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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Oct 28. 2023

카페인

딸작가

 오래 전의 나는 카페인 중독이었다. 흔히 말하는 ‘카페인 수혈’이 당연히 필요했던 사람. 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하루에 2~3잔씩 마시는 날도 꽤 있었다. 대학생 때는 밤을 새워서 공부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시간이 지나서는 밤을 새워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밤을 새우는 것이 나에게 필수 불가결한 일이 되어가던 그 시절, 나는 무엇보다 오랫동안 정신을 맑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그것은 내가 카페인 중독이 되어야 하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되었다. 또 그 무렵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카페인이 심장을 뛰게 만들어 살을 빠지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 ‘1일 1 아메리카노’를 열심히 실천했다. 더욱이 그때는 커피를 마시고도 쉬이 낮잠을 잘 수 있었기에 카페인을 멀리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신나게 카페인 중독자 생활을 즐겼다. 아메리카노부터 초콜릿, 연유, 바닐라 등 온갖 첨가물을 넣은 달달한 커피까지. 혀와 심장은 쏟아지는 달달함과 카페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더는 카페인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한창 수다를 떨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었다. 증상의 이유가 커피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던 나는 그저 말을 많이 해 배가 고픈가 싶어 집에 있는 빵을 집어 먹었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울렁거렸고 배탈이 난 것처럼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급하게 핸드폰을 켜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커피 울렁거림’, ‘카페인 울렁거림’과 관련된 글들이 많이 있었다. 카페인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울렁거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멀쩡하게 카페인을 받아들이던 내 몸이 무슨 변덕이 들어 갑자기 카페인을 거부하는지 이해 못 할 노릇이었다. 몸이 그렇다 해도 카페인 사랑을 쉽게 말리지 못했다. 문제는 점점 밤에 잠들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 예전만큼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될 때, 오히려 다음날 중요한 일정을 위해 숙면이 필요할 때 나는 낮에 먹은 커피 때문에 며칠을 잠들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커피를 마시고도 바로 낮잠을 자던 나였기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귓가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으며 너무 각성이 된 탓일까 머릿속에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부유했다. 가깝게는 내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떠돌아다녔으며 멀리는 일 년 뒤, 더 나아가 어쩌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그런 일들까지 생각났다. 좋은 생각만 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가끔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꼬리를 물어가며 해댔다. ‘내일 할 건 뭐였더라?’에서 시작된 생각이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로 끝나버리곤 했다. 그러면 안 그래도 잠들지 못해 조급하고 짜증 난 마음은 불안함마저 짊어진 채 끙끙거렸다. 그렇게 낮에 먹은 카페인이라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한밤중에 우울감이라는 태풍을 불러일으켜 나를 괴롭혔다. 증상은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종종 나타났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쿵쿵 뛰고 약간 흥분된 느낌으로 마음이 들떴다. 전에는 이것이 나의 정신을 맑게 해 주고 에너지를 넘치게 해 준다고 느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느낌에 내가 사로잡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또 손과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심할 때는 목소리도 떨렸다. 점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나는 카페인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어떤 중독이든 그것을 끊어내기가 어려운 것처럼 ‘카페인 중독’ 역시 쉽게 볼 녀석이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쳐지는 기분이 들었고 신이 나지 않았다.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오기도 했다. 무언가의 중독이 되는 것은 한순간인데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왜 이리도 쉽지 않을까. 그리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의외로 우리 일상 곳곳에 카페인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온갖 커피는 물론 콜라와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음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그래도 요즘에는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 곳이 늘어서 조금은 다행이다. 카페에서 주문할 때 나는 버릇처럼 ‘디카페인 돼요?’를 묻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프게도 번번이 실패와 도전을 반복한다. 매번 주변 사람들에게 ‘나 이제 카페인 끊었어’라고 말하지만 보란 듯이 커피를 마시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카페인 하나 끊어내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 한심해진다. 약하디 약한 정신력 앞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카페인은 나의 목숨에 직결될 정도로 심각하거나 위험한 문제는 아니다. 적당히 하루에 한 잔 정도 마시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나는 오기가 생길까. 어느새 ‘카페인 끊기’는 단순히 카페인을 안 먹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의 정신력과 절제력을 시험하는 것이 되어갔다.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도전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금도 나는 잔뜩 물을 먹은 수건처럼 카페인에 절인 내 일상을 수없이 말렸다 다시 적시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고 별 볼 일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탈카페인’에 성공해서 내 정신력을 자축하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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