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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들의 생일상

이야기, 열일곱

by 방자
디리리리링링, 디리리리링링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6시 20분. 7시 28분 기차를 타려면 30분 내로 준비하고 나가야 하므로 쨉싸게 짐을 싸며 부산하게 아침을 시작한다. 다행히 역이 코 앞이므로 무사히 7시 28분 콘스탄틴행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준비가 된 상태(편한 바지, 시원한 물, 빵, 마스크 등)이므로 앞으로 7시간 잘 버티며 가기만 하면 된다. 오랑을 한국의 부산(제2의 도시)이라고 비교했다면 콘스탄틴은 경주(역사 도시)쯤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저녁, 브라이언이 우리 방에 놓아둔 <최고의 영문판 알제리 가이드 북>이라고 한 책에서 잠깐 보았는데, 콘스탄틴의 가장 큰 볼거리는 로마시대 유적과 7개의 다리라고 한다. 아마도 고지대 언덕배기에 지어진 도시가 아닌가 싶다.


역시나 쉽지만은 않은 7시간 반을 보낸 후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3시 즈음 콘스탄틴 역에 도착했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미셸 신부님이 보내 준 문자(불어로 쓰인)를 보여주며, 찾을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확실한 소통이 어려워 결국 신부님께 전화를 드린 후 택시기사에게 위치 설명을 부탁했다. 우리로선 알제리에서 처음 타는 택시였는데, 미터기가 없어 약간은 초조한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니 200 디나르(1달러 25센트)라고 했다. 도착한 곳이 역사에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택시 가격이 비싸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어떤 중년의 남자분이 나오셔서 인사를 하곤 우리를 안내해주셨는데 나는 그분이 미셀 신부님이 이야기 한 이 곳을 담당하고 계신 분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철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성함을 물으니 미셀 신부님이셨다. ‘어, 어떻게 여기 계신 거지?’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 신부님은 빠르게 우리가 머물 곳을 보여주시곤, 마리 수녀님께(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할머니 수녀님) 우리를 인도하고 오늘 저녁은 수녀님이 챙겨주실 거지만 그 후에는 알아서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자신은 일정이 있어 모레 밤에 돌아올 거니까 그때 다시 이야길 하자고는 하시곤 급히 떠나셨다. 일단, 방은 마음에 든다. 우리에게는 각자 싱글 침대가 있는 방 두 개가 주어졌는데, 그 방을 연결하는 중간 문이 있고, 양쪽 방문에서 화장실 문을 열면 하나의 화장실로 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딱 보기에 성직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단출하지만 신경 쓴 기도원 숙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 수녀님은 우리에게 물을 한잔씩 주며, 오믈렛을 먹겠냐고 물으셨다(마리와의 대화는 각자 전혀 다른 언어를 썼기 때문에 다 행동에 기반한 추측성 해석임). 우리는 괜찮다고 했지만,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주방에서 가스레인지 켜는 법을 배우곤 스크램블 애그를 만들고 있었다. 주어진 빵과 계란을 먹으며 우리는 여기가 정확하게 어떤 곳일까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다 추측일 뿐 우리끼리 진실을 알아낼 방도는 없었다. 수녀님께서 썩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친절(우리를 챙겨주고 싶어 하는)과 안타까움(말을 이해 못하는 우리에 대한?)이 느껴져 그 공간에 있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왠지 성스러운 곳 같아 우리가 여기에 머물러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었지만). 간식을 먹고, 씻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산책을 나서려고 밖으로 나섰는데, 어떤 남자분이 나에게 '어떻게 교회에 왔냐'라고 물었다(처음에는 불어로 이야기했다가 못 알아들으니 다시 영어로 말하심).

여기가 교회인가요?


내가 되물었고, 그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는 거 냔다. 그러게, 우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짐을 풀었다. 밖에서 나는 대화를 듣고 마리 수녀님이 나왔고,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다(지금부터는 그 남자분이 통역함). 우리는 그냥 산책을 가는 거라고 했더니 바깥세상이 많이 위험하다고 하신다. 요 앞에 있는 굴다리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타나 여기 손님들을 흉기로 위협한 뒤 돈을 뺏어간 적도 있다며(사실 통역이 믿음직스럽지 못했음, 마리 수녀님이 걱정의 말을 하는 거 같긴 했으나 뭔가 멋대로 통역하는 듯하다고 느낌) 우리에게 열쇠를 쥐어주며 굳게 닫힌 철문 여는 법을 알려준 뒤, 남자분은 혹시 칼 맞아서 죽으면 연락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후 철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꿀꺽~ 뭐지?


위험한 바깥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위험하다는 굴다리를 지나 조금 걸어봤지만(약간 불안함) 딱히 뭔가 보이지도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 다시 철문을 열고 안전한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우릴 보며 씩 웃는다(뭔가 찝찝함). 마리 수녀님이 그를 데리고 와 뭐라 뭐라 말씀하시니 그가 저녁에 생일 파티가 있고, 수녀님이 우리를 그 생일 파티에 초대하셨다고 하신다. '누구 생일 파티인데?' '내 생일, 너네 어디 가려고 했어?' '그냥 걷다가 마트가 나오면 마트나 가보려고 했어.' '나 지금 케이크 사러 마트 갈 건데, 같이 갈래?' '정말? 응. 2분만. 나 옷만 갈아입고 나올게.' '2분 지나도 안 나오면 그냥 갈 거야!' 그는 뭔가 쫌... 짓궂은 느낌이다.


우리는 그의 차에 올랐다. 자신을 미셸이라고 소개한 그는(혼란스럽게 미셸 신부님하고 이름이 같음. 앞으로 그를 브라더 미셸, 신부님을 파더 미셸로 구분해서 쓰도록 하겠음) 레바논에서 신부님이 되기 위해 이 곳에 왔고(뭔가 교육과정에 있는듯함), 다음 달에 레바논으로 돌아가서 5년 동안 과정을 거치면 신부가 될 거라고 했다. 브라더 미셸은 뭔가 독특한 캐릭터였는데, 굳이 말하자면 선한 목자가 아닌 개구쟁이 혹은 날라리 목자 같았다(하지만 목자인 것은 확실한?). 어쨌든 말할 때마다 예수님을 입에 달고 있는 그는 선뜻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나는 말함) 비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쩜, 그가 우리에게 특별히 짓궂게 군 이유는 나의 말실수 때문일 수도 있는데, '여기가 교회인가요?'라는 막말 발언(나중에 나는 기도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라고 변명함)으로 시작해 '바레인에도 카톨릭이 많나요?'라고 묻는(그는 레바논에서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바레인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그런 질문을 함) 실언을 범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밉보였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사실 레바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기 때문에, 바레인이 아니라 레바논이라고 이해했어도 똑같은 질문을 했을 수도 있다. 알고 보니 레바논은 이슬람 절반, 카톨릭 절반인 듯하다).


우리는 케이크를 사러 나간 거였지만, 베이커리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옆집에서 혼자 커다란 샌드위치를 사 먹고 마트에서 (부지런히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느낌으로) 초콜릿도 사 먹더니, 요구르트만 사 가지고는 돌아가자고 했다. 내가 '케이크는?' 하고 묻자, '요구르트 샀으니 됐지 뭐, 둘 다 똑같은 단 거잖아.'라고 답한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밝을 때 나가서 딸랑 요구르트만 사가지고 오는데 왠지 깜깜해질 때까지 돌아다닌 것도 그렇고, 나한테 여긴 알제랑 달라서 여자 혼자 다니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내 복장도 위험하다고 엄청 겁을 준 것도 그렇고, 그의 말과 행동은 이상한데 그저 내가 그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사실 이유가 있기도 한 거 같고, 뭔가 이상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어쨌든 우리는 내일부터 스스로 챙겨야 하는 식사를 대비해 간단한 장을 봤으니 되었다(대화를 하면서 왠지 브라더 미셸이 나중에 명망 있는 교주가 될 수도 혹은 내가 아는 홍탁을 좋아하는 엉뚱하지만 멋진 성공회 신부님 같은 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듦). 마리 수녀님과 다른 분들이 요리를 하고 있었고 나와 비를 포함한 8명이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았다. 밥을 먹으면서 서로 소개를 했는데, 레바논에서 온 브라더 미셀은 레바논 제1언어인 아랍어와 2 언어인 불어, 영어를 비슷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듯했고, 대학원생이라고 한 알제리 여성은(이름 까먹음)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고 불어를 구사했으며, 마리를 포함한 4명의 흑인 여성 수녀님들은 아랍어는 하지 못하고 불어만 할 수 있다고 했다(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들 같았음). 테이블에선 아랍어와 불어, 영어, 한국어가 난장판으로 섞여 나왔고 소통이 원활하진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샐러드, 빵, 파스타, 요플레의 생일 정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나는 개인적으로 브라더 미셀이 정말 많이, 잘 먹는다고 생각함). 뭔가 새롭다. 우리의 알제리 카톡릭 성당 생활 시작!


비는 알제리에 와서 유난히 사람들 도움을 많이 받는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여기가 도움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라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정보를 찾기도 어렵고, 말도 안 통하고..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아니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아닐까? 어렸을 적, 시골에 살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너무 빤해서 그냥 알고 있던 버스 시간도 간판 없는 식당도 외지인들은 잘 찾지 못했고, 없는 게 많은 곳이라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조금이라도 나누며 서로 돕곤 했다. 하지만 요즘 도시의 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돈이든 시간이든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고 자원이나 정보를 구매하고 소비하며) 살 수 있다. 아니 다들 그렇게 살고 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여행자에게도 그건 점점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여행이 상업화되면서 현지인/방문객 할 것 없이 모두 관계를 비용으로 여기게 되는 거 같음). 독립. 하지만, 다른 말로는 비용 절감을 위한 번거로운 관계의 단절. 자본의 도시에 사는 우리는 점점 관계를 잃어가고 혼자 살게 되는 거 같다.


알지만, 선호하지 않지만 너무 익숙해져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오늘. 나의 삶이기도 한 우리의 삶. 우리는 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표지 사진 : 브라더 미셸의 생일 축하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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