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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Jul 24. 2024

변증법적 흑백논리

엄마작가

 우리 집엔 흑과 백이 있다. 흑색을 가진 레오와 백색인 쿠키가 함께 산다. 레오와 쿠키는 흑백의 차이만큼 서로 다른 점이 많다. 까만 레오는 밤이 되면 활발해지는 야행성 고양이다. 고양이답게 어두운 밤에도 소리 없이 잘 다닌다. 반면 하얀 쿠키는 밝은 낮에 산책하길 좋아하는 강아지이다. 강아지인 쿠키는 움직일 때마다 도장 찍듯 작고 경쾌한 발소리를 낸다. 


 레오는 높은 곳에도 잘 올라간다. 중력을 거스르듯 김치냉장고나 건조기 위로 가볍게 점프하는 모습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누가 위에서 잡아 올리듯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런 레오를 위해 캣타워를 설치했다. 세탁건조기보다 더 높은 캣타워에서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무 위에 있는 표범을 보는 느낌이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아프리카 초원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무 위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던 표범의 모습과 레오의 모습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쿠키는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 소파 위에라도 한 번 올라가려면 뛰어오를 준비 자세를 표가 나게 하고도 몇 초를 더 뜸을 들이다가 결국 주저앉아버린다. 그런 쿠키를 위해 소파와 침대에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두었다. 내가 소파나 침대에 있을 때 곁에 오고 싶어 하는 쿠키를 위해 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계단마저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위는 레오 아래는 쿠키 자리가 되었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레오는 소파에 올라와서 내 옆에 엎드리고 올라오지 못한 쿠키는 내 발 옆에 엎드린다.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는 레오는 의자에 쿠키는 의자 밑에서 자고 있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쉬는 레오와 쿠키의 모습에서 우리 부부가 보였다.



 남편과 나도 다른 점이 많다. 특히 나는 겁이 많다. 놀이공원에 가면 탈 수 있는 게 회전목마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놀이공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정해진다.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고 나는 짐을 챙기고 사진을 찍는다. 그런 나를 보고 아이들이 같이 타자고 조를 때가 있다.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탔던 바이킹과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열차가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깨문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놀이기구가 멈출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버티었던 기억. 나는 놀이기구뿐만 아니라 공포 영화도 못 보는 겁쟁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남편은 겁이 없다. 별 보는 게 취미인 남편은 레오처럼 밤에도 혼자 잘 다닌다. 별이 빛나는 밤이면 남편은 혼자 장비를 챙겨 가로등이 없는 어두움 속으로 간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인공 불빛은 물론 보름달도 뜨면 안 된다. 말 그대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별을 본다. 가끔은 혼자 가는 게 걱정되어 따라갈 때가 있다. 

  

 겁이 많은 나는 별 보는 것을 즐길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 내 청력은 매우 예민해진다.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때문에, 남편이 별을 보고 감탄을 해도 나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을 최대한 동그랗게 뜨곤 ‘응응’할 뿐이다. 겁이 많으면서도 따라가는 것은 혼자 보내고 집에서 걱정하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같이 가서 힘들다 싶으면 나는 차 안에서 쉬면 된다. 나는 차에서 음악을 듣고 남편은 밖에서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본다. 레오와 쿠키처럼 우리 부부도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재밌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레오와 쿠키의 온도 차이를 보게 된다. 날이 더워지면 아이들이 점점 내 눈에서 사라진다. 내가 식탁에 있으면 의자 위아래로 있던 레오와 쿠키는 여름만 되면 곁에 오지 않는다. 따듯한 곳을 좋아하는 레오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시원한 곳을 좋아하는 쿠키는 대리석이 있는 현관 앞에서 잠을 잔다. 

  

 털이 많은 강아지 쿠키는 더위에 약하다. 에어컨을 켜줘도 신발장 옆에 있는 대리석에 누워있다. 쿠키가 현관 대리석에 누워있으면 더위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하루 종일 현관 대리석에서 사는 쿠키를 보면 집 지키는 충견처럼 보인다.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택배가 오면 바로 알려준다. 짖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면 택배 상자가 문 앞에 있다. 여름만 되면 시원한 장소를 찾는 쿠키처럼 남편도 더위에 아주 약하다. 열이 많은 남편은 한겨울에도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지낸다. 그러니 여름에는 어떻겠는가.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가 없다. 

  

 털 많고 열 많은 식구와는 다르게 레오와 나는 추위에 약하다. 에어컨을 켜면 레오는 찬 바람을 피해 안방 침대로 도망간다. 나도 레오처럼 도망가고 싶지만, 식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에 어쩔 수 없이 긴 옷을 입고 마스크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쐰다. 남편이 없을 땐 에어컨을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긴 옷을 입고는 온도를 내렸다가 올리기를 반복한다. 여름에도 감기에 잘 걸리는 저질 체력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할 때도 우리 부부의 온도 차이는 나타난다. 에어컨을 켜고 조금만 지나면 나는 춥다. 추워하는 나를 위해 에어컨을 약하게 하면 남편이 덥다, 차를 타면 운전자가 편해야 하기에 에어컨을 켜고 나는 담요를 덮는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이 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타인을 통해 내 모습이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가끔은 쿠키한테서 레오가 보인다. 고양이의 특징인 골골송을 강아지인 쿠키가 한다. 내가 쓰다듬어주면 레오는 기분이 좋다며 골골거리면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나도 기분이 좋아 웃게 된다. 그 모습을 본 쿠키가 어느 날부터 쓰다듬어주면 골골거리면서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웃겨서 내가 웃었더니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강아지인 쿠키도 콧노래를 부른다. 

  

 반대로 레오한테도 쿠키의 모습이 있다. 레오는 강아지처럼 운다. 야옹거리지 않고 ‘멍멍’ 짖듯이 ‘양양’이라고 소리를 낸다. 쿠키 짖는 소리를 아주 작게 줄이면 레오가 내는 소리가 된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두 아이는 서로의 언어를 배워서 내게 표현하고 있다. 레오와 쿠키처럼 우리 부부한테도 그런 모습이 있다.

 

 충동구매를 즐기던 나는 계획적 구매만 하는 남편을 만나 달라진 게 있다. 물건도 첫눈에 반하면 사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사기 전에 합리적인가를 따지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또한 대출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빚내는 것을 겁내지 않던 내가 대출이자 아까운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건 사기 전에 정보수집과 가성비를 따지는 남편 덕분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물건을 사면서 속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필요한가만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속지 않고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나는 사고 후회하고 남편은 못 사서 아쉬워할 때가 많았다. 삼십 년을 같이 살다 보니 이제는 서로를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흑백논리라는 말이 있다. 두 개의 선택지로 나누어 보는 걸 말한다. 신혼 때는 흑백으로 나뉘었던 우리 부부가 어느 순간 흑 안에 흑백이 있고 백 안에도 흑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쿠키 모습에 남편과 내가 있고 레오한테도 남편과 내 모습이 있듯이. 쿠키와 레오의 겉모습에도 흑백은 있다. 하얀 쿠키에겐 까만 눈동자와 코가 있고 까만 레오에게는 목과 배에 하얀 털이 있다. 마치 흑백의 조화를 보는 것 같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세히 보면 새로운 게 보인다. 새로운 걸 보게 되는 순간 흑백논리의 틀은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이 달라지면 전과는 다른 다양한 흑백의 조화를 볼 수 있다. 흑백이 함께 있어 특별한 쿠키와 레오처럼. 아니 우리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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