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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Nov 20. 2023

삽질 인생

엄마작가

 요즘 푹 빠진 게 있다. 그것만 붙잡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밥을 안 먹어도 잠을 안 자도 좋다. 마치 신세계에 온 것처럼 신기하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다. 지금 아이패드로 그림책 만들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중에 세상에 내놓을 씨앗 같은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마치 농부가 밭을 일궈 씨앗을 뿌리듯 패드에 선과 색으로 그림책이라는 밭을 만들고 있다. 그 작업을 하면 가슴이 뛴다.


  작년에 얼떨결에 그림책을 만들었다. 출판한 것은 아니지만, 가제본 하여 가지게 되었다. 내가 만든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수업하니 반응이 좋았다. 나를 그림책 작가라며 좋아했다. 아이들은 책 속 주인공 강아지와 고양이가 귀엽다면서 책을 사고 싶어 했다. 그 책을 보여주고 나서 너희도 이렇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만든 첫 그림책을 아이들이 좋아할 때마다 책을 출판하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똥손이다. 그림 그리는 솜씨가 없다. 수업 때 나는 그림을 못 그려서 아이들 기 살려주는 강사로 통한다. 아이들이 내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 때가 있다. 나는 솔직하게 너보다 더 못 그려도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는 정말 못 그리는지 칠판에 그려보라고 한다. 나는 사실을 증명하듯 칠판에 그린다. 내가 그리고 나면 아이는 이해했다는 듯이 자기가 그려보겠다고 말한다. 어떤 아이는 내 그림을 보고 자기가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나 대신 그려주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아이들은 내 그림 실력을 보고 나서는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정말 아이들 기 살려주는 재주가 있다며 못난 똥손을 토닥였다. 그러던 내게 변화가 생겼다.


  미술교습소에 다니고 있다. 작년부터 월요일마다 그곳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그림책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만 다닐 생각으로 시작했다. 막상 배우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재미있었다. 과슈로 색을 만들고 입히는 과정이 좋았다. 이것저것 섞어서 색을 만들어 색칠하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새로운 색을 만들기 위해 애쓴 고흐가 생각났다. 돈이 없던 고흐가 물감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은 종이에 점찍듯 여러 색을 칠하다 보면 마치 내가 고흐가 된 것 같았다. 그 재미에 2년째 계속 다니고 있다. 아직은 그만둘 생각이 없다.


  나는 삽질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글쓰기를 배우러 다닐 때도 어떤 사람은 내게 그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냐고 했다. 그 시간에 자격증을 따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충고했다. 막내가 아기 때부터 한 글쓰기 삽질은 청년이 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작년에는 그동안 삽질한 흔적을 모아 수필집을 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독서 모임을 여러 개 하고 있다. 독서 모임을 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내게 돈 안 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말한다. 그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남들 보기에 시간 낭비 같은 삽질이 나를 성장시켰다. 내게 책은 삶이라는 하늘에서 빛나는 북극성이다. 오십이 넘어 사이버 대학에 다닐 때도 어떤 이는 말했다. 그 나이에 그 돈 쓸 가치가 있냐고. 언제 투자한 돈 다 뽑냐고 너무 비싼 삽질 한다며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삽질하는 것에 돈이 들 때도 있고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돈만 생각하면 삽질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삽질하는 사람답게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삽질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삽질을 이야기하는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주인공이 혼자 삽질하면서 자신을 만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와 함께 삽질하면서 삽질 자체를 멋진 경험이라고 예찬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 친구와 삽질하는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주인공들이 다이아몬드를 찾지 못하는 것에 너무나도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그림 배우는 삽질을 이야기하면서 삽질 자체가 얼마나 즐거운지를 말해준다. 즐거워야 계속할 수 있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림책 작가라는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글을 쓰면 종이가 땅이고 연필이 삽이 된다고 얘기해 준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내가 선생이라서 고맙게도 잘 받아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삽질하는 인생을 위해 삽을 만들었다.


  내게 삽질은 바다에 있는 파도 같다. 쉼 없이 철썩거리며 파도가 바다를 말하듯이 내가 하는 삽질이 나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패드로 삽질하는 중이다. 삽질하는 순간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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