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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Oct 28. 2023

인연

엄마작가

 어떤 인연은 소리를 타고 온다. 어느 하루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작고 여린 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자동 반응하는 엄마처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름한 창고 앞 땡볕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그곳엔 한쪽 다리를 들고 뒤뚱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도와달라는 듯이 나를 보고 한 번 더 “냐아옹” 울었다. 길고양이 레오와 인연은 그렇게 마르고 가냘픈 울음소리로 시작되었다. 우연이 겹치고 겹치다 보면 필연이 된다는 말처럼 레오와의 만남은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난 흰 고양이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점 앞에서 우연히 만난 흰 고양이가 있었다. 사람에게 먼저 와서 몸을 비비던 아이였다. 동물보호소에 보내기 위해서는 고양이 상태를 알 수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는 말에 내가 사진을 찍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의 피부 상태가 엉망이었다. 하루빨리 보호소에 가서 치료받길 바랐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한참 만에 그 책방에 다시 가게 되었다. 사장님을 보니 그 고양이가 생각났다. 보호소에는 갔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 날밤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두운 밤, 길에 흰 물체가 있어 가보니 그 하얀 고양이가 길바닥에 죽어있더라는 것이다. 곁으로는 상처가 없었지만, 교통사고일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본 것이 마지막이라니……. 왠지 내가 그 고양이의 울음을 외면한 것만 같아 미안했다. 


  그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레오의 울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레오를 알게 된 뒤로 우리 부부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할 때마다 찾아가서 사료와 물을 챙겨주었다. 그러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급식소를 만들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가 찾아가는 횟수만큼 레오라는 이름을 불러준 시간만큼 인연의 끈은 더 단단해졌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레오가 살던 곳에 높은 가림막이 세워졌다. 그곳이 개발구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창고가 없어지고 중장비가 들어와서 공사장으로 변해버렸다. 우리 부부는 높은 가림막 앞에서 레오를 불렀고 레오는 가림막 뒤에서 야옹거리며 울었다. 가림막이 생기고 나서 우리 부부는 레오에게 밥을 주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낮은 곳을 찾아서 담을 넘었다. 겨울이 되자 낮은 담도 없어지고 모두 넘을 수 없는 높은 가림막으로 바뀌었다. 레오는 늘 가림막 뒤에서 야옹거리며 우리를 기다렸다. 급한 대로 밑에 구멍을 파서 밥과 물을 넣어주었다. 우리 목소리가 나면 레오는 어떻게라도 우리에게 오려고 가림막 뒤에서 울었다. 눈이 내리면 구멍 파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레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부부는 개구멍을 찾기로 했다. 


  어렵게 찾은 개구멍으로 우리 부부는 공사장 안에 들어갔다. 개구멍이 먼 곳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한참을 걸어야만 레오한테 갈 수 있었다. 레오는 우리 부부를 보고 좋아했다. 밥도 먹지 않고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또 비볐다. 내가 쓰다듬어 주면 좋아서 더 비비며 야옹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내 손길을 받고 나면 그제야 밥을 먹었다. 레오가 밥을 먹으면 우리는 일어났다. 우리 부부는 겨우내 개구멍으로 들락거렸다. 누구를 위해 내 몸을 땅바닥까지 낮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만 기다리는 레오를 위해서 개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바뀌고 나니 레오의 집과 급식소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레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오를 그곳에 둘 수가 없어 우리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 아파트 화단에 온 레오는 낯선 풍경에 놀라서 도망가 버렸다. 아파트와 공사장 사이에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어 레오는 차 불빛과 소리에 당황했다. 레오만큼이나 놀란 우리는 큰소리로 레오를 불렀다. 우리 목소리에 레오가 다시 돌아왔다. 우리 곁에 오지는 않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지켜봤다. 남편이 레오에게 계속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집에 가서 새집을 가지고 왔다. 새집을 본 레오가 내 곁으로 왔다. 우리는 새집 옆에 급식소를 놓고 밥과 물을 주었다. 레오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다행히 레오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듯했다. 아침이면 도로를 건너 공사장으로 들어갔다가 저녁이 되면 우리 아파트로 왔다. 


  새집으로 잘 찾아오는 레오가 기특하면서도 걱정되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살던 곳을 옮겨도 레오처럼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 영역 동물인 레오는 매일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는 위험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레오는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 삶을 살게 되었다. 아침이 되면 나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혹여 레오가 다치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어 레오가 무사히 돌아온 모습을 봐야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찻길을 걸었다. 아마 레오도 같은 마음으로 길을 걸었을 것만 같았다.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은 먼저 알고 있었을까?


  눈이 펑펑 내린 새해 첫날 누군가 레오 집에 눈덩이를 집어넣고 입구를 막아버렸다. 급식소의 밥과 물그릇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또 눈덩이로 집과 급식소를 엉망진창으로 해 놓았다. 고양이를 괴롭힐 목적으로 일부러 한 것이었다. 레오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부르는 소리에 나무 사이 작은 구멍에 있던 레오가 울면서 나왔다. 레오는 불안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검은 그림자만 보여도 잽싸게 구멍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가 한 일이 과연 레오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레오는 내 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주변을 살피고 또 살폈다. 그런 레오를 보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결심하듯 밥을 다 먹은 레오를 안았다. 순한 레오는 품에 안겨 야옹거렸다. 그렇게 레오는 새해 첫날 길냥이에서 집냥이가 되었다. 검은 호랑이의 해에 검은 고양이 레오가 우리 집에 온 것이다. 레오라고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레오가 되어 우리에게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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