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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 가는 길

이야기, 일곱

by 방자

우리는 오늘 오랑으로 간다. 오랑은 알제 서쪽에 있는 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부산 정도 되는 것 같다(아직까지는 그 외 정보 없음). 이틀 전 완님과의 만남에서 티파자와 오랑에 가보고 싶다고 (사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냥 들어본 명칭이라는 이유로) 했더니 본인이 요즘 오랑으로 일을 다니고 계신다면서 오는 일요일 오후에 넘어갈 건데 원하면 같이 가도 좋고, 숙소도 제공해줄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횡제인가? 우리는 알제에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알제 바닷가 근처에 다른 Airbnb를 예약해두었지만 취소 수수료를 감수하고 잽싸게 그 기회를 잡아 오랑 가는 프리티켓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오늘, 오랑에 간다! (괜스레 설렘)


아침, 짐을 싸 두고 식사를 위해 시내로 나섰다. 이 곳에 온 지 나흘 째이지만 나는 아직도 샛길들이 낯설고 혼란스럽다. 아주 좁은 골목 계단을 내려가고, 중간 골목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 시내가 나온다. 알제는 바다 근처지만 언덕배기에 층층이 세워진 도시에 가깝다. 앞집 삼, 사층의 베란다가 내 시선 밑으로 보이는 게 흔하달까? 사람들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고 '니하오'라며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비는 여느 날과 달리 '니하오'고 함께 웃으며 인사한다. 우리는 알제에 도착한 이후 아직까지 어떤 중국인, 아니 동양인(알제 근교에서 만난 완님과 지인분들을 빼고)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니하오'를 우리를 중국인으로 착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어렸을 적 외국인을 보면 유럽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상관없이 다 일단 '헬로'를 던지고 봤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는 아랍어 인사말도 모르고, 봉주르도 어색하니, '헬로'든 '니하오'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저 모르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주니 감사한 일이고 우리도 함께 인사를 하면 좋은 게지. 그런데 정말 '니하오' 소릴 많이 듣는다. 차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3층 건물 베란다에서도 종종 창밖으로 우리에게 '니하오'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볼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 언덕배기에서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빵집을 찾았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흔치 않은 그 퀄리티에 마음이 설레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먹음직스러운 빵들, 상냥한 직원들(이것 또한 알제리의 흔치 않은 것 중 하나라고 한다), 모던한 디자인의 가게와 테이블, 에어컨까지. 훌륭하다. 우리는 작은 롤빵 하나와 곡물 바게트, 두 잔의 에스프레소(아이스커피를 먹고 싶었지만 알제에는 아이스커피, 특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먹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를 시켰다. 비는 와이파이만 된다면 이곳에서 일을 하기 좋겠다며 만족감을 보였고(와이파이 되는 카페는 아직 본 적 없음), 나는 빵 맛과 상냥한 직원들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 집을 우리가 찾은 첫 번째 알제리 맛집으로 명명해야겠다. 이름은 <La Casa D'Alger>. Boulevard Colonel Krim Belkacem 거리에 있다. 참고로 커피는 150 디나르(1달러), 바게트 60, 케이크 100~으로 나에게는 가격 대비 감탄이 나오는 가격이지만 현지 물가 기준으로는 2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알제리는 국가에서 빵값과 커피값을 보조해주고 있다고 한다(완님께 들음). 일반적인 바게트는 가격 상한선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바게트 빵은 어느 식당엘 가나 나오고 길가에서 바게트 빵을 한아름씩 안고 다니는 사람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바게트들은 맛이 좋다고 말하기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오후 3시 반, 완님을 만나 오랑 가는 차에 올랐다. 시끌시끌한 시내를 지나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 오르니 쭉 뻗은 길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알제에서 오랑까지는 400Km 정도, 차로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차로 이동하면서 모래언덕 같은 느낌의 언덕에 마르게 자란 풀들이 끊임없이 펼쳐진 풍경과 시야 밑으로 산맥과 마을의 풍경, 너른 바다 풍경 등을 볼 수 있었다. 늘 이런 건 아니라고 했는데, 저녁이 되자 구름이 오묘해서 하늘의 빛과 구름이 만드는 색의 향연이 장관이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노래를 하나씩 틀기 시작했다. 완님이 한때 좋아했다는 이승환의 <붉은 낙타>로 시작한 노래 듣기는 내가 듣고 싶던 GOD의 <길>로 이어지며 바람을 타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는데, 어스름 내린 알제의 해와 구름이 만드는 장대한 풍경과 차 안에 울리는 음악과 그 아늑함이 오래간만에 진짜 로드무비에나 나올듯한 드라이브를 즐긴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우리는 은빛 사막으로 갈 수 있을까? 붉은 낙타를 만날 수 있으려나?


퍼렇게 온통 다 멍이 든 억지스러운 온갖 기대와 뒤틀려진 희망들을 품고 살던 내 20대
그때엔 혼돈과 질주로 가득한 터질듯한 내 머릿속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내 곁엔 아무도
난 차라리 은빛 사막에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 홀로 아무런 갈증도 없이
시원한 그늘 화려한 성찬 신기루를 쫓으며...
(중략)
난 가고 싶어 은빛 사막으로. 난 가고 싶어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

- 이승환의 붉은 낙타 중


<표지 사진 : 어스름 내린 오랑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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