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녀작가 Jan 28. 2024

연결된다는 것은

엄마작가

  갑자기 왼쪽 눈이 따끔거려 거울을 본다. 속눈썹 하나가 빠져 눈동자에 붙어있다. 눈썹을 빼내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손을 대면 댈수록 눈만 벌게진다. 어느 순간 눈썹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이번엔 오른쪽 눈이 따끔거린다. 다시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동자에 속눈썹이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한 마음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곤 눈에 렌즈를 넣을 때처럼 부릅뜬 채 거울 속의 눈동자만 보면서 손가락으로 눈썹을 살짝 누른다. 이번에 손가락에 눈썹이 묻어난다. 속이 다 시원하다. 이젠 눈이 아프지 않다. 두 눈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몸소 경험한 희한한 일이다. 연결이라는 말을 떠올리자 입대한 막내아들이 생각났다. 


  새해가 되자마자 막내아들은 얼떨결에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따듯한 계절은 지원자가 많아 지원하지 못한 채 나이 순서대로 겨울에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2월에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가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던 아들, 마른 아들이 걱정되어 군대 가기 전에 살찌우겠다고 한약을 지어놓은 나는 황당했다. 지금은 두 봉지 먹고 남은 한약은 냉동실로 들어가고 택배로 온 단백질 보충제와 구운 계란 육십 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아들은 아들 대로 급하게 알바를 그만두고 몸만들기를 했다. 며칠 동안 물 대신 단백질 보충제를 물처럼 마시더니 속이 좋지 않다며 더는 먹지 않았다. 밥이라도 부지런히 먹이려고 했는데 아들은 시간이 아깝다며 친구들과 놀고 늦게 들어와서 밥을 차려줄 수가 없었다. 


  그런 아들이 하루는 내 생일날 깜짝 선물을 할 것이라고 선전 포고하듯 큰소리를 쳤다. 보통 깜짝 선물은 몰래 준비해서 그날 짠하고 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들이 큰소리를 치면서 미리 말하는 걸 봐서 정말 깜짝 놀랄 선물인 듯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정말 궁금하다고 말하니 ‘엄마 정말 깜짝 놀랄걸,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선물이야.’ 하면서 눈은 반짝거리고 입꼬리는 위로 올리며 밝게 웃는 표정을 보니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여행경비로 모아놓은 이백만 원이 생각났다. 내 생각이 맞다는 듯이 아들은 입대하기 전에 아빠에게도 똑같이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과는 다르게 아들은 내 생일날 깜짝 선물을 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선물 이야기하니 마지막 아르바이트비를 받아 이번 주말에 준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금액을 주려고 저러나 싶었다. 여행을 못 가게 된 아들은 갑자기 겨울에 얇은 가죽 잠바를 사더니 정장 차림으로 외출한다면서 정장에 코트, 구두, 검정 양말까지 야무지게 쇼핑하고 다녔다. 입대하기 전에 사고 싶은 옷을 다 사려는지 매일 새 옷을 입고 외출했다. 옆에서 봐도 여행경비를 다 써버렸을 것 같았다. 저렇게 산 옷 제대하고 나오면 입을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아들한테 농담으로 ‘너 군대 가고 나면 가죽 잠바는 엄마가 입을게’ 하니 아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옷으로 멋 내는 아들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학교 졸업하고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다닌다고 그동안 아들은 편한 옷만 입고 다녔다. 공부보다는 돈을 벌고 싶다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너무 일찍 돈 버는 게 걱정되었지만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이니 하고 싶은 것 하고 공부해도 되니 내버려 두었다. 형은 공부하다 군대 갔지만 막내는 알바만 하다 군대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아들도 그런 마음인지 마치 자신에게 보상하듯 새 옷으로 꾸미는 것 같았다, 저렇게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아들이 한편으론 건강해 보였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 생활을 한다면 제대할 때까지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주말이 되었다. 토요일 아침 수업하러 가려고 차 문을 열었다. 핸들 위에 흰 종이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순간 깜짝 놀랐다. 밤에 누군가 내 차 문을 몰래 열었다니. 급하게 운전석에 앉고 종이를 자세히 보니 편지봉투였다. 꾸깃꾸깃한 봉투를 여러 개의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이었다. 안을 보곤 더 깜짝 놀랐다. 만 원짜리 지폐가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수업을 다 마치고 세어보니 오십만 원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마음과 군대 잘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엄마 사랑해요.’ 했다. 아들 말처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선물에 깜짝 놀랐다. 내가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안심시키려고 애쓴 마음에 울컥했다. 아들과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로에게 연결된 것은 바람에 흔들려도 버틸 수가 있다. 연결고리가 마치 나무의 버팀목처럼 서로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나를 사랑하는 아들 마음이 서로에게 연결고리이자 버팀목이 되어, 군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잘 버틸 수 있도록 해줄 거라고 믿는다. 눈썹이 빠진 날, 아들이 훈련소에 가고 집에 없는 날, 우리의 연결고리는 더 단단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23년을 보내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