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보내는 여행 편지 #14

To. 민재에게

by 방자

안녕, 민재! 잘 지내? 너무 오래간만이라 네가 요즘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쉬이 상상이 되질 않네. 우리에게도 한때는 속속들이 일상을 공유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나는 지금 여행 중이야. 매년 혼자 여행할 때마다 소소한 프로젝트 같은 걸 하는데, 올해의 프로젝트는 여행 편지 쓰기거든! 여행 중 네가 두어 차례 생각났지만 왠지 모르게 망설이다 오늘에서야 글을 쓴다.


지금은 쿠타이시라는 곳에서 수도 트빌리시로 가는 기차 안이야. 사실 서울 - 대구도 안 되는 거리인데 기차로 5시간이 넘게 걸려. 그래도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나는 가운데 테이블이 있는 6인실 칸에 혼자 있으므로 여정을 썩 즐기고 있어. 어쩜 쿠타이시까지 무언가로 보러 온 게 아니라 그저 기차를 타러 왔었나 싶기도 해. 흔들리는 기차 속에서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서 더 붙잡고 싶은 풍경들을 즐기고, 틈틈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공간 속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런 게 퍽이나 따뜻하게 느껴지거든. 뭐, 바깥 날씨가 춥고 히터가 나오는 기차가 더 따뜻한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기차에서 역무원 아저씨와 할아버지와 함께 트빌리시에 가는 타마리라는 꼬마 아가씨와 친구가 되었어.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타지인에게 엄청난 친절과 관심을 보여. 역무원 아저씨는 여정 내내 내게 조지아어를 가르치고 싶어 하셨어. 바깥에 산을 지나가면 산이 조지아로 뭔지, 귤을 까먹으면 귤이 조지아어로 뭔지 알려주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하는 학습법을 내게 적용하셨는데 내가 의지가 없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단어가 몇 안되네. 타마리는 근래 영어 공부를 시작한 건지 내게 영어로 이름이 뭔지, 무슨 색,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내가 학생인지,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등을 문장이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물더라고. 걔가 열심히 묻고 내가 대답하면 노트에 조지아어로 뭐라고 쓰는데 나는 왠지 어린 왕자 생각이 나더라. 우리 같이 갔던 어린 왕자 공원도..


너는 어떻게 지내니? 이제 한국에서의 삶이 퍽 익숙해졌겠지? 가끔은 몽골이 그리울 테고.. 나는 자주 바깥이 그리워 어디든 상관없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자꾸만 떠나는 거 같아. 그냥 타고난 내 성질이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사실 일상이 불만족스럽거나 그다지 힘든 것도 아닌데 말이야. 또 이렇게 나와 굳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방황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외롭다 느끼고, 이런저런 문제에 직면하고 나서야 일상이 고맙고 더 잘살아야 싶고 그런다.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십수 년을 이러는지 나도 가끔 놀라.


아까 역무원 아저씨가 여행사진들을 보여달라고 해서 내가 내 인스타 사진을 보여줬거든. 거기에 우리 가평 가서 꽃게탕 해 먹던 사진이 있더라고.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는지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그렇지? 창 밖의 흐르는 강물은 비교도 안 되는 거 같아. 보고 싶네. 연초엔 얼굴 함 보고, 밀린 수다 좀 떨자. 연말 잘 보내!


2018.12.16.

트빌리시 가는 기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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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ia, Kutaisi & Rail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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