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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Oct 14. 2023

백년손님

엄마작가


  ‘백년손님’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한평생을 두고 늘 어려운 손님으로 맞이한다는 뜻으로 ‘사위’를 이르는 말이란다. 어쩜 내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사위는 백년손님이 맞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귀한 손님이다. 


  사위가 온다고 하면 집 청소부터 해야 한다. 평소에 청소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라서 사위 오기 전에 대청소는 안 할 수가 없다. 요리보다 청소를 더 어려워하는 나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 치우는 게 힘들다. 한마디로 정리 정돈이 안 되는 사람이다. 내가 정리 정돈이 안 되는 데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내 취미 중 하나는 책으로 탑 쌓기다. 책탑은 거실, 식탁, 안방 등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세 개의 독서 모임을 하는 바람에 늘 읽어야 할 책이 거실과 식탁에 있다. 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어 도서관에서 자주 빌린다. 돌려주어야 할 도서관 책은 눈에 잘 띄는 곳에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실 탁자와 식탁에는 늘 책과 독서대, 그리고 노트북이 마치 3종 세트처럼 함께 있다.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냥 무심히 막 있는 모습이 난 편하게 느껴진다. 집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유롭게 편하게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 덕분에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먼저였다면 나는 독서와 독서 모임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더욱 글을 쓰는 시간은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책 놀이를 하는 거라서 늘 주변에 잡다한 것이 있다. 


  문제는 백년손님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가 민망하다는 것이다. 사위는 내 생활방식에 익숙한 편이 아니기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신경이 쓰인다. 사위가 온다고 하면 그때부터 바빠진다. 청소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있는 물건 버리지 않는 한 먼지만 치우는 정도이다. 여전히 어수선하다. 아주 조금 정돈된 느낌 정도라고 할까. 


  그래도 마음은 개운하다. 사위 덕분에 십 년 묻은 때를 벗긴 개운함을 즐길 수가 있다. 그런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손님 대접할 음식을 할 수가 있다. 청소하고 음식을 하다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백년손님이 다섯 명이나 된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나와는 다르게 정말 부지런한 분이었다. 걸레가 우리 집 행주보다 더 희고 깨끗했다. 주방에 있는 모든 물건이 광이 날 정도였다. 집에 먼지 하나 없었다. 농사일로 늘 바빴던 엄마가 어떻게 집안일도 잘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나 보다. 바지런하지 못한 내게 백년손님이 한 명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사위가 있는 게 좋다. 한평생을 두고 늘 어려운 손님으로 맞이해야 할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더 좋다. 만약에 사위가 없다면 나이 들수록 정리 정돈을 더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는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어려운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나를 유일하게 긴장시키는 사람이 백년손님이다. 사위 덕분에 며느리 같은 장모가 되어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젊게 사는 중이다. 장모가 되어 느끼는 긴장감은 긍정적 반응이다. 반가운 사람 기다리면서 느끼는 기운이라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인생에 생동감을 주는 백년손님 한 명 정도는 있어야 살맛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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