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셰프와 어시스턴트

이야기, 스물둘

by 방자

아침을 먹으며 파더 미셸이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일이 있어 콘스탄틴에 다녀와야 한다네.

오늘 식사는 자네들이 책임지는 게 어떻겠는가? '


나는 슬쩍 비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네, 파더. 그럼요~' 어제 점심 저녁을 모두 파더와 프루덴스가 차려놓은 상에 숟가락만 얹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요리를 싫어한다. 특히 누군가가 내 요리를 먹는 상황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는데, 물론 못하니까 싫어하고 싫어하니까 못하는 거겠지만 요리 결과가 매우 복불복이므로 낯선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네~'라고 대답한 건 나에게는 훌륭한 요리사 남자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그가 하고 나는 보조를 하면 된다.


파더 미셜이 콘스탄틴으로 떠나기 전 손님이 잠시 다녀갔다. 아주르라고 했는데, 우리를 만나러 온 것이다. 아주르는 덩치가 큰 알제리 아저씨인데 예전에 한 달 정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삼성 직원들하고도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어쨌든 파더 미셸의 친구이고,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서 알제리를 대표해(?) 우리를 환영해 주고 싶어 오신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말이 통하질 않아서 대회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뜻 내일 우리를 데리고 스키다 구경을 시켜주시겠다고 하고 가셨다.


파더 미셸이 떠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 프루덴스가 점심 준비를 하려면 장을 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맞다. 파더는 냉장고에 있는 거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고 했지만, 냉장고에 있는 것만으로는 요리가 어려우니 장을 봐야 한다. 나는 비에게 장을 보러 나가자고 했다. 레스피가 우리와 함께 나가기로 했다. 비는 레스피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곤 내게 '우리 다 같이 밥 같이 먹는 건가?'라며 묻는다. 나는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응. 아까 못 들었어? 오늘은 네가 셰프고 내가 보조야. 어제 쟤들이 밥 해줬잖아. 오늘은 우리 차례라고 아까 신부님이 이야기하고 가셨는데..' 아마 비는 몰랐었나 보다(사실 나는 비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당연한 듯 이야기하면서 역할까지 명확하게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역할이 주어지고, 그 역할이 싫지 않다면 매우 책임감 있게 장인정신을 발휘해 일을 처리하는 그는 그때부터 신중하게 메뉴를 고민한다. 밖으로 나와 몇 개의 가게를 거치면서 오므라이스를 메뉴로 선택했다. 나는 점심뿐 아니라 저녁까지 해야 하므로 두 끼분의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일단 점심을 잘하고, 그 후에 저녁을 고민할 생각인 듯 저녁거리는 나중에 다시 사겠다며 신중하게 쌀과 야채, 고기를 골랐다. 그는 요리를 하고 나는 잡일(야채 썰기, 상 차리기 등)을 한다. 계란으로 감싼 후 케첩을 뿌린 오므라이스는 시각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나와 비, 프루덴스, 레스피가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프루덴스는 오므라이스 맛에 감격한 듯했다. 비는 후식으로 숭늉과 설탕을 뿌린 누룽지를 내놓았다. 이런 섬세한 요리사를 보았나! B급 셰프의 뜻은 A 다음에 오는 B가 아니라, 급이 다른 B 셰프라고 명시해 두는 게 좋겠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약간의 휴식을 취한 비는 저녁 메뉴 고민을 시작했다. 부엌에 있던 양념통에서 커리 파우더(이 파우더는 한국식 카레가 아니라 인도식 커리가루로 완전 간이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다른 향신료를 섞어 요리해야 한다)를 눈여겨보았던 그는 내게 예전에 어떻게 인도 커리를 만들었는지 기억나냐고 물었다. 2년 전쯤 인도에 가서 커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와 딱 한번 커리 요리를 해 준 적이 있어서인데 나는 사실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요플레를 넣었고, 커리가루와 이것저것 향신료를 넣어다는 것 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커리가루를 찾아보자고 했다(부엌에 있는 것은 양이 적어 새로 사야 했음). 시내를 돌아다니다 향신료 가게를 발견했다. 분명 커리가루쯤은 있을 것 같았으나 주인은 '커리'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는 불어 사전에서 커리를 찾아봤지만, 커리는 커리일 뿐 다른 단어는 없다. 그냥 색을 보고 비슷한 색의 향신료 가루를 이것저것 맛 본 후, 커리가루일 것으로 추정되는 걸 샀다. 빵, 커리가루, 요플레. 저녁 장보기 완료!


신기하게도 그는 인도에 가 본 적도 없으면서 훌륭하게 인도식 커리를 만들어 냈다. 양념통에 있는 커민과 칠리 파우더 등 다른 낯선 양념들도 마구 팬에 넣는 걸 보며 나는 새삼 그가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먹는 데는 보수적이지 않으나 요리하는 데는 보수적인 나). 우리는 저녁으로 커리, 후식으로 바나나 구이를 먹었다. 프루덴스뿐 아니라 레스피도 비 셰프에게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나는 요즘 한국에서는 요리 잘하는 남자가 인기가 많고, 그래서 비도 요리를 잘하는 것 같다고(인기도 많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날 더러 넌 뭐했냐고 묻는다. 주방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원래 주방장은 머리를 더 많이 쓰고 보조는 온갖 노가다를 하는 법이다(스스로는 혹독한 셰프 밑에서 취향에 맞춰 각종 야채를 잘게 썰어내느라 훨씬 더 바빴다고 생각하고 있음). 나는 일을 했다니까, 예이~ 이런 표정이다. 전문가만 인정받고 노동자의 수고는 가볍게 치부되는건 어디든 마찬가지 인 것인가? 노동자의 입장에 선 나는 씁쓸할 뿐이다.



<표지 사진 : 급이 다른 B 셰프 요리 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중해 바다에 풍덩