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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Sep 01. 2018

소공녀

프로젝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소공녀의 배경

2014년 2,500원 하던 에쎄 담배는 2015년이 되자 4,500원이 되었다. 보증금 없는,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월세방의 주인은 집주인이 세를 올렸다면 월세 50,000을 더 올려달라고 한다. 가사도우미 일을 해서 버는 일급은 45,000원. 밥 먹고, 위스키 한잔 사 마시고, 담배 사고, 약값과 월세, 세금 낼 돈을 떼어두면 남는 돈 없던 하루살이 청춘의 삶이 일급은 오르지 않은 채 물가만 오르자 위태로워졌다.
밥 10,000원 + 세금 5,000원 + 약값 10,000원 + 집 10,000원 + 위스키 12,000원 + 담배 4,000원 = - 6,000원

마이너스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 그녀는 과감하게 집을 빼고 하루 집세 10,000원을 줄이기로 결정한다.

 주인님! 저 집 뺄게요.

Q, 당신이라면 어떤 비용을 줄일 것인가요?


주인공, 미소

주인공 미소의 삶은 물질주의적 가치로 보면 망했다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 측면으로 보자면 그녀는 이 시대에 흔치 않은 어느 순간에도 비겁하지 않고 가진 게 없어도 초라하지 않은 데다 소신과 취향을 갖춘, 사랑스럽고 긍정적이기까지 한 진정한 청춘이라 할만하다. 그녀는 집도 없고, 그 흔한 저축통장 하나 없는 듯하다. 적당히 벌어 적당히 살겠다는 생각인지 남들 시선은 아랑곳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집안일>을 타인을 위해 서비스로 제공하는 일을 하며 산다. 젊은 가사도우미. 그것이 그녀의 사회적 지위이다. 그녀의 삶에 가장 큰 안식은 바에서 즐기는 위스키 한잔, 담배, 그리고 남자 친구 한솔이다.

나는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만 있으면 돼!

Q, 당신의 삶의 안식 혹은 위안은 무엇인가요?


미소의 대학시절 밴드 친구들

미소는 친구들을 방문하며 재워줄 것을 청한다. 그렇게 드러나는 친구들의 삶은 다들 조금씩 삐걱대고 있으며, 그들이 집으로 대변될 안정적 삶을 얻기 위해 내려놓은 것들을 부각한다. 그들이 포기한 무언가로 인해 여전하다고 표현되는 미소는 각자에게 철들지 않은, 변하지 않은, 그래서 한심하거나 유니크한 존재로 다가온다.


베이스 치던 문영 - 그녀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녀는 점심시간을 틈타 포도당을 직접 놓는다. 야근 많은 나날엔 이만한 게 없다. 그녀는 조직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하다. 더 높은 곳을 꿈꾸며...  

키보드 치던 현정 - 그녀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재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은 살림을 맡아하느라 삶이 고단한다. 결혼하니 평생 그리운 줄 몰랐던 엄마 생각이 난다.

드럼 치던 막내 대용 - 아파트 노래를 불러 20년 할부 상환으로 샀건만 결혼한 지 8개월도 안돼 아내는 날아가버렸다. 감옥 같은 집에서 술과 눈물로 밤을 버티며 살아간다. 낮에는 빚을 갚기 위해 멀쑥한 차림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보컬 록이 오빠 - 우리 집엔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마음대로 못 나가. 그 말,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노총각 록이의 부모님은 젊은 아가씨를 보자마자 아들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모양이다.

기타 치던 정미 언니 - 결혼 후 부잣집 사모님이 되었다.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육아와 집안 내 정치가 녹록지만은 않은지 말에 가시가 묻어난다. 집 없이 살면서도 위스키와 담배를 놓지 않는 미소가 염치없다고 한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Q, 당신이 지금의 (아마도 안정적일) 삶과 (집으로 대변될) 주거환경을 누리기 위해 포기한 가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미소의 남친과 고객

웹툰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 한솔 - 미소가 집 없이 사는 게 너무 마음 아프다. 웹툰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다니고 있던 회사의 해외근무를 신청한다.

원룸에 살며 가사도우미를 쓰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젊은 싱글, 민지 - 임신했는데 애 아빠가 누군지 모르겠다. 만나온 여러 남자들에게 돈을 뜯어 네일숍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배신자! (한솔에게) / 헤픈 게 뭐 어때서요? (민지에게)

미소는 나의 이상이자 현실이자 위안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웃고 울고 공감했다. 그녀처럼 가진 돈과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늘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를 빛나게 해줄 무언가를 걸치는데 공을 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 진정 빛나는 사람이 내 이상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하되, 무리하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고자 하니 물질적 생활수준이 더 나아지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아마 나는 그녀보다 더 많이 타협하고 있기 때문에 나빠지지 않을 뿐인 듯하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더 풍요로워지는 세상 속에서 그 속도만큼 개개인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은 듯한 현실이 의문스럽고 쓰리다. 사회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소신을 지키는 그녀의 삶이 그녀의 정신의 황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가벼운 삶에 다다르는 듯 하여 위안을 얻었다. 나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소박한 철학자의 삶의 향하여..   


*본 글은 친구들과 운영하는 팟캐스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서 토론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은 다양한 책과 영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관련 대화를 나누는 팟캐스트로 아이튠즈 팟캐스트, 팟빵, 파티에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 검색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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