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kina Faso에서 온 청년들

이야기, 스물

by 방자

소년 1 : 알제리에 왜 왔어?

비 : 사막 보러.

소년 1 : 사막 봤어?

비 : 아니.

소년 1 : 언제 보러 가?

비 : 음, 안 갈걸.

소년 1, 비 : ….


바로 직전,


소년 1 : 알제리 오기 전에 알제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어?

나 : 너 혹시 어린 왕자라는 책 알아?

소년 1 : 아니.

나 : 흠.. 아무 생각 안 했어.

소년 1: 그럼, 알제리에 왜 왔어?

나 : 비! 얘가 왜 알제리 왔냐고 묻는데? (난 그냥 가자고 해서 옴)


불현 우리 대화가 너무 이상한 거 같아 웃음이 삐져나왔다. '우리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늦은 저녁, 마더 마리에게 볼 일이 있어 주방에 갔다가 유난히 눈이 초롱초롱한 흑인 청년 셋을 만났다. 그들이 도와줘서 마더 마리에게 용건을 말할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말을 트고 주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이름이 기억나질 않으므로 그냥 그들을 소년 1, 소년 2, 그리고 소녀로 칭하겠다). 그들은 이제 스무 살 정도의 Burkina Faso(처음 들어보는 나라임)에서 갓 유학 온 학생들이었다(찾아보니 부르키나 파소는 말리, 니제르,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이다). 소년 2와 소녀는 약학을, 소년 1은 Automatism Regulation(공장 등의 자동화 공정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이해했으나 적합한 한국어 용어를 모르겠음)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소년 1은 특별히 궁금한 게 많은 아이 었다. 우리에게 영어 연습을 할 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먼저 대화에 초대했고, 열심히 질문을 했다. 소년 2는 소년 1에 비해 훨씬 영어를 잘 했으나, 자기 말이 많지는 않고 소년 1을 말을 영어로 바꾸거나 프랑스어로 이해하는 걸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소녀는 분명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딱히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도 이곳(성당의 숙박시설)에 온 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았으나 물어볼 사람이 없어(일단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마더 마리랑 대화가 전혀 안 되는 데다 파더 미셀은 늘 바쁘셔서 잘 안 보임으로) 추측만 하던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주방 테이블에 둘러앉은 다섯이 밤늦게까지 유쾌하게 이야길 나눴다.


그들은 유학생이다. 프랑스어를 국가 공용어로 쓰는(한때 프랑스령이었다고 함) 그들에게 프랑스어로 공부할 수 있는 알제리의 좋은 대학(콘스탄틴에 있는 대학들)은 나쁘거나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집이 많이 그립고, 알제리에 사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마더 마리를 만나고자 교회에 온다. 가톨릭이자, 흑인인 그들에게 알제리 사회는 녹록지 않은 듯하다(그들의 이야기에서도 나중에 들은 파더 미셸의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음). 아마도 몇몇 사람들은 그들 나라의 가난과 미개할 것이라 추측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서슴지 않고 물어보는 결례를 범했고, 소녀에게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음탕한 눈길을 보냈나 보다. 나는 불현, 주토피아라는 만화에 서 본 '너, 정말 귀엽다.'라고 말하는 치타 경관에게 '흠, 우리 토끼끼리는 서로 그런 말을 해도 괜찮지만 다른 종족이 그렇게 말하는 건 좀...'이라고 따뜸하게 말하던 토끼 경찰이 생각났다. 사실, 어려운 일이다. 문화가 다르고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어떤 것이 상대방에게 적당한 배려이고, 어떤 것이 상대방에게 큰 결례인지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니까. 나는 아이들한테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거 같아. 나도 잘 몰라서 종종 실수할 때도 있어. 다 무식해서 그렇지 뭐.' 라며 농담조로 이야기했지만, 생각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돌아다니면서 모르고 지은 죄가, 만든 상처가 얼마나 될지 아찔하다. 그저 사람들이 서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불신보다는 믿음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하려 노력한다면 행동에서부터 덜 상처 주고받는 사회가 될 수 도 있을 텐데. 아니, 사실 모르겠다(나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우므로). 그저 그 청년들의 알제리 삶이 상처로 얼룩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배움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온갖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예를 들면, 나는 왜 우리가 분단국가가 되었는지, 도대체 왜 통일을 안 하는지, 대통령은 좋은 사람인지,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들의 삶은 어떤지,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 우리는 왜 1년 동안 여행을 다니는지 등 온갖 알고 모르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참 많이 배웠다. 좋은 스승은 좋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란 말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두 내게 좋은 스승의 역할을 해 준 것 같다.


<표지 사진 : Mansion du bon Pasteur, 아마 '좋은 목회자 저택' 정도로 해석될 것 같은 우리가 머무는 숙소의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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