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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Dec 21. 2023

나의 겨울은 스키장에 있다.

딸작가

 겨울에 스키장에 가는 것은 당연했던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와 아빠는 스키를 즐겨 탔다. 아마 두 사람만 스키를 좋아했다면 내가 그렇게 자주 스키장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 못지않게 스키를 좋아하는 이모네가 바로 집 근처에 살았다. 6남매 중 막내인 엄마의 바로 위에 언니 ‘수정이 이모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때 당시 나는 ‘수정이 이모’를 ‘수정이 이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엄마가 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나 역시도 ‘수정이 이모’를 ‘예지 이모’라고 불렀다. 나와 두 살 차이인 사촌 여동생 예지의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아무튼 예지 이모와 이모부는 엄마, 아빠와 평소에도 쿵짝이 잘 맞아 함께 운동을 즐겼는데 겨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키장도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예지네 이모네는 스키장 정예 멤버들이 되었다. 


 포항에 살던 우리들에게 강원도의 스키장은 굉장히 멀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부모님은 지도에 의지한 채 길을 물어물어 스키장으로 향했다. 흐릿한 내 기억 속에도 조수석에 탄 엄마가 열심히 지도를 살피던 뒷모습이 있다. 보통은 5~6시간 정도 걸려서 스키장에 도착했다. 차가 막혀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릴 때면 길가에 뻥튀기를 팔던 아줌마가 등장한다. 요즘 말하는 드라이브 스루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뻥튀기 하나에도 뒷자리에 앉은 꼬마 승객들은 행복했다. 운전자인 아빠의 고단함은 모른 채 그저 뻥튀기를 요리조리 베어 물며 모양을 만들기 바빴다. 늦둥이 막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스키장을 자주 갔으므로 당시 아빠의 세피아 뒷자리는 나와 남동생 그리고 할머니의 차지였다. 뒷자리 가득 뻥튀기 가루가 떨어지면 깔끔쟁이 할머니는 아빠가 혼낼세라 재빨리 카시트를 털어 내기 바빴다. 


 자주 갔던 스키장은 ‘무주 덕유산 리조트’와 고성의 ‘알프스 리조트’였다. 특히 알프스 리조트는 이모네와 함께 갈 때면 큰 방을 하나 빌렸었는데, 어린 나에게 그 방은 마치 궁전 같았다. 운동장만큼 넓은 거실에 체스판 같은 장판이 깔려있던 그곳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한 예능프로그램을 보던 중 우연히 알프스 리조트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추억이 가득한 그곳이 폐허가 되어 좀비들의 소굴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연예인들이 열심히 좀비를 피해 달리는 곳곳마다 행복했던 추억이 스쳐 지나가서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내 기억은 아직 빛바래지 않았는데 빛바래다 못해 녹이 슨 슬로프와 곤돌라를 보니 세월의 흐름이 피부에 차갑게 와닿았다. 무주 덕유산 리조트는 다행히도 아직 영업 중이다. 무주 리조트에는 노천탕이 있었는데 스키장 슬로프 옆에서 온천을 하며 스키를 타는 사람들과 설경을 감상하는 것이 예술이었다. 한바탕 신나게 스키를 타고 탕에 뜨끈하게 몸을 녹이면 어린 나에게도 그곳이 천국이었다. 


 최근에 내가 언제 스키장에 갔나 떠올려 봤다. 한참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아마도 대학교 2학년 때, 그해 들어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면서 갔던 게 마지막인 것 같다. 항상 가족들과 가던 스키장을 친구들과 가니 어색했다. 스키를 잘 타는 부모님 덕분에 의지와는 다르게 항상 고급 코스를 타던 나는 친구들을 배려하며 초급 코스에서 스키를 탔다. 조금 타다 보니 지루해져 금방 방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거의 스키장에 가지 못했다. 겨울에 스키장을 가지 않는 것이 어색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무뎌졌다. 남편은 나만큼 스키장을 자주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에 스키장을 가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를 핑계로 스키장을 가자고 해봐야겠다고 혼자 다짐한다.


 SNS를 보니 스키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비로소 겨울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올해도 스키장에 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친구들의 사진으로 대리만족 하려 한다. 새하얀 슬로프를 배경으로 알록달록 멋진 스키복을 입고 환하게 웃음 짓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스키장에 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두고 온 어린 시절의 겨울이 그곳에 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새하얗게 반짝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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