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녀작가 Oct 14. 2023

국동항의 갑오징어들은 똑똑했고,  눈먼 것은 우리였다.

딸작가


  “이 낚싯대는 휨새가 조금 더 부드럽고…….”

  “이 릴은 안에 줄을 교체하는 것이 더 나으며…….”

  사장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나와 오빠는 그저 멍하니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다. 그렇다. 오빠와 나는 낚시 장비를 파는 곳에 와있다. 낚시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우리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된 것일까.


  이 모든 것은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 두어 달 전 오빠가 흘러가는 말로 낚시를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시간 될 때 한번 가보자고 대답한 뒤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5시쯤 내게 카톡을 하나 보내왔다. ‘지인아, 우리 낚시 가볼까? 여수 국동항에 가면 갑오징어가 엄청나게 잡힌대.’ 마침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빴던 나는 ‘대박이네! 갑오징어가 제철인가보다, 우리도 조만간 한번 가보자’라고 의례적인 대답을 하려 했다. 그런데 서둘러 카톡을 한다는 게 그만 앞뒤 말은 생략하고 ‘대박이네! 한번 가보자’만 보내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당연히 오빠도 나와 같이 이해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뒤 6시 반쯤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지인아 나 조기퇴근!”

  “엥? 갑자기? 왜?”

  “낚시하러 가려고! 낚시 장비 살 가게도 알아봤어! 오늘 8시까지 한데!”


  나는 당황스러웠다. 한번 가보자는 말은 절대 오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오늘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지나치게 들떠 있었다. 차마 거기에 대고 오늘은 못 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오는 오빠의 표정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낚시에 니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첫 낚시가 시작되었다.


  낚시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멘붕에 빠졌다. 오빠와 나는 장난감 낚싯대처럼 낚싯대에 손잡이와 줄과 미끼가 같이 세트로 붙어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이 낚싯대는 어떻고 릴은 어떻고 채비는 어떻고를 설명하기 시작하자 머리가 하얘졌다. 과연 오늘 낚시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니 그전에 낚싯대를 조립할 수는 있을까 심히 걱정되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저 영혼 없이 대답하며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보자 사장님은 눈치를 챈 듯했다. 이 사람들 왕초보구나. 우리가 오늘 처음 낚시를 간다고 말은 하긴 했지만, 사장님은 당연히 유튜브라도 보고 온 줄 안 모양이었다. 우리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한 사장님은 다시 낚싯대가 어떻게 구성된 건지부터 시작해서 채비와 에기가 무엇인지, 갑오징어는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도움으로 겨우 낚시용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로 낚싯대에 릴과 줄 그리고 가짜 미끼인 에기를 거는 법까지 속성으로 과외를 받았다. 과외를 받으니 조금 전까지의 걱정은 사라지고 왠지 오늘 갑오징어를 어마어마하게 잡아 올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렇게 우리는 여수 국동항으로 떠났다.


  국동항은 낚시로 유명한 곳답게 많은 사람이 와있었다. 우리처럼 간단히 낚시를 즐기러 온 사람들도 있고 아예 텐트를 치거나 차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낚시하는 사람들을 따라 괜찮아 보이는 포인트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우리 옆에서 낚시하고 있던 아저씨 한 분이 갑자기 트로트를 크게 틀었다. 아, 자리를 잘못 잡았구나 싶었다. 저 시끄러운 소리에 오징어들이 다 도망하면 어떡하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곳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그냥 하기로 했다. 구매한 낚싯대들을 꺼내서 배운 대로 낚싯대를 조립하고 에기를 끼웠다. 내 손으로 척척 완성하자 이것만으로도 이미 낚시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사장님이 낚싯대를 어떻게 던지라고 설명했는지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줄을 풀고 던지라고 했든가 감고 던지라고 했든가……. 오빠와 나는 낚시의 기본 원리도 몰라 그저 장대 같은 낚싯대만 부여잡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옆자리의 트로트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왠지 모르게 전문가 같은 분위기에 아저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사장님 죄송한데요, 혹시 낚싯대는 어떻게 던져요?”

  낚시하러 와서는 낚싯대는 어떻게 던지냐니. 이 얼마나 황당한 질문인가. 질문을 한 나조차도 머쓱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장님이 된 트로트 아저씨는 이 황당한 질문에도 선뜻 내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총을 잡는다 생각하고 줄을 잡는다,

 두 번째, 왼쪽으로 릴의 고리를 둔다.

 세 번째, 고리를 꺾어 열어준다.

 네 번째,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멀리 줄을 던진다.


  이렇게만 하면 줄이 알아서 풀린다는 것이다. 과연 사장님의 말대로 하니 낚싯대가 ‘휙’ 소리를 내면서 경쾌하게 쭉 뻗어나갔다. 그 뒤로 몇 번 더 내가 헤맬 때마다 사장님은 코치님처럼 다가와 시범을 보여줬다. 또 에기가 돌에 걸려 끙끙댈 때는 해결사처럼 등장해 반동을 이용해서 풀면 된다는 간단한 말과 함께 멋들어지게 손목을 몇 번 흔들더니 걸린 낚싯줄을 풀어주었다. 어쩌다 보니 나와 오빠는 사장님의 학생들이 되었고 사장님은 본인의 낚시도 내팽개쳐 둔 채 우리를 가르치는 꼴이 되었다. 정말 감사했다. 무엇보다 처음에 트로트를 크게 틀어서 시끄럽다고 생각한 것이 죄송했다. 이런 귀인을 몰라뵙고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 시간 남짓 낚시 교실이 진행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제법 낚싯줄을 멀리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미리 맞혀둔 낚시 종료 알람이 울리자 여느 무림 고수가 사라지듯 쿨하게 사라지셨다.


  사장님이 가고도 나와 오빠는 열심히 낚싯줄을 던졌다 건지기를 반복했다. 초심자에게 찾아올 행운을 기대하며. 국동항의 눈먼 갑오징어들이 우리의 미끼에 걸려주길 빌었다. 하지만 국동항의 갑오징어들은 쉽사리 미끼를 물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어가자 점점 다리가 아팠다. 나는 기권을 선언했다. 오빠는 미련이 남았는지 딱 두 번만 더 던지고 집에 가겠노라 선언했다. 그렇다 국동항 갑오징어들은 똑똑했고 이제 막 낚시에 니은을 배운 주제에 월척을 바란 우리가 눈먼 자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백년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