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난이에게
난아, 잘 지내지? 왠지 안부를 묻지 않아도 너는 타국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직면한 문제들을 뚝딱뚝딱 해결하면서 현명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 같아. 근래에 한국 다녀간 거 같던데.. 결혼 2주년 축하해! 어느덧 네가 타국살이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나 보네. 이곳까지 온 김에 너희를 만나고 가면 좋았을 텐데 일정을 맞추지 못해 아쉬워. 너희가 키프로스를 떠나기 전에 그곳을 포함하는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지아서 만난 여행자들이 대부분 내가 장기 여행자도 아니면서 조지아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니까 이 작은 나라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며 볼 게 있냐고 묻더라. 근데 난 게을러서 그런지 한 달 동안 다 둘러보기엔 나라가 이 너무 큰 느낌이야. 오늘은 처음으로 단체 투어 버스를 탔어. 늘 혼자 배낭 메고 버스 타고 묻고 물어가며 고생스럽게 돌아다니다 따순 옷도 없는데 춥디 춥다는 코카서스 산맥 바로 밑의 산골 동네까지 그렇게 갈 자신이 없어 어제저녁 늦은 밤에 급 예약을 하고 아침에 버스에 올랐는데,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친절하게 영어로 조지아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투어를 미리 탔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과 역시 투어는 내 체질이 아니라는 생각?
무척 친절한 가이드였고 버스에 함께 오른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만, 우리를 제대로 통제하여 시간 내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투어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가이드의 직업적 태도에 내가 여행자가 아니라 관광객 역할을 해야 할 것만 같게 느껴졌고 뭔가 반쯤 정신 놓고도 시키는 대로 핫 스팟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오면 되는 듯한 여정도 허무했어. 물론 투어를 하지 않았다면 해발 2400m의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즈바리 패스를 지나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가 있는 스테판츠민다까지 가는 길에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싶다만, 그 고생에서 분명 투어에서는 내가 얻지 못한 어떤 배움이나 영감 같은 무언가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근데 나 지금 너무 무릎이 아프고 시리다 ㅋㅋㅋ 하루 종일 버스 타고, 걷고, 추운데 좀 나돌아 다녔다고 이러면서 쓸데없이 여행자부심만 있는 건가 싶기도 해. 내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안타깝지? 괜찮아, 삶이 다 그렇지 뭐. 그렇지? (왠지 네가 이 글 읽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웃고 있을 거 같단 생각이..)
언제 어디서든 늘 더 재밌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연말 잘 보내고,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2018.12.11.
스테판츠민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