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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칸 디지털 노마드

이야기, 열여덟

by 방자

알제리에 와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은 (이건 나뿐 아니라 비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하는데) 뚜껑 실종 변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샤워, 스프링이 그대로 느껴지는 침대, 에어컨 없는 더위, 부실한 먹거리가 아니라 바로 와이파이의 부재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한국의 맛 김치보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와 접근성이 그립다. 특별히 알제리에 왔으니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왜 하필 나는 (와이파이 전멸 지대) 알제리에서 실시간 여행기를 쓰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우리는 오늘 와이파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코딩하는 그가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 파일을 받아야 하는 내가 문제였는데, 한국 떠나기 전 시작한 세 번째 독립출판 글쓰기 모임[여행자의 집이란 이름의 독립 출판 소모임에 3년째 참여하고 있음]이 작업을 마치고 인쇄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최종 디자인 확인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3G로는 대용량의 파일이 받아지지 않아서이다. 그나마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어서 글쓰기는 하고 있지만(그래서 사진은 1장씩만 올리고 오프라인으로 글을 쓴 후 온라인으로 업로드만 하는 형식으로 쓰고 있음), 사실 와이파이 구경한 지 오래다. 알제리에 온 후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는 아직 가본 적이 없고, 숙소들은 다들 와이파이가 안 되거나 매우 느리거나 계속 끊기거나 하는 증상을 보였으니 사실상 알제의 유일한 코워킹 스페이스 이후 제대로 와이파이를 써 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3G 데이터도 다 써서 당장 충전을 해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판이다.


즉,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까지만 책 내용 수정을 받겠다는 카톡을 확인하고는 오랜만에 노트북을 들고 나섰다.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니면서 알제보다도 세련된 디저트 가게 등 혹시라도 와이파이가 있을 거 같은 모던한 느낌의 카페 몇 개를 발견했지만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는다. 와이파이 시그널을 켜고 열심히 돌아다녀봤자 잡히는 건 핸드폰 파는 가게의 와이파이뿐. 그런데 엇! IBIS 호텔? 시내 중앙에 있는 커다란 호텔 와이파이 시그널이 잡힌다. 간만에 호텔의 카페테리아를 이용하기로 하고 호텔로 들어섰다. 5성급쯤 되어 보이는 이곳은 바깥세상과 다르다. 시원하게 에어컨도 가동되고 있고, 가구도 매우 모던하고, 화장실 변기에 뚜껑도 있고, 가격도 알제리의 가격이 아니다(바깥세상 커피는 30 디나르, 여기선 300 디나르). 후아~ 마치 오랜만에 문명의 혜택을 보는 것 같은 이 설렘... 도 잠깐, 막상 빵빵할 것으로 사료된 와이파이를 연결했지만 원하는 파일의 다운로드가 안된다. 비의 말로는 네트워크가 간헐적으로 끊기는 데다 SSL 보안접속이 안되고 업로드 속도가 느린 건 여기서 쓰는 통신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10년 전에나 쓰던 비대칭 통신방식이어서(하지만 우리가 지나왔던 유럽 나라들도 여전히 이 방식을 쓰고 있다고도 함) 그런 거 같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파일을 내려받으려는 한국형 플랫폼은 아마 한국에 서버가 있고 한국 내 사용자를 위한 캐시 서버(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 파일 등의 파일을 미리 등록하여 더욱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서버) 또한 한국에만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들은 수상한 해외 아이피를 필터링하기 때문에 (국내 서버로 접속을 잘 안 하는 아프리카의 아이피의 경우) 더 그런 것 같다고 한다(이 부분에 전문용어가 많은 건 내가 그 용어들을 이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해한 대로 쓴 후 혹시 몰라 확인을 요청했더니 자신의 이름으로 이런 부정확한 내용을 내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그가 본인 언어로 수정해서 그러함). 어쨌든 결국 나는 오랜만에 와이파이에 연결해 인터넷 세상에 들어왔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진 못했다. 저용량 디자인 파일 몇 개 받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는 데다, 다른 업무랑 중복해서 진행하면 자꾸 실패해 그저 다운로드만 걸어놓고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글로벌 IT시대라고 하지만 정보의 흐름과 속도가 아직은 많이 다른 세상이다. 여긴 비 같은 디지털 노마드도, 나 같은 글 쓰는 방랑 여행자도 살기 어려운 곳이다.


밖으로 나와 데이터 충전을 위해 ICI-FLEXY를 찾았다. ‘1000 디나르(1G) 충전해 주세요.’ 나는 내 번호를 보여주고, 내 폰이 모빌리스 통신사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자기 핸드폰(내 핸드폰이 아닌)을 만지작 거리던 가게 주인은 자기 폰에 돈이 없다며 옆집에 가보란다. 그래서 나는 옆집에 가서 다시 반복했고 1G의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었는데, 데이터비 1000 디나르 외 20 디나르의 수수료를 요구했다(지난번에는 따로 달라고 하지 않아서 수수료가 있는지 몰랐음. 근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낸 비용에서 알아서 떼어간 듯함). 그 과정에서 내가 일게 된 건, 내가 가게 주인에게 돈을 내면 그가 자신의 폰에 있는 돈을 내게 보내고 그럼 나는 그 돈으로 내 폰에서 데이터를 사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는 이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서야 예전에 노키아에서 폰뱅킹을 개발하게 된 사례가 생각이 났는데(디자인싱킹 관련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사례로, 정확하게는 얀 칩체이스의 '관찰의 힘'이라는 책에서 보았음) 아프리카(특히 시골지역)에는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예전부터 사람들이 폰으로 지방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방식으로 송금거래가 발달했으며, 노키아의 디자이너인 얀 칩체이스와 그의 팀이 아프리카에서 디자인을 위한 현장조사 중 그 방식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발전시킨 것이 지금 우리가 쓰는 폰뱅킹의 시초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거래라는 것을 명확하게 예를 들자면, 내가 콘스탄틴에 살면서 오랑에 사는 비에게 용돈 10000 디나르를 보내주고 싶다면, 근처 ICI-FLEXY에 가서 10200 디나르를 주고 송금을 요청하면, ICI-FLEXY 가게 주인이 오랑에 있는 비와 거래하는 ICI-FLEXY 가게 주인에게 자신의 폰에 들어 있는 (만약 없으면 충전해서) 10000 디나르를 보내주고, 오랑의 ICI-FLEXY 가게 주인은 비에게 수수료 떼고 9800 디나르를 전달한다. 오랑의 ICI-FLEXY 가게 주인은 자신의 폰에 충전된 10000 디나르를 다른 송금이나 충전(나처럼 가서 1000 디나르 충전해주세요 하는 애들한테)에 수수료를 받고 판매하는 방식인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도 일반인들이 자체적으로 (은행이 발달하지 않은)어려움과 불편을 대안적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 혁신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접하고 보니 진짜 괜찮고 현실적인 시스템 같다. 나는 점점 이 곳에 블랙마켓이 성행하는 이유와 ICI-FLEXY라고 쓰인 작은 가게가 엄청 많은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블랙마켓이 성행하는 것도 엄격하고 불편한 은행 시스템의 비효율성과 떨어지는 접근성에 있다고 들음. 하지만 대부분 시각적 정보와 제한적 언어 소통을 바탕으로 한 추측에 기반한 것으로 확실하지 않음. 아직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나중에 추측과 다른 진실을 알게 되면 공유하겠음). 오~ 이것은 내게 (은행계좌가 없는) 아프리칸 노마드들의 혁신적 디지털 이용법 체험이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표지 사진 : 콘스탄틴 7개의 다리 중 하나인 Pont Sidi Rached. 길가던 청년들이 우리에게 '니하오'라고 인사하고 알제리에 온 걸 환영해줌>


# 언급된 김에 [여행자의 집] 프로젝트 홍보합니다. 3년째 진행되어온 독립 출판 소모임으로 이번 책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쓰인 9개의 글(2권 1종)을 담고 있으며, 저는 <자연스러운 바람에>라는 제목으로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여행하면서 기록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현재 텀블벅에서 출판 펀드레이징 중이에요. 목표액을 달성하긴 했으나 모금과 홍보, 응원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 혹시 독립출판이나 다양한 여행기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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