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애착

엄마작가

by 모녀작가

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에 눈을 떴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심해졌다. 식은땀이 나면서 눈앞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변기에 앉아도 나오는 것은 없고 어떻게 할 수 없는 통증만 배 속을 후벼 팠다.

체한 것 같다. 저녁에 급하게 먹은 라면이 탈이 난 듯하다. 팔을 두드리고 체할 때 지압하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열심히 눌렸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픈 통증 때문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뭔가를 잡듯 화장실 문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마치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듯 손잡이를 잡고 끙끙거렸다.

나는 안방 화장실에 있다. 남편은 건넛방에서 자고 있다. 불러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혼자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지인의 남편이 생각났다. 고통스러웠던 흔적이 문과 손톱에 남아있었다는 얘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찔했다. 무서움을 떨치듯 나는 양쪽 팔을 주먹으로 허우적대듯 두드렸다.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는 소화제를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움직일 수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통증은 그대로이고 눈앞은 점점 하얘지고 의식은 희미해져 갔다.

모든 것을 놓고 싶은 그 순간 손주 얼굴이 떠올랐다. 태어난 지 두 달이 된 손주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죽을 것 같은 그 순간에 남편도 자식도 아닌 누워서 꼬물거리는 손주가 떠오르다니…. 이틀 전에 내 생일날 딸아이가 사진을 보내주었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은우가 선물이에요.’라는 문장을 쓴 큰 리본을 이불처럼 덮고 있던 손주의 모습이 불현듯 뜬금없이 강하게 보였다.

손주를 생각하니 살고 싶어졌다. 막 피어난 새싹 같은 손주를 계속 보려면 어떻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생각이 나를 화장실에서 나오게 했다. 땀을 흘리면서 입술을 깨물고는 엉금엉금 기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떨리는 손으로 소화제를 연거푸 3병을 마셨다. 그러곤 다시 화장실에 가서 다 쏟아냈다.

통증이 사라졌다. 지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여든다섯에 후두암으로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그때 엄마는 ‘내가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려야 하느냐’며 억울해하셨다. 울면서 죽기 싫다고 하시던 엄마가 떠올랐다. 팔십 중반이라는 나이에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내 눈엔 생에 너무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살 만큼 산 나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에야 알았다.

그때 엄마는 꼬물거리던 증손주가 더 보고 싶었다는 것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4대 독자 손주를 본 엄마는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귀한 집에 시집와서 아들보다 딸을 더 많이 낳은 엄마에겐 4대 독자 손자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자식보다 더 사랑했던 손자가 아들을 낳았으니, 엄마는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손주가 생겨보니 알게 되었다. 한 가정에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이 봄처럼 찾아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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