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잼에게
잼, 안녕! 잘 지내죠? 진행하던 사업들을 얼추 마감하고 여유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리라 추측하지만 아직도 뭔가 끊임없이 일들이 생겨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스쳐요. 어찌 되었든 연말의 기운을 즐기고 있길 바라요. 사실 회사에 사람들이 많아져 누군가를 특정해 편지를 쓰는 게 좀 마음에 걸렸는데 그대가 당첨!
전 지금 고리(Gori)라는 도시에서 쿠타이시(Kutaisi)라는 도시로 가는 기차 안에 있어요. 이제 조지아 여행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지막 출정인 셈인데 늘 장거리 여행은 마슈롯카(미니버스)만 타고 다니다 기차 여행을 하고 싶어 어제 처음으로 러시아 횡단 열차를 생각나게 하는 조지아 기차에 올랐어요. 역시 기차여행이 주는 운치가 있긴 한데, 버스보다 비싸고 자주 없고 게다가 여권 확인 등의 불편한 절차들이 있어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요. 지금도 6인실 기차 칸에 나 혼자 있음. 근데 한 시간 정도 역무원이 와서 내게 조지아어를 가르쳐주고 갔어요. 아니 사실 편지를 쓰고 난 후에도 내내 제가 있는 칸에 있었죠. 뜻하지 않게 조지아어 학습을 열심히 했고 여행 동무도 생겼어요. 조지아 사람들은 대부분 신심이 깊고 친절해요. 그리고 특히 경찰이나 역무원 등 여유 있는 아저씨들이 혼자 다니는 동양인 여자 여행자에게 엄청난 관심과 친절을 베푸는 듯 합니다. 난 그걸 좀 즐기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이를 물을 때마다 내가 대답을 하면 깜짝 놀라며 뭔가 그럴 줄 몰랐는데 하는 표정을 짓는 그것 역시 즐기고 있답니다. 뭔가 뿌듯하면서도 혹시 내가 상대방을 실망시켰나 하는 묘한 기분이 들어요. 웃기죠? 지난번 협궤 열차를 탔을 때 내게 운전 칸도 구경시켜주고 번역기까지 돌며 가며 협궤열차의 역사에 대해 알려 준 사람은 비교적 젊은 듯 했지만 머리가 벗겨졌고 아저씨 느낌이라 30대 후반 정도일 거라 추측했는데 알고 보니 나랑 동갑이라 서로 깜짝 놀랐어요. 근데 나보다 그가 더 놀란 듯 보여 재밌었달까? 뭐 이렇듯 나는 한국에서는 못 경험하는 스스로 영~해 보이는 기분을 만끽하며 조지아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떠나온 고리(Gori)라는 도시는 스탈린이 태어난 곳이래요. 어제 사람들이 추천해서 스탈린 박물관을 갔는데, 그 박물관이 러시아 사람들과 조지아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어로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엄청 실망하고 후회했어요. 이 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탈린은 내가 배우고 인지하고 있는 스탈린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죠. 고리는 작은 동네라 볼거리가 많지는 않은데, 근처의 아주 작은 역사박물관에도 갔었어요. 내가 원래 박물관/미술관 이런 걸 좋아라 해서.. 거긴 이 지역에서 발견된 3세기 유물과 20세기 유물들을 모아 전시한 한층짜리 작은 곳이었는데, 5라리(한국 돈으로 2000원 정도)를 주고 개인 가이드 투어를 했는데, 가이드가 너무 열정적으로 지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해줘서 엄청 재밌는 시간을 보냈달까? 스탈린 박물관의 1/3 크기도 안되었지만 만족도는 10배!! 그렇게 고리 여행이 실패의 경계에서 괜찮은 동네로 다시 등업 했어요. 그 외에는 성곽도 오르고 동네 구경도 하고, 저녁엔 호스텔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으며 조지아 전통 춤 영상을 보고 학습을 하며 보냈어요. 내가 만난 조지아 지방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손님에게 조지아의 문화를 알려주고 싶어 한다고 느껴요.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더 그런 편이라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게 왠지 정많은 우리나라 지방의 어르신들이 외국인에게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사람 말고도 여러모로 조지아는 매력 있는 나라예요. 특히 지금 기차에서 보이는 창 밖의 흐르는 강물과 멀리 끝없이 펼쳐진 설산의 장관이 예술입니다! :)
사실 알듯 모를듯한 약간의 미안함 같은 게 있어 회사 사람들에게는 여행 이야기를 편히하기 어려움을 느끼는데, 잼은 어떻게 생각하든 좋게 말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이리 편히 자랑을 해요. 나중에 혹시 역 상황이 생기면 내가 부러워 않고 응원만 할게요!! ;) 연초에 꼭 휴가 내고 멋진 시간 보내길~
2018.12.14.
고리에서 쿠타이시로 가는 기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