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여덟
오랑은 입생 로랑 브랜드의 창시자인 이브 생 로랑의 고향이기도 하다(패션 브랜드에 무지한 나는 입생 로랑 처음 들음). 카뮈는 티파자를 좋아했지만, 이브 생 로랑은 오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재작년에 개봉한 동일명의 영화 첫 장면은 오랑에서 시작한다니 패션 지식도 넓힐 겸 이번 기회에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가 여행 중 자주 하는 것 하나가 머무는 나라 혹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보기다. 뉴질랜드에서 <반지의 제왕>과 <호빗>으로 시작한 이 활동은 러시아 <닥터 지바고>, 에스토니아 <노래 혁명>, 독일 <베를린 천사의 시> 등 쭉 이어지고 있다. 도시를 더욱 즐기는 하나의 방법!). 뭔가 알제리와 프랑스의 오묘한 관계와 그 사이에서 유명인사들의 자신의 지위, 입장 선택에 대해 좀 더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님은 새벽까지 번역 일을 하시곤 잉여 여행자 둘을 위해 아침식사까지 차려주고 출근을 하셨다. 숙소가 참 마음에 든다. 오래된 건물인데, 우리가 머무는 플랫만 근래에 모던하게 인테리어를 바꿨다고 한다. 가장 멋진 건, 너른 옥상 테라스를 독점할 수 있다는 것과 작고 오래된 엘리베이터인데, 테라스에서는 마을과 멀리 오랑의 제 1 관광지(어쩌면 거의 유일한)인 산타크루즈가 한눈에 보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건물은 1890년대에 지어진(즉, 프랑스 식민시대에 프랑스풍으로 지어진 건물임) 것으로 철문과 나무문의 2중 문과 잠금장치를 갖춘 올라가는 것만 가능한 이 곳의(내게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처음 타보는) 엘리베이터도 그 시절 만들어진 OTIS(엘리베이터를 처음 만든 사람과 그가 창설한 회사)의 초기 모델인 듯했다.
오랑 시내를 돌아다니다 마켓을 찾았다. 조금씩 알제리에서의 '외식'에 대해 부적정으로 생각하고 있는터라(물가는 저렴하지만 외식 먹거리가 별로 없고, 괜찮은 먹거리는 현지 물가 기준에서 조금이 아니라 많이 비쌈) 차라리 저렴한 식재료를 사다 요리를 해 먹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던 참이다. 슈퍼마켓은 썩 컸음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것이 많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가방을 맡기고 가는 시스템인데(물론 우리나라에도 무인 락커가 있지만) 사람들이 하나씩 맡고 번호표를 주고 밖에서 계산을 마친 후 찾을 수 있는 흔하다면 흔하지만 묘하게 이곳에서 안전 이슈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드는 구조였다. 그 후 찾게 된 시장에서는 온갖 야채와 과일을 팔고 있었다. 좋은 것은 여행지에서 말 못 하는 외국인이 당할 수 있는 덤터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사실 '살~?'이라고('얼마?'라고 묻는 아랍어)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저 부끄러운 듯 손에 동전을 올려 보여주면 알아서 가져가고 돌려준다. 이런 신뢰가 외지인에게도 통하는 곳이 많지 않음을 아는 장기 여행자에게는 뭐랄까 감동적인 경험들이었다고 할까? 깎아 달라고 하지 않아도 잔돈이 부족하면 알아서 깎아주기도 하고, 방끗 웃으며 인사하기도 하고, 양파 한 개쯤은 그냥 가져가라는 그 인심이 어렸을 적 시골에서의 삶을 추억하게 하는 알제리의 매력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 우리는 완님과 함께 집주인의 티타임에 초대되었다. 집주인은 모로코계 핸섬하고 유쾌한 중년 신사분으로(아마 유럽 어디선가 이분을 처음 만나 내게 '봉쥬르'라고 했다면 나는 이 분이 북아프리카 사람일 거라고 상상도 못 하였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외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랍 혹은 유럽계에 가깝다), 할머님이 만드신 맛있는 쿠키와 케이크, 각종 곡물이 들어간 모로코식 에너지 디저트, 생잎을 넣은 민트차를 대접해주셨다. 물론 말을 통하지 않았지만 완님의 통역으로 집과 개인 집안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모로코에서 나고 자라다 알제리에 오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국경을 쉽게 넘어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알제리와 모로코가 서사하라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통행이 어려워졌고(지금은 아예 국경이 닫혀 육로로는 통행이 불가한 상태라고 함), 모로코에 있던 대부분의 부동산도 모로코 정부에 압수 조치당했다고 했다(하지만 이런 건물을 소유하고 계신 걸 보면 알제리에서도 잘 살고 계시는 듯하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나는 그저 지금이 알제리의 가장 근대화된 시점일 거라고 마냥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한 때 이슬람 민주화 바람이 불었던 시절 지금보다 음주문화나 의복문화가 훨씬 자유로웠다고 한다.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히잡을 쓰고 다니고 뭔가 억눌려 있다고 한다(왠지 모르게 한국 생각이 남). 이야기의 끝, 집주인 아저씨는 우리에게 근처에 괜찮은 피아노 바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여기, 피아노 바라니? 뭔가 상상하기 어렵다. 동시에 나는 스페인식 멋들어진 피아노 바를 상상하기도, 피아노 바에서 술도 팔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럼 오늘 밤에는 피아노 바에 가볼까요?
알제리의 피아노 바라니. 왠지 설레고 기대되는 걸.
<표지 사진 : 티타임>
다음 이야기 : 알제리의 밤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