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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31. 2018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프로젝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그의 삶 (1817 - 1862)

그는 내가 꿈꾸는 소박한 철학자로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정부의 부도덕함과 사람들의 비겁함이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해서는 너무 냉정한 게 아닌가 싶게 비판적이었으나 자신의 터전인 콩코드와 월든 호수, 자연의 선물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버드를 졸업 한 후 짧게 교직에 있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연필 공장에서 근무를 하거나, 평생의 친구였던 사상가 에머슨의 저택을 관리하거나, 지인의 가정교사 혹은 측량 등 다양한 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월든은 그가 28세부터 30세까지 2년 2개월의 시간 동안 고향 콩코드의 월든 호수 근처에 직접 오두막 집을 짓고 살며 얻은 경험과 통찰을 정리한 책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의 글이 잘난 척하는게 아닌가 싶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소비 중심적 삶에 젖어 일상에서 온갖 비겁하고 타협적인 선택들을 감내하고 그 고통을 다시 소비로 보상받는 현대 우리들이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듣고, 깊이 생각해 볼 만한 교훈이 들어있다.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는 160여 년 전 월든을 쓰며 그 글이 특별히 가난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더 많은 소유와 지위를 위해 쉬지 않고 달리면서도 사회적 시선에 시달려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운 청춘에게 그의 글과 삶에 대한 이해를 추천하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글 <월든>, <시민의 불복종> 중

인상 깊었던 글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그들의 열 손가락은 그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다. 사실, 노동하는 사람은 참다운 인간 본연의 자세를 매일매일 유지할 여유가 없다. 그는 정정당당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여유가 없는데, 만약 그렇게 하려 들다가는 그의 노동력은 시장가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단순하게 기계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될 시간이 없다. 인간이 향상하려면 자신의 무식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수시로 사용해야만 하는 그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식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평가하기 전에 그에게 가끔 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우리의 강장제로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어야 하겠다.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면들은 마치 과일 껍질에 붙어있는 과분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만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부드럽게 다루지는 않는다....... 중략...... 여러분은 거짓말하고, 아첨하고, 선거 때는 한 표를 던져주고, 스스로를 공손의 표본으로 만들며, 공기처럼 넓은 너그러움의 분위기 속에 자신을 확산시키는 등 어떻게 해서든지 이웃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구두와 모자, 외투와 마차를 만드는 일감을 맡거나 그들의 식품과 잡화를 수입하는 일을 맡으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여러분은 병들 때를 대비하여 돈을 벌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 돈을 보관할 장소가 낡은 장롱이든, 벽 뒤에 숨겨둔 양말 짝이든 또는 보다 안전한 벽돌로 지은 은행이든 관계없으며, 금액도 크든 작든 관계없다. 그러나 돈을 벌려고 너무나 무리를 한 결과 끝내 여러분은 병이 들고 마는 것입니다. <월든 - P.20 ~ 21>

인상 깊었던 글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이른바 생활 편의품들 중의 많은 것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향상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사치품과 편의품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했으나 내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지금 만큼만이라도 아는 것이 대단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보다 후대에 살았던 인류의 개혁자들은 은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인간 생활의 공정하고도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농업, 상업, 문학, 예술을 막론하고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 오늘날 철학 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 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단 말인가?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운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도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 나마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위대한 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성공은 군자답거나 남자다운 성공이 아니고 대개는 아첨하는 신하로서의 성공이다. 그들은 자지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기 때문에 보다 고기한 인간류의 원조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월든 - P. 32~33>

인상 깊었던 글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시민의 불복종 - P.13>



그가 글로 남긴 삶의 통찰과 지혜들은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 제한된 삶을 경험한 한 사람의 것일 뿐이다. 하지만 항시 깨어있으려고 노력한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생각하지만 사실 핑계일 뿐임을 모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 가벼워질 확률보다는 무거워질 확률이 높고, 내 몸 또한 그러할진대 그것이 무엇이든 쌓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에 대한 것이라면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최적기는 "지금"이지 "미래"일리 만무하다. 그저 삶의 많은 것들이 군더더기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손에 쥔, 그리고 쥘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은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본 글은 친구들과 운영하는 팟캐스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서 토론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은 다양한 책과 영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관련 대화를 나누는 팟캐스트로 아이튠즈 팟캐스트, 팟빵, 파티에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 검색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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