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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공원

이야기, 열여섯

by 방자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브라이언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비는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것 같더니 날 밝은 줄 모르고 단잠을 자는 듯하다. 나는 글을 쓰고, 신부님께 답장을 달라는 독촉에 가까운 메일을 보냈다. [신부님, 답장이 없으셔서요. 우리가 콘스탄틴에 가기로 한 날이 내일로 다가왔는데, 저희는 콘스탄틴에 가서 굳 셰퍼드 하우스에 머물 수 있는 걸까요? 만약 어렵다면, 신부님이 계신 스키다에서 머물러도 될까요? 답장 기다릴게요.] (호텔에 머물고 싶지 않은) 급한 마음에 메일을 쓰긴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도 아닌데,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시는 분께 이렇게 영어로 메일을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니 죄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메일을 보낸 분은 미셸 푸르스트 신부님이다(알제리 분이신지 프랑스 분이신지 혹은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인지 아직은 모름). 알제리에 온 둘째 날 완님이랑 같이 아이들을 데리러 간 한인교회에서 잠시 뵈었던 목사님을 통해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름과 연락처를 받았다. 목사님은 그저 그분이 영어를 할 줄 아시고 콘스탄틴에 사신다고 만약 가게 되면 저렴한 가격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을 테니(아마도 성당의 숙박시설 같은 게 있는 것 같음) 연락해서 물어보라고 하셨다. 닷새 전쯤, 오랑에서 다음 목적지를 콘스탄틴으로 하자는 이야길 하며 그분께 전화를 드렸었다. 당연 불어(어쩌면 아랍어일지도 모름)로 전화를 받으셨는데, 내가 불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이야기해도 되냐고 묻고 간단히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목사님 소개로 연락드렸고, 콘스탄틴에서 계신 곳에 머물 수 있냐고 물으니 메일 주소를 주시며 이쪽으로 내용을 적어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때 알 수 있었다. 목사님은 이분이 영어를 하신다고 하셨지만, 이분에게 영어는 편한 언어가 아니다. 단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내 불어보다 훨씬 나을 뿐이지. 나는 영어로 나와 비를 최대한 명확하게 소개하고, 원하는 사항을 적어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자신은 지금 '콘스탄틴'이 아니라 '스키다'라고 하는 다른 도시에 있다고 하시며, 그래도 콘스탄틴에 있는 담당자에게 우리가 보낸 메일을 전달했으니 머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머무는데 불편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답장을 보내주셨다. 나는 어쨌든 답변이 긍정적으로 느껴져(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야 여기서 당연하고 흔한 일이라 신경 쓰지 않음) 감사의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했다(아직, 오라는 확정이 아니었고 우리는 가려는 곳의 이름, 주소 등 아는 게 없었으므로).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우리의 출발은 내일로 다가온 것이다. 나의 간절함.


부디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오늘은 내가 좋아한 그 빵집에 들려 아침을 먹고, 어제 브라이언이 이야기한 보태니컬 가든, 독립기념비에 가보기로 했다. 브라이언이 깨끗하다고 칭찬한 메트로는 아직 14개 역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신형 지하철이었다. 오랑의 트램도 그렇고, 여기 메트로도 그렇고, 둘 다 아직 역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신식 교통수단인 듯하다. 다섯 정거장 정도 가서 내려 밖으로 나가니 공원 입구가 나왔다. 몰랐는데 입장료가 있는 공원이다. 100 디나르, 지하철 티켓이 50 디나르, 빵이 20 디나르인걸 감안하면 꽤 비싼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게 한 줄에 섞여 있는 걸 막기 위함인지 입장권 구매 줄이 남/여로 나뉘어 있다. 공원은 생각보다 넓으면서도 여러 나무의 가로수가 과하지 않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듯한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에 띈 건 공원 의자 곳곳에 손을 잡고 앉아 있는 연인들이었다. 길에서는 볼 수 없던, 데이트 남녀가 여기 다 모여있는 듯했다. 히잡 쓴 여인과 사내들이 수줍게, 혹은 일부 당당하게 손을 잡고 약간의 스킨십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그렇구나. 알제에서 데이트를 하려면 Jardin d’essai du Hamma로 가면 된다. 우리도 오랜만에 눈치 보지 않고 손을 잡고 걸었다. 가든 안에는 별도의 동물원이 있었으나 생략하고 밖으로 나와, 엄청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참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타고 독립기념탑으로 올라갔다. 역 앞에서 언덕 위까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20 디나르)는 2개가 서로 동시에 왔다 갔다 하는 구조였는데, 사람이 안에 타서 조정해야 하는 수동식이라는 게 흥미롭다. 알제 도착한 둘째 날, 숙소 근처의 공중주택에서 보았던 이 독립기념탑은 나름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랜드마크인데 막상 올라가 보니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바로 밑에 있에 전쟁 박물관이 있었다. 나는 전쟁 박물관에 관심이 있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에어컨이 있다면 잠깐 들어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티켓을 끊었다(1인당 30 디나르). 내부에 에어컨은 없었지만 비교적 시원했고, 모든 내용은 아랍어로만 쓰여 있어 이해는 불가능했지만 대부분 그림(전쟁 영웅과 전쟁 씬, 프랑스 군과의 대치와 협상 등)으로 이루어진 전시관이어서 둘러보기에 나쁘진 않았다. 전쟁 박물관이어서 그런지 그림에 여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전쟁 당시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내야 했을지 궁금함이 들었다. 그때도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었을 텐데(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지 '나는 여성이다’, 여성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닌데 알제리에 오니 성별 구분과 그 차별적 권리가 내가 아직까지 경험해 온 것에 비해 너무 커서 오히려 여성 권리에 민감하게 되는 기분이다).


시내로 돌아와 비는 일을 한다며 숙소로 돌아갔고, 나는 내일 콘스탄틴으로 가기 위한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 ICI-FLEXY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조그마한 가게가 보여 슬쩍 들어가 혹시 환전하냐고 물었다(추가 환전히 필요한 시점인데, 지난번 그 집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비슷해 보이는 아무 집에나 들어감). 가게에는 세명의 젊은 청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환전을 하려면 은행으로 가라고 했고, 내가 친구가 은행 말고 딴 데 가서 하라고 했다고 얼마 전에 이런데서 환전한 경험이 있어서 물어본 거라고 했더니, 블랙마켓을 찾는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그들은 나보고 거기 혼자 가면 안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자니, 내가 지난번 갔던 곳은 정확하게 블랙마켓은 아니고 그냥 돈을 환전해 주는 업무도 하는 작은 가게였던 것 같고, 블랙마켓은 공원 앞에서 사람들이 쭉 서서 진짜 암거래를 하는데, 사기도 종종 일어나고 나쁜 일도 생기는 곳이라 혼자 가기엔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친구가 있으니 같이 가겠다고 위치만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논의를 하더니 그중 한 명이 자기가 데려다주겠다며 따라나선다(모든 대화는 상황에 따른 의역). 아무래도 내가 혼자 갈까 봐 무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2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는 또 ICI-FLEXY표시가 있는 작은 가게였는데, 그가 들어가서 물으니 거기 있는 사람이 자신이 바꿔줄 수 있다며 1달러에 160 디나르라고 했다. 기존과 동일한 조건임으로 100달러를 바꿨고, 나를 데려간 그와 함께 돌아왔다. 오는 길, '내 친구 중에 작년에 중국에 가본 친구가 있는데, 중국 좋다고 하더라.' 라며 그가 말을 건넸다. 나는 호의가 고마웠지만, 그래도 ‘응. 중국 좋대~ 근데 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야’라고(평소 같으면 굳히 밝히지 않았겠지만) 말했더니 ‘아~ 한국, 더 좋네!’란다. 숙소 가는 길은 아냐며 나를 끝까지 걱정해주고 자신의 가게로 들어간 그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에 남았다.



기차역에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비가 아니었다. 두근두근. 전화를 들고 “Hello?”라고 대답했지만 반대쪽에서는 알 수 없는 말만 들려온다. 왠지, 콘스탄틴 숙소의 담당하시는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전화기에 대고 손짓 발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전화를 끊었고, 전화가 다시 왔지만 두 번째는 그쪽에서 먼저 끊었다. 하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알아본 기차 시간이 오전 7시 반이라(아침 6시 반, 7시 반 두 대 밖에 없음) 내일은 이른 아침을 시작해야 할 거 같아 벌써 부담스럽지만 숙소가 없으면 차라리 일찍 가야 쉬이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내일 숙소에 대한 잡생각을 머리에 담은 채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잡무를 처리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고 하던 차, 미셸 신부님께 연락이 왔다. 콘스탄틴에 이야기해 두었으니, 도착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가라며 문자로 택시 기사에게 보여 줄 숙소 찾는 법을 보내주셨다. 다행히도 내일 숙소가 생긴 것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마땅히 먹을 것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은근슬쩍 치킨을 보며 기웃거리는 우리를 발견한 누군가가 매우 유창한 영어로 이 집 괜찮다며 저녁을 먹고 싶은 거라면 자신이 주문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잠깐 망설이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고 그도 함께 들어섰다. 그는 주문을 도와줬고, 옆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낯선 사람이라 약간은 경계가 되었지만 이렇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아랍어를 하는 그가 누군지 궁금하기도 해 합석하기로 했다. 압둘라 메지. 유창하게 영어를 쏟아낸 그는 영어 통역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알제리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어 - 아랍어 통역을 한다고 함). 알제리 사람들은 대부분 아랍어 그리고 다음으로 프랑스어를 하지만 자신은 프랑스어는 잘 못하고 대신 영어를 잘 한다며 프랑스어 쓰는 건 식민시대의 잔재 같은 거라서 싫단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인이라니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압둘라 메지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한국어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관심이 있어 배운 적이 있단다. 이야길 들어보니 그 관심은 세계적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불 때 생긴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저씨(외모만 보고)라고 생각했는데, 조심하면서도 설명적이고 가벼운 그의 말투는 그가 젊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나중에 적어 준 메일 주소가 이름 뒤에 88로 끝나는 걸 봐서 88년생이 아닐까 추측했다. 자기 소신이 강하고, 세계적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통역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해서 메일과 페이스북을 교환했는데, 순간 이 친구랑 같이 사막에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여름 사막을 질색할 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것 같다.


<표지 사진 : 알제 보태니컬 가든의 가로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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