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보내는 여행 편지 #15

To. 하나 씨에게

by 방자

하나 씨, 잘 지내죠? 일을 시작해 바쁘게 지내고 있을지, 아직은 좀 더 여유를 즐기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나는 어느덧 조지아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어요. 오늘 저녁 이스탄불 비행기에 오르고, 거기서 3일 밤을 더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가요.


오기 전 추운 나라로 여행을 하기로 한 게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며 엄살을 부렸던 기억이 있는데 와서 지내보니 나름 겨울 여행의 장점이 있는듯해요. 물론 날씨 때문에 트레킹 하기에 좋다는 산악지역들은 대부분 접근이 제한되어 가지 못했어요. 그 외에도 외곽의 관광지들은 비수기라 공사 중이거나 가도 영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볼 게 없는 곳들이 꽤 있어 아쉬웠지만, 여행객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전체적으로 한적해진 나라에서 나름의 적적함을 즐기며 다녔거든요. 여기저기서 만난 대부분의 조지아 사람들도 수많은 여행객 중 하나가 아닌 뜸하던 차에 찾아온 하나라 그런지 진심으로 반겨주고 관심 가지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어제는 지하철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와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한참을 수다를 떨었어요. 딱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는 분이 지하철에서 내게 일본인이냐 물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혼자 3개월 이상 지내시면서 집을 알아보고 계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은퇴 후 꽤 오랫동안 여행을 취미로 하시며 여행정보 책자에 글을 기고하고 계시는 분이셨는데, 조지아를 거점으로 삼을 예정이시라고 하셨어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함에도 10년 가까이 유럽과 남미를 여행한 60대 은퇴 공무원이라니요. 많이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그 분과 헤어지고 나서는 구시가지에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 마지막으로 트빌리시의 야경을 한껏 즐겼고, 그 동네 와인셀러에 들려 평소에 즐겨 마시던 게 아닌 다른 종의 고급 와인 두어 잔을 마시고 와인셀러에서 일하는 청년들과 함께 한참을 조지아 와인의 정통성에 대한 토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와인셀러는 처음 와서 머물던 숙소 근처에 있어 눈여겨보았던 구글맵 평점이 좋은 곳이었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 있던 한 테이블의 손님이 막 나가고 머무는 동안은 손님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지금 머무는 숙소의 6인실 여성 도미토리에도 사람이 저 밖에 없어요. 물론 외롭겠다 싶을 수도 있지만, 실은 외롭기도 하지만 그래서 저도 누군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반갑고 신이 나더라고요. 지금의 나는 누가 뭐라도 물어주면 기꺼이 친철함을 다해 답할 용의가 있는 상태인데 이런 변화가 썩 마음에 들어요. 뭐 그랬으니 지하철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나 바에서 만난 청년들과도 그렇게 자신을 탈탈 털어가며 신이 나서 토론을 했겠지요. 근데 또 일상에서 삶이 조금만 바빠지면 시간에, 타인에게 인색했던 나를 기억하기에 맘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곧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지금의 나를 금방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요.


상황 때문에 어떤 선호하는 행동방식을 잃게 되더라도 여행자일 때 내가 어땠는지를 잊지는 않으려고요. 지금의 내가 한 반년쯤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곧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시작하게 될 하나 씨도 긴 준비의 시간 동안 얻은 좋은 것들을 쉬이 잊거나 잃지 않고 일에 적용해 더 멋진 삶의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라요.

연말 잘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더 큰 행복이 함께하길~


2018.12.18.

트빌리시에서


Georgia, Tbil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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