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지연언니에게
언니, 잘 지내요? 어느덧 겨울이네. 지난여름에 아쉬운 만남 후 조만간 다시 제주에 놀러 가겠다고 해놓곤 이렇게 나머지 반년을 훌쩍 넘겨버려 마음에 짐이 남았더랬어요. 이번 기회를 빌어 편지로 나마 마음을 전해요~ 나는 지금 조지아에 있어요. 미국에 있는 조지아주가 아닌 터키 위에 있는 오래된 나라 조지아!! 전에 말했던 것처럼 매년 말에는 한 달씩 홀로 여행하기를 하는데, 이번엔 어쩌다 마음이 끌린 조지아가 여행지로 선택되었죠. 와보니 내가 갔던 어느 유럽의 국가나 도시들보다 더 내가 상상하던 이국적 느낌의 유럽에 가까운 듯해요. 러시아나 터키에서 현대화를 조금 더 뺀 후 잘 버무려 예쁜 작은 옹기에 담아 놓은 느낌이랄까? 날이 쌀쌀하고, 여행 비수기라 가는 곳마다 썰렁해 기왕이면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왔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행객이 없는 조지아에서 손님 대접을 맘껏 누리며 잘 지내고 있답니다.
오늘은 보르조미라는 마을에서 마슈롯카라는 미니버스를 타고 아할치헤라는 동네로 왔어요. 여긴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거리인데,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수도도 멀지 않은 남쪽 지역이에요. Akhaltsikhe라는 이름이 조지아어로 New catsle이라고 하더라고요. 언덕 위에 마을 어디에서나 보일법한 크고 웅장한 성채가 있어요. 그 성의 이름은 라바티(Rabati). 오래된 역사를 지닌 성터이지만 지금의 모습은 2010년대에 들어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갖추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가 본 유럽의 어느 성보다 웅장하고 진짜 마을 같더라고요. 여기서 중세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는 상상을 해보니 설랜달까? 어떤 드라마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어요. 오늘은 이 성 안에서 오후 반나절을 보냈어요. 이 곳이 조지아의 디즈니라는 불리는 테마공원 같은 곳이라 주어 들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천명은 족히 살 수 있을 듯한 커다란 성벽 안 마을에는 끽해야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 열댓 명 남짓,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본 관광객들도 열명 정도밖에 안되었을 듯싶네요. 다행히 늦은 오후부턴 흐리던 하늘도 개이기 시작해 정말이지 그 큰 성이 온전한 내 공간인 듯 누리며 열심히 즐겼답니다. 사진 찍어 줄 사람 한 명만 있었으면 족히 몇십의 인생 샷은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배경과 상황이었는데, 혼자라 사진은 포기하고 눈치 보지 않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아니 춤이라기엔 미흡하고 몸을 꿀렁꿀렁 움직여 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싶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공간에서 몸과 정신이 온전하게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왠지, 제주에서의 학창시설과 20대 초반에 다니던 여행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마 그래서 더 오늘은 언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내년에는 꼭 언니랑 둘이 여유롭게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누리는 시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늘 내 노력이 부족한 듯싶으니 더 노력할게요! 연말 잘 보내요! 곧 만날 수 있기를~
2018.12.06.
아할치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