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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Nov 20. 2023

10월에는 드레스를 입어요

딸작가

 올해 10월은 유난히도 바빴다. 제철을 맞은 가을 전어처럼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입은 연주자는 10월 내내 무대를 누비며 바쁘게 살았다. 


 10월은 가을의 정점, 곡식과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수확하는 시기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니 사람들의 인심도 넘쳐난다. 그래서일까 10월에는 축제가 참 많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전어 축제’니 ‘숯불구이 축제’니 온갖 제철 음식 축제의 향연이다.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음악이 빠질쏘냐. 다행히 축제를 주최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편식하지는 않는가 보다. 트로트가 대세인 요즘 클래식 성악가를 이리도 반갑게 불러주니 말이다. 축제뿐만 아니라 10월은 음악 연주회도 성수기이다. 농부가 일 년의 농작물을 가을에 수확하듯 음악가들은 한 해의 음악을 10월 달에 주로 수확한다. 혼자서 혹은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관객들에게 수확한 음악들을 선보인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도 객석의 관객들도 모두 배가 부른 계절이 10월, 가을이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연주를 준비할 때 선곡을 가장 먼저 한다. 축제나 연주회의 콘셉트에 맞는 곡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렵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잔잔하고 지루한 뻔한 곡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요즘에는 발라드 못지않은 감미로운 한국 가곡들도 많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팝페라 곡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에 무대를 준비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클래식 성악을 더욱 친근하게 즐길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곡목이 정해졌다면 내가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의상이다. 어쩌면 나는 이 의상 입는 재미에 무대를 계속 찾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나는 연주 드레스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야외 행사나 축제 같은 곳에서 드레스가 아닌 원피스를 입을 때면 왠지 모르게 아쉽기도 하다. 


 사실 처음부터 드레스 입는 것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학생 때는 제자발표회나 졸업연주회 정도나 되어야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그때는 드레스를 한 벌 빌리는 데 상당한 돈이 들었다. 특히 예쁜 드레스일수록 가격은 더욱 높아졌다. 이대 앞 드레스샵들은 음대 여학생들에게 매우 유명한 곳이었는데 나 역시 그곳에 예쁜 드레스에 마음을 빼앗기면서도 비싼 가격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차지 않는 저렴한 드레스를 선택했던 경험이 있다. 또 드레스를 입으면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메이크업도 받아야 했기에 드레스를 입는 것은 늘 부담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해외 직구를 통해서 옛날 대여료의 반값에 드레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은 안 순간부터 나는 마치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사람처럼 하루종일 핸드폰으로 드레스만 찾아보았다. 세상에 이 가격에 이렇게 예쁜 드레스를 살 수 있다니.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그렇게 한 벌 두 벌 드레스를 모으기 시작했다. 반짝이 드레스, 깃털 드레스, 스팽글 드레스 그리고 온갖 색깔의 드레스들이 내 옷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드레스가 가득 걸려있는 옷장을 보면 배가 부르다. 그때 이대에서의 못다 채운 사심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 때도 딱히 드레스 욕심이 없었다. 드레스 입을 일은 내 인생에 아직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매번 ‘이번 연주는 어떤 드레스를 입을까?’ 고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즐거움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도 10월에는 예쁜 연주 드레스를 입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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