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스물하나
우리는 파더 미셸의 차를 타고 스키다(Skikda)로 왔다. 스키다는 콘스탄틴에서 북쪽으로 100Km 정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파더 미셜은 영어를 잘 하진 못하시지만, 엄청 친절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려 노력하셨다. 나는 점점 그가 좋아졌는데 그와 보낸 시간에서 친절, 성실, 검소, 유머, 배려 등 여러 좋은 점들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점점 미스터 미셸, 파드레 미셸보다 그냥 '파더'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이 든다(지금은 막 섞어 부름). 스키다에서 우리가 머물 곳은 다른 프랑스 신부님이 머물던 작은 목회자 저택인데 그 신부님께서 지난주에 프랑스로 돌아가시게 되어 콘스탄틴 지역을 맡고 있는 파더 미셸이 이곳도 책임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파더 미셸은 일정이 엄청 빠듯한 듯했다. 스키다의 숙소에는 탄자니아에서 온 프루덴스와 사무엘이라는 두 청년이 있었는데(파더 미셸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이곳을 봐주고 있었던 듯함) 그들은 우리를 위해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도착해서 씻고 방을 나섰을 때는 벌써 마당에 밥과 쿠스쿠스, 그리고 감자튀김과 닭요리가 있는 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탄자니아에서 온 그들은 스와힐리어를 모국어로 하지만 교육을 영어로 받아 영어를 잘 했으므로 나는 오랜만에 신이 나서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식사 전 듣기로는 이번 주가 개강이어서(둘 다 콘스탄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음) 수강신청을 하러 오늘 저녁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파더 미셸이 나중에 와서 사무엘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가고 프루던스는 남아서 며칠 더 우리랑 지내다 가기로 했다고 말해줬다. 우리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훗.
늦은 오후쯤, 다른 탄자니아 학생인 레스피가 도착하고 다 같이 숙소를 나와 옆 마을의 바닷가로 향했다. 파더 미셸은 내가 오는 길에 알제리에 와서 한 번도 지중해 바다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인지, 원하면 물에 들어갈 거니 수영복을 입고 가는 게 좋을 거라고 하신다. 프랑스에서 온 신부님 미셸, 탄자니아에서 온 학생 푸르스트와 레스피, 한국에서 온 여행자 비와 나. 이렇게 다섯 외국인이 동네 나들이에 나섰다. 숙소를 나서기 직전, 파더 미셸은 우리에게 여권을 챙기라고 일러줬다. 외국인들은 눈에 띄어 종종 서류를 보자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에 뜨끔했다. 가장 크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혹여 우리가 파더 미셸과 같이 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피해가 갈까 봐였다. 그가 우리의 신분(불법 체류 중이라는)을 아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러면 너무 미안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비는 그래서 같이 다니는 게 더욱 마음에 걸린다고 했고,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경찰에게 무관함을 아주 잘 설명하려면 실력 좋은 통역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함). 어쨌든 우리는 길을 나섰고, 바닷가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작은 어판장이 보였고 바다를 끼고 있는 절벽의 작은 길을 따라 걸었는데 (바닥 여기저기에 널린 쓰레기만 시야에서 지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멋진 바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가다 보면 절벽 사이로 작은 모래사장을 끼고 해변이 펼쳐져 있고(사람도 꽤 있음), 더 가다 보면 또 다른 느낌의 비치파라솔이 가득 있는 해변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몇 개의 해변을 지나서 한적하지만 음악이 나오는 작은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오는 내내 여러 해변을 지났지만 수영하는 여성을 보지 못한 나는 수영복만 입고 바다에 들어가도 되는 건지 혼란스럽지만, 물에 뛰어드는 일행을 보곤 함께 따라 들어갔다. 내 생의 첫 지중해 수영!! 춥지도 덥지도 않고, 파도도 딱 적당한 놀기 좋은 바다에서 즐기게 되었구나. 신난다!
30분을 채 못 논 것 같은데, 파더 미셸은 산책 코스를 다 걷고 싶다면 지금 가야 너무 늦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며 그만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신다. 난 아직 충분히 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정이 그러하다니 맨 마지막으로 나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어 보려 하지만 녹록지 않다(옷 갈아입는 곳은 없음). 조금 더 걸어가니 언덕길이 나오고 언덕을 오르니 위에서는 스키다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언덕길로 온 방향으로 돌아가다 잠깐 마트에 들렸는데, 눈에 띈 것은 자그마한 수박. 수박에는 펜으로 5000DA라고 써져 있다. 500 디나르라고 이해한 나는(여기는 숫자 표기가 좀 애매하다. 센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불필요한 0을 한 개나 두 개 정도 붙여 놓기도 한다. 설마 5000 디나르 일리는 없으니 당연 500 디나르 일 것이라고 생각함) 수박 한통을 사다 나눠 먹으면 좋겠다 싶어 이걸 사겠다고 하니 레스피는 여기가 시내에 비해 좀 비싼 거 같다고 하고, 프루덴스는 비슷할 거란다. 파더 미셸도 가격 논의에 합세했는데, 어쨌는 나는 수박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서 들고 있던 1000 디나르 짜리를 꺼냈다. 가게 아저씨는 작은 돈이 없냐고 물으신다. 나는 동전을 꺼내보았지만 100 디나르 짜리와 20 디나르 짜리 뿐이어서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그가 100 디나르 짜리를 집어가곤 50 디나르 짜리 동전을 주었다. 파더 미셸이 그 수박이 50 디나르냐고 불어로 묻는다. 주인은 그렇다고 한다. "수박이 50 디나르라고(우리나라 돈으로 300원임)?" 우리는 나와서도 어리둥절하다. 새삼 나와 비뿐 아니라 외국인 5명이 돌아다니고 있음일 실감한다(파더 미셸은 알제리에서 10년, 프루덴스는 5년, 레스피는 2년을 살았다고 함). 나는 기분 좋게 300원짜리 수박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맛이 어떨까 궁금했던 수박은 반 갈라보니 속이 빨갛게 익은 맛 좋은 수박이었다.
<표지 사진 : 수영 후에, 오른쪽부터 프루덴스, 나, 파더 미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