, 에로틱한 것부터 비극적인 이야기, 짓궂은 장난, 세속적인 비법 전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열 명의 남녀에 관한 서사라면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이스탄불의 지하세계에 갇힌 네 남자의 서사이다. 작가도 데카메론을 참고했는지 실제로 책 곳곳에서도 등장인물들에 의해 데카메론이 언급된다. 늑대울음같은 비명이 울려퍼지고 썩은 빵으로만 배를 채우고 진통제 조차 못받는 비참한 상황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손에 찻잔이 있다고 상상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정말 현대의 데카메론으로 다가온다.


“여기가 이스탄불인가?”

“예, 아저씨. 스스로 신이라 믿는 남자들의 도시, 가출한 소녀의 꿈이 통곡하는 도시, 흰 고래를 찾아 평생을 떠도는 늙은 어부의 도시, 흰고래를 찾아 평생을 떠도는 늙은 어부의 도시, 평생을 살아도 그리운 도시 이스탄불이에요. 먼 길을 돌아 이스탄불에 도착한 아저씨는 그 무엇을 찾으셨나요?”


흰고래를 찾아 평생 먼바다를 떠돌다 패배한 늙은 어부, 해도 위에 가상의 섬을 그린 후 자신이 사랑한 여인의 이름을 지어주는 해도 담당 선원, 기발한 수완으로 강간을 모면하는 수녀, 벽의 거짓말에 속는 외딴마을 사람들, 사람의 영혼을 가진 늑대, 딸의 딸이자 손녀이자 남편의 여동생인 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노파 등 기묘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말 누구나 흔히 아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정말 이스탄불에서 오랫동안 살아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이 다가와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사이사이를 메우는 네 남자가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잡혀들어가기 전 이스탄불 지상에서의 삶은 하나의 아름답고 슬픈 시가 된다. 또한 작품 내내 작가의 섬세한 표현들과 감옥을 살아서 나갈지 죽어서 나갈지 모르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들이 인상깊었다.


지옥은 우리가 고통 받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고통 받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 만수르 알 할라주


책의 마지막에 만수르 알 할라주의 말이 적혀있다. 만수르 알 할라주는 9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자, 혁명가, 시인, 이슬람의 소수 종파 중 하나인 수피즘 스승으로 이단으로 몰려 고문당하다 처형됐다. 그러고보니 책의 인물들, 만사루 알 할라주, 부르한 쇠메즈 모두 고문의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통받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말이 서사 끝에 언급되어있는 것을 보면 아마 작가는 이스탄불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에만 홀려 명암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듯 하다.


책을 읽다보면 서술자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있고, 390쪽에 달하는 열흘 간의 긴 서사에 수감자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현실과 환상이 섞인 이야기를 계속 하는 탓에 어렵고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저자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명확한 선을 그어두지 않고 전부 독자의 몫으로 돌려놨기 때문에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면 지칠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결말까지 읽다보면 정말 고전 한 권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결말 부분에서는 인물들이 살았는지, 탈출했는지, 죽었는지 명확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열린 결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천일야화’, ‘데카메론’처럼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 덕에 이스탄불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듣는 사람도 즐겁고 매력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현재 떠오르는 작가의 문학을 읽어보고 싶거나 터키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돕고 배려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고찰하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태도도 배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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